지옥의 재판관, 염라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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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Hook)
"네 이놈! 살아생전 지은 죄가 네 등짐보다 무겁구나!" 죽어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삶의 무게. 염라대왕의 서슬 퍼런 호령 앞에, 천하를 호령하던 부자도, 권세가를 등에 업은 악인도 한낱 죄인일 뿐! 저승의 엄정한 법도 아래 펼쳐지는 인생의 마지막 심판!
디스크립션 (Description)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늙어서 짓는 죄는 용서받을 길이 없습니다. 이승에서의 삶이 끝나는 순간, 우리는 모두 염라대왕 앞에 서게 됩니다. 평생을 인색하게 살아온 자린고비 영감과, 부모도 몰라보고 악행을 일삼던 불효자가 지옥의 문턱에서 마주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염라대왕의 불호령과 업경대에 비친 적나라한 삶의 기록!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지옥의 마지막 재판이 지금 시작됩니다.
※ 저승길, 초군문
세상 모든 빛이 소멸된 듯, 앞도 뒤도 분간할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의 길이었다. 발밑에서는 안개인지 연기인지 모를 서늘한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라 발목을 축축하게 감쌌고, 귓가에는 정처 없이 떠도는 넋들의 흐느낌인지, 아니면 그저 스산한 바람 소리인지 모를 소리가 맴돌았다. 그 길 위를, 세 명의 사내가 묵묵히 걷고 있었다. 맨 앞에서 쇠사슬을 든 채 길을 이끄는 자들은 푸른빛이 도는 창백한 얼굴에, 산사람이라기에는 너무나도 무표정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바로 망자를 저승으로 인도한다는 저승차사들이었다. 그들 뒤로는, 마치 평생 매어 본 적 없는 천근짜리 족쇄라도 찬 듯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는 두 명의 늙은 사내가 따르고 있었다. 한 사내는 평생 좋은 옷 한 벌 못 입어본 듯, 누더기가 된 삼베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는 평생 돈 한 푼 허투루 쓰지 않고 악착같이 재물을 모았으나, 결국 그 돈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냉방에서 홀로 굶어 죽은 자린고비 최영감이었다. 그의 옆에는 값비싼 비단옷이 여기저기 찢어진 채, 얼굴에는 오만함과 두려움이 광대처럼 뒤섞인 표정을 한 사내가 있었다. 그는 높은 벼슬아치를 등에 업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 결국 제 어미의 약값을 빼돌려 노름판에 탕진하고 그 길로 술병에 맞아 객사한 난봉꾼 박진사였다. 살아생전 두 사람의 삶은 하늘과 땅 차이였으나, 죽음의 강을 건너는 지금, 그들은 그저 똑같은 죄인일 뿐이었다.
"어이, 차사 나리. 여기가 어디요? 내 눈이 침침해서 그러는데, 아직도 멀었소? 내 발바닥에 불이 날 지경이오. 이승에 내 아들놈에게 전갈만 넣어주면, 나리들 노잣돈은 두둑이 챙겨드릴 터인데." 박진사가 거들먹거리며 물었다. 죽어서도 이승의 권세와 재물을 믿는 어리석음을 버리지 못한 채였다. 차사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얼음장처럼 차갑게 말했다. "입 다물어라. 네놈의 아들은 지금 네놈이 남긴 빚더미 때문에 집도 절도 없이 쫓겨나 길바닥을 헤매고 있다. 네놈이 믿는 재물과 권세는 썩은 동아줄보다도 못한 것이거늘, 아직도 잠꼬대를 하는구나. 이곳은 네놈이 양반 행세하던 이승이 아니다." 그 서슬 퍼런 목소리에 박진사는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옆에 있던 최영감이 덜덜 떨며 물었다. "차, 차사 나리… 저는 억울합니다. 저는 평생 남에게 큰 해코지 한번 안 하고, 그저 아끼고 모으며 부지런히 살았을 뿐입니다. 이것이 어찌 죄가 된단 말입니까?" 차사가 걸음을 뚝 멈추고는 고개를 돌려 최영감을 노려보았다. 그 눈빛은 마치 천 년 묵은 얼음장 같아서, 최영감은 심장이 멎는 듯했다. "네놈이 아낀 것이 재물이더냐, 아니면 네놈의 악독한 마음보더냐. 굶주린 아이에게는 쉰밥 한 덩이 베풀지 않았고, 병든 아내의 약값마저 아까워하며 끝내 골병으로 죽게 만들었지. 네놈의 곳간에는 쌀이 썩어 넘쳐났으나, 네놈의 마음은 이미 지옥의 아귀보다 더 굶주려 있었다. 네놈이 쌓아 올린 재물은, 네놈이 외면한 이웃의 눈물과 한숨으로 빚어진 것이니, 그것이 죄가 아니면 무엇이 죄란 말이냐!" 차사의 호통에 최영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거대한 문 하나가 안갯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초군문(初軍門)'. 저승의 첫 번째 관문이었다. 문 앞에는 왕후장상에서부터 천민에 이르기까지, 이승의 모든 계급장을 떼어버린 수많은 망자들이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살아생전의 희로애락이 모두 지워진 채, 오직 두려움과 막막함만이 서려 있었다. 최영감과 박진사 역시 그 행렬의 맨 끝에 서게 되었다. 살아생전에는 서로를 벌레 보듯 했을 두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서로의 초라한 행색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박진사가 최영감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영감, 아무래도 우리가 단단히 잘못 온 것 같소. 듣자 하니, 저 문을 넘으면 염라대왕이 직접 재판을 한다는데… 돈으로도, 빽으로도 안 통하는 곳이라 들었소." 최영감은 아무 대답 없이 사시나무 떨듯 떨기만 했다. 평생을 '나 하나' 잘살자고 아등바등 살아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단 한 번이라도, 아주 작은 것이라도 남에게 베풀어 본 기억이 없었다. 자신의 곳간을 채우기 위해 누군가의 눈물을 외면했던 기억만이 까마귀 떼처럼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그렇게 두 죄인은 거대한 저승의 문 앞에서, 비로소 자신들의 삶이 얼마나 그릇되고 공허했는지를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 명부전(冥府殿)
초군문을 지나자, 거대하고 위압적인 전각이 나타났다. '명부전(冥府殿)'. 인간의 생사와 죄업을 관장하는 염라대왕의 법정이었다. 전각 안으로 들어서자, 뼈 속까지 시린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전각은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넓었고, 수천 개의 촛불이 타고 있었으나 그 빛은 주위를 밝히기보다 오히려 어둠을 더욱 짙게 만드는 듯했다. 좌우로는 삼천 갑자를 살았다는 저승의 판관들이 붓을 든 채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었고, 가장 높은 상석에는 얼굴을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그림자, 바로 염라대왕이 옥좌에 앉아 있었다. 그 존재감만으로도 주위의 모든 것을 압도하고, 죄인의 영혼을 짓뭉개는 듯했다. 최영감과 박진사는 저승차사에게 이끌려 법정의 한가운데 무릎을 꿇었다. 감히 고개를 들어 염라대왕의 얼굴을 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육중하고 깊은 목소리가 전각 전체를 울렸다. "거기 꿇고 있는 죄인들이, 제 한 몸 배불리자고 인간의 도리를 저버린 최가 놈과, 부모를 버리고 백성을 괴롭힌 박가 놈이 맞느냐." "그러하옵니다, 대왕이시여." 판관 중 하나가 일어나 답했다.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판관은 저 어리석은 놈들이 이승에서 저지른 죄목을 하나도 빠짐없이 고하라." 판관이 거대한 두루마리 하나를 펼쳐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읊기 시작했다. "죄인 최 아무개. 너는 평생을 탐욕에 눈이 멀어 재물을 모았으나, 단 한 푼도 이웃을 위해 쓰지 않았다. 굶주린 자를 외면한 죄, 병든 아내를 구하지 않은 죄, 자식들에게조차 인색하여 의를 끊게 만든 죄, 그리하여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인정과 도리를 저버린 죄가 실로 크다!" 판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릴 때마다, 최영감의 몸은 바싹바싹 말라 가는 듯했다. 이어서 판관은 박진사를 향해 다른 두루마리를 펼쳤다. "죄인 박 아무개. 너는 힘없는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어 주색잡기에 탕진하였으며, 늙은 부모를 봉양하기는커녕 매질하고 쫓아내어 길거리에서 굶어 죽게 만들었다. 또한, 네놈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무고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워 집안을 파탄 내고, 그 아내를 겁탈하는 등, 인간으로서 차마 저지를 수 없는 악행을 일삼았으니, 그 죄는 하늘을 찌르고 땅을 덮고도 남음이 있다!"
죄목이 읊어지는 동안, 두 사람의 등 뒤에 있던 거대한 구리 거울, '업경대(業鏡臺)'가 스스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거울 속에는 최영감의 생전 모습이 비쳤다. 추운 겨울날, 다 떨어진 옷을 입은 아이가 문 앞에서 얼어 죽어갈 때, 그는 문을 걸어 잠그고 제 방 아랫목만 더 뜨겁게 데웠다. 병든 아내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약 한 첩만 지어달라고 애원했지만, 그는 돈이 아까워 끝내 그녀의 손을 외면했다. 썩어나는 쌀을 보면서도 자식들에게는 묽은 죽만 먹이는 자신의 추악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비쳤다. 최영감은 차마 자신의 모습을 볼 수가 없어 눈을 감아버렸다. 곧이어 업경대에는 박진사의 과거가 펼쳐졌다. 늙고 병든 노모가 "아들아, 밥 한술만 다오" 하자 그 밥상을 걷어차고, 집안의 재물을 가지고 노름판으로 달려가는 모습, 힘없는 농부의 아내를 희롱하고, 말을 듣지 않자 그 남편을 멍석에 말아 죽도록 패는 모습, 그의 악행에 절망한 사람들이 목을 매는 모습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거울 속에 나타났다. 박진사는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눈을 가리려 했지만, 보이지 않는 힘이 그의 손을 막았다. 자신의 죄를 똑똑히 직면해야만 했다.
모든 영상이 끝나자, 염라대왕의 불호령이 천지를 진동하며 떨어졌다. "네 이놈들! 업경대에 비친 너희 놈들의 추악한 삶을 보고도 변명할 말이 남아 있느냐! 너희가 흘린 눈물이더냐, 너희 때문에 억울한 자들이 흘린 피눈물이더냐! 너희가 쌓은 것이 재물이더냐, 네놈들의 무덤이 될 죄업의 산이더냐!" 염라대왕의 목소리는 천둥과도 같아서, 명부전 전체가 흔들리는 듯했다. 최영감과 박진사는 땅에 머리를 박고 용서를 빌었다. "대왕이시여, 잘못했습니다! 소인이 어리석었습니다!" "한 번만,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그러나 염라대왕의 목소리는 더욱 차갑게 울려 퍼졌다. "기회는 살아있을 때 주어지는 것이다. 이곳 저승에서는 오직 심판만이 있을 뿐이다. 여봐라, 저놈들을 당장 지옥으로 끌고 가라! 저놈들이 저지른 죄의 무게를, 억겁의 시간 동안 뼈와 살로 느끼게 만들어 주어라!"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좌우에 도열해 있던 험상궂은 옥졸들이 달려들어 두 사람의 팔을 우악스럽게 낚아챘다. 그렇게 두 죄인은 자신들이 살아온 삶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끝없는 고통의 나락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 발설지옥(拔舌地獄), 도산지옥(刀山地獄) 입구
명부전에서 끌려 나온 최영감과 박진사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인간의 상상으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끔찍한 광경이었다. 하늘은 핏빛처럼 붉었고, 땅에서는 유황불 냄새와 살이 타는 역한 냄새가 진동했다. 사방에서는 죄인들의 끔찍한 비명과 울부짖음이 하나의 거대한 소음이 되어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려 퍼졌다. 이곳이 바로 지옥이었다. 옥졸들은 최영감을 한 장소에 거칠게 내동댕이쳤다. 그곳에서는 수많은 죄인들이 입을 벌린 채, 펄펄 끓는 쇳물을 뒤집어쓰거나, 옥졸들이 휘두르는 갈퀴에 혀가 길게 뽑혀 나가는 끔찍한 형벌을 받고 있었다. 바로 거짓말로 남을 속이고 이간질하며, 악담으로 상처를 준 자들이 오는 발설지옥(拔舌地獄)이었다. "네 이놈, 최가 놈! 너는 살아생전 그 혀를 놀려 ‘내일은 갚겠다’ 약속하며 가난한 이웃의 마지막 양식마저 빼앗고, 없는 말을 지어내어 이웃 간의 정을 끊어놓았다. 이제 그 혀로 지은 죄의 대가를 치를 시간이니라!" 옥졸의 말이 끝나자, 다른 옥졸 하나가 불에 시뻘겋게 달군 거대한 쇠집게를 들고 최영감에게 다가왔다.
"아, 안돼! 잘못했다! 내가 다 잘못했다! 내가 가진 돈을 다 줄 테니 제발 용서해주시오!" 최영감은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지만, 이미 그의 팔다리는 다른 옥졸들에게 단단히 붙들린 뒤였다. 쇠집게가 그의 입으로 다가오자, 끔찍한 열기와 함께 살이 타는 고통이 느껴졌다. 최영감의 입에서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평생 남을 속이고 자신을 위해 놀렸던 그의 혀는, 뽑히고 잘리는 고통을 겪고 나면 다시 자라나, 또다시 같은 형벌을 받아야 했다. 끝없는 고통의 윤회였다. 말을 할 수 없게 된 그는, 그저 고통 속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비로소 자신의 죄를 참회하기 시작했다. 한편, 박진사는 다른 곳으로 끌려갔다. 그가 도착한 곳은 끝이 보이지 않는 칼날들이 촘촘히 박힌 거대한 산, 도산지옥(刀山地獄)이었다. 산 아래에는 수많은 죄인들이 피를 흘리며 칼날 산을 오르고 있었고, 잠시라도 멈추거나 미끄러지면, 등 뒤에서 옥졸들이 불화살을 쏘거나 채찍으로 내리쳤다. 이곳은 살생을 저지르고, 부모를 해하며, 남을 괴롭힌 자들이 오는 곳이었다.
"죄인 박가 놈! 너는 네놈을 낳아주신 부모를 업신여기고 내쫓아 얼어 죽게 만들었으며, 힘없는 자들을 괴롭히고 죽이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이제 네놈의 몸뚱이로, 네놈이 다른 이들에게 주었던 고통을 직접 느껴보거라! 어서 저 칼날 산을 기어 올라라!" 옥졸이 박진사의 등을 발로 걷어찼다. 박진사는 비명을 지르며 칼날 산으로 굴러떨어졌다. 온몸에 칼날이 박히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살이 찢기고 뼈가 드러나는 듯했다. "으악! 살려줘! 내가 잘못했다! 어머니, 아버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박진사는 피를 토하며 울부짖었지만, 아무도 그를 동정하지 않았다. 그는 살아생전 단 한 번도 진심으로 불러보지 않았던 부모님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며, 칼날 하나하나에 자신의 몸을 맡겨야만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온몸이 갈가리 찢기는 고통이 밀려왔다. 그는 고통 속에서, 길거리에서 굶어 죽어가던 늙은 부모의 처절했던 눈빛을 떠올렸다. 자신이 빼앗고 짓밟았던 사람들의 원망 서린 얼굴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뒤늦은 후회였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끝없이 반복되는 고통과 참회뿐이었다. 그렇게 두 죄인은 지옥의 문턱에서, 자신들이 외면했던 진실과 마주하며 억겁의 형벌을 받기 시작했다. 그들의 비명은, 지옥의 수많은 고통 소리 중 하나가 되어 어둠 속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 삼도천(三途川) 나루터
지옥에서의 시간은 이승의 시간과 그 흐름을 완전히 달리했다. 찰나와도 같은 순간이 백 년처럼 느껴졌고, 찢기고 뽑히는 고통은 끝없이 반복되어 단단했던 죄인의 영혼마저 너덜너덜한 삼베 조각처럼 닳아 없어지는 듯했다. 발설지옥에서 혀가 뽑히는 형벌을 받던 최영감과, 도산지옥에서 칼날 산을 오르던 박진사 역시 그 끝없는 고통의 시간 속에 영원히 갇혀 있었다. 얼마나 오랜 세월, 아니 몇 번의 강산이 변하는 시간이 흘렀을까. 그들에게 아주 잠시, 찰나의 순간 동안 형벌이 멈추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것은 결코 자비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의 죄를 더욱 깊고 아프게 깨닫게 하기 위한 염라대왕의 잔인한 안배였다. 고통으로 반쯤 투명해진 두 영혼은 잠시 동안, 안개처럼 뿌연 강가로 이끌려 나왔다. 바로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이루는 슬픔의 강, 삼도천(三途川) 나루터였다. 그들이 서 있는 강 이편은 회색빛 돌과 모래뿐인 황량한 불모지였으나, 강 저편에서는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따스하고 온화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고, 그 빛 속에서는 미세하게 아름다운 음악 소리와 꽃향기 같은 것이 바람을 타고 건너오는 듯했다.
나루터에는 수많은 영혼들이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지옥에서 보았던 죄인들과는 달리, 그들의 얼굴에는 고통이나 두려움 대신 깊은 평온함이 깃들어 있었다. 어떤 노파의 영혼은 생전에 지은 복이 산처럼 높아, 저승차사들조차 감히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공손히 배에 모시고 있었다. "어머니, 평생을 굶주린 자식과 외로운 이웃을 위해 따뜻한 밥 한 그릇 나누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셨으니, 이제 아무 걱정 마시고 극락왕생 하십시오." 차사의 말에 노파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젊은 장군의 영혼이 금빛 찬란한 용이 이끄는 배에 오르고 있었다. 수많은 선한 영혼들이 그 뒤를 따르며 그의 의로운 죽음을 칭송했다. 그들은 모두 삼도천을 건너, 고통도 슬픔도 없는 땅, 극락으로 향하고 있었다. 최영감과 박진사는 그 광경을 넋을 잃고, 마치 제 심장이 뽑혀 나가는 듯한 고통 속에서 바라보았다. 살아생전, 그들이 어리석다 비웃고, 빼앗고, 짓밟았던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남을 위해 베풀고, 희생하며, 우직하게 정도를 걸었던 이들이 맞이하는 영광스럽고 평화로운 죽음의 모습이었다.
최영감은 생전, 장터에서 굶주린 아이들에게 국밥을 나눠주던 국밥집 할머니를 떠올렸다. 당시 그는 그 모습을 보며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에, 저리 퍼주다가는 제 명에 못 죽을 것'이라며 침을 뱉고 비웃었었다. 그러나 지금 저 강을 건너는 이들 속에, 바로 그 국밥집 할머니가 부처님 같은 환한 미소를 띤 채 손을 흔들고 있었다. 박진사는 자신이 '주인 재산 축내는 멍청한 놈'이라며 구박하고 매질했던 늙은 종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는 늘 정직하고 성실했으며, 자신의 얼마 안 되는 것을 쪼개어 더 어려운 사람을 돕던 사람이었다. 박진사는 그런 그를 경멸했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저편 극락을 향하는 배 위에서 가장 밝게 빛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비로소 깨달았다. 진정으로 남는 것은 자신이 쌓아 올린 재물이나 권세가 아니라, 살아생전 베풀었던 아주 작은 온기와 이름 없는 선행이었다는 것을. 지옥의 그 어떤 끔찍한 형벌보다도, 저 평화로운 광경을 바라보는 것이 더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닿을 수 없는 행복을 목격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영혼을 갈기갈기 찢는 가장 잔인한 형벌이었다. 두 죄인의 텅 빈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뼈에 사무치는 후회의 눈물이자, 지독한 부러움의 눈물이었다. 그들의 소리 없는 울음소리는 그러나, 평화로운 삼도천의 바람 소리에 묻혀 그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잠시 후, 옥졸들은 다시 그들의 멱살을 잡고 끝없는 고통의 지옥으로 끌고 들어갔다.
※ 환생의 문 앞
억겁의 시간, 수만 번의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것보다도 더 긴 시간이 흘렀다. 최영감과 박진사는 지옥의 모든 형벌을 자신의 몸으로 남김없이 받아내고, 마침내 죄의 값을 모두 치렀다. 그들의 영혼은 너무나 오랜 고통에 닳고 해져, 마치 낡은 한지처럼 희미하고 투명해져 있었다.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느끼지 못하는, 오직 업보의 흔적만이 희미하게 남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두 영혼은 저승차사에게 이끌려, 거대한 문 앞에 섰다. 새로운 생명을 얻어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는 '환생의 문'이었다. 그러나 문을 통과하기 전, 그들은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다음 생에 대한 지엄한 선고를 들어야만 했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한 저승사자가 거대한 명부를 펼쳐 들고, 최영감의 영혼을 향해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인 최 아무개. 너는 생전에 탐욕으로 곳간을 채웠으나, 평생을 굶주린 마음으로 살았다. 네가 쌓은 재물은 너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네가 외면한 굶주림을 위한 것이었다. 너는 재물에 대한 집착과 굶주림의 업보를 받았으니, 다음 생에는 인간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평생 먹을 것을 찾아 차가운 땅을 헤매며 뼛속 시린 굶주림에 시달리는 들판의 쥐로 태어날 것이다. 그리하여 네가 외면했던 굶주림의 고통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 네 자신의 몸뚱이로 밤낮으로 체험하게 될 것이니라."
그 말을 듣는 순간, 감정마저 메말랐던 최영감의 영혼이 마지막 힘을 다해 절망으로 몸부림쳤다. 평생을 쥐처럼 악착같이 모았으나, 결국 진짜 쥐가 되어 평생을 굶주림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라니. 이보다 더 지독하고 완벽한 인과응보가 어디 있겠는가. 그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환생의 문으로 허망하게 빨려 들어갔다. 그의 영혼이 문을 통과하는 순간, 인간으로서의 모든 기억과 이성은 사라지고 오직 '굶주림'이라는 끔찍한 본능만이 남아 다음 생을 향해 던져졌다. 이어서 저승사자는 박진사의 영혼을 향해 선고를 내렸다. "죄인 박 아무개. 너는 너를 낳아주신 부모의 은혜를 하늘처럼 무겁게 지고 태어났으나, 그것을 짚신보다도 가벼이 여겨 내버렸다. 또한, 하늘이 내려준 두 다리로 서서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무고한 이들을 짓밟았다. 너는 부모를 업신여긴 불효의 죄와, 두 다리로 죄 없는 이들을 짓밟은 업보를 받았으니, 다음 생에는 인간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평생 축축하고 어두운 땅바닥을 기어 다니며 사람들의 발에 밟히는 이름 없는 벌레로 태어날 것이다. 그리하여 네가 업신여겼던 가장 낮은 자의 삶이 얼마나 고되고 서러운 것인지, 몸소 체험하게 될 것이니라."
박진사의 영혼 역시 공포에 휩싸였다. 평생을 오만하게 고개를 쳐들고 살았던 자신이, 이제는 가장 미천한 벌레가 되어 사람들의 발밑을 기어 다녀야 한다니. 그는 울부짖으며 애원하려 했지만, 그의 영혼은 이미 형태를 잃고 작은 벌레의 모습으로 변해가며 환생의 문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의 마지막 기억은, 자신이 평생 쳐다보지도 않았던 땅바닥의 축축한 흙냄새였다. 그렇게 두 죄인은, 자신들이 살아온 삶과 정확히 대칭되는 모습으로 다음 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환생의 문은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혔고, 저승은 다시 고요해졌다. 이곳에서는 수많은 영혼들이 매일같이 심판을 받고, 자신의 업보에 따라 새로운 삶을 부여받고 있었다. 그것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저승의 법도이자,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우주의 질서였다.
※ 이승의 어느 마을
이승의 어느 춥고 황량한 겨울 들판. 살을 에는 바람이 윙윙 울며 마른 볏짚을 어지럽게 흩날리고 있었다. 한때 부유했던 농가의 대청마루 밑, 이제는 찬바람만 드나드는 그곳에서 삐쩍 마른 쥐 한 마리가 얼어붙은 땅을 필사적으로 파헤치고 있었다. 그 작은 몸뚱이에서 어찌 저런 힘이 나오는지, 녀석의 발톱은 닳아 문드러져 있었다. 아무리 파헤쳐도 축축한 흙냄새 외에 먹을 것이라곤 나오지 않았다. 바로 곁 담장 너머, 부잣집 곳간에서는 잘 익은 햅쌀 냄새가 진동하며 쥐의 굶주린 본능을 미치도록 자극했지만, 높고 단단한 벽은 결코 넘을 수 없는 절망의 경계선이었다. 쥐는 한참을 더 땅을 파헤치다, 결국 마지막 남은 기력마저 다하여 그 자리에 쓰러졌다. 뱃가죽이 등에 붙을 듯한 굶주림에 지쳐 가늘게 찍찍거리다, 이내 구석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그 쥐의 텅 빈 눈에는 평생 채우지 못한 허기와 깊은 슬픔, 그리고 닿을 수 없는 곳간을 향한 마지막 미련이 담겨 있었다. 한때는 자린고비 최영감이라 불렸던, 재물을 곁에 두고도 평생 마음의 허기에 시달렸던 영혼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한편, 장마가 휩쓸고 지나간 어느 마을의 질퍽한 길바닥 위에서는 이름 모를 벌레 한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비를 피할 곳도, 햇볕을 가릴 곳도 없이, 그저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축축하고 차가운 흙 위를 기어가고 있었다. 벌레에게 세상은 온통 거대하고 위협적인 것들뿐이었다. 하늘을 가리는 거대한 그림자, 땅을 울리는 무시무시한 진동, 그 모든 것이 공포였다. 그때, 장에 다녀오던 한 아이가 콧노래를 부르며 그 길을 지나갔다. 아이는 하늘의 뭉게구름을 보느라 발밑을 살피지 않았다. 아이의 작고 가벼운 버선발이, 그러나 벌레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재앙이었다. 아이의 발길이 벌레를 힘껏 짓밟고 지나갔다. 벌레는 한순간에 터져 흙탕물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즐겁게 노래를 부르며 멀어져 갔다. 한때는 박진사라 불리며 세상을 호령하고 힘없는 이들을 벌레처럼 짓밟았던 오만한 영혼의, 더없이 허망하고 비참한 최후였다.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이치는 지엄하고 무서운 것입니다. 하늘의 그물은 성긴 듯 보여도, 결코 악행을 놓치는 법이 없습니다. 인과응보라는 것은 저 멀리 하늘 위에서 누군가 벌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이 지은 삶의 무게가 다음 생의 나를 결정짓는 것과 같습니다. 억울한 이가 흘린 눈물이 죄지은 자의 다음 생의 무게가 되고, 남몰래 베푼 작은 친절은 다음 생을 밝히는 등불이 되는 법이지요. 내가 쌓은 업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빚이 되어, 언젠가 반드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법입니다. 남에게 베푼 작은 친절은 곳간에 쌓이는 복이 되고, 남에게 입힌 상처는 내 영혼에 새겨지는 지워지지 않는 멍에가 되는 것입니다. 벌을 두려워하기 위함이 아니라, 남에게 베푼 기쁨이야말로 제 마음의 평안을 쌓는 주춧돌이 됨을 깨닫기 위함입니다. 살아있을 때 덕을 쌓고 선을 베푸는 것만이, 죽어서 염라대왕 앞에 섰을 때 떳떳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요, 다음 생의 복을 기약하는 가장 현명한 지혜일 것입니다. 우리네 인생, 어찌 살아야 할 것인지, 오늘 밤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시는 것은 어떨는지요.
유튜브 엔딩멘트
지옥의 마지막 재판, 어떠셨는지요. 염라대왕의 엄정한 심판은 비단 저승에만 있는 것이 아닐 겁니다. 우리의 양심이 바로 염라대왕이요, 우리의 선행과 악행이 모두 기록되는 업경대일 테지요. 다음 이야기는 더욱 흥미롭고 장대합니다. 우리가 아는 염라대왕 외에, 저승을 다스리는 무시무시한 존재들이 더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지옥의 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해 염라대왕이 불러 모은 일곱 명의 사신들! '염라대왕과 7명의 지옥 사신' 이야기가 곧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