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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든 염라대왕 꽃든 관음보살

by K sunny 2025.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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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든 염라대왕 꽃든 관음보살, 백정의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 (출처-조선 야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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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300자 내외)

평생 소를 잡은 백정, 허 서방. 그의 손은 늘 피비린내에 젖어있었지만, 그 모든 것은 병든 어머니의 약값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죽어 염라대왕 앞에 섰을 때, 한 분은 칼을 들고 죄를 물었고, 다른 한 분은 꽃을 들고 연유를 물었습니다. 과연 그의 영혼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요?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조선 야담 '스르륵 잠드는 이야기'. 천하디 천한 백정으로 태어나, 살생의 업을 지고 살았던 한 사내.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세상 가장 귀한 효심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죽음 이후, 엄정한 심판의 저울과 모든 것을 품는 자비의 연꽃 사이. 그의 일생을 건 마지막 선택이 시작됩니다.

※ 백정의 삶과 효심

조선 팔도 어느 고을에, 허 서방이라 불리는 사내가 있었습니다. 그의 본명은 허생이었으나, 성씨 뒤에 '서방'이라는 호칭을 붙여주는 것조차 아깝다 하여, 사람들은 그를 그저 '허 백정'이라 불렀습니다. 그의 일과는 동이 트기 전, 축축하고 비릿한 냄새가 진동하는 푸줏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음메..." 갓 잡은 소의 커다란 눈망울이, 마지막까지 허 서방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허 서방은 그 눈을 마주 보지 못하고, 질끈 눈을 감은 채 익숙한 손놀림으로 가죽을 벗기고 뼈와 살을 분리했습니다. 쩍, 하고 갈비뼈가 분리되는 둔탁한 소리, 서걱거리며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그의 세상 전부인 듯했습니다. 그의 손은 늘 짐승의 피와 기름으로 미끈거렸고, 온몸에서는 지독한 피비린내가 떠날 날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지나가면 코를 막고 침을 뱉었고, 아이들은 그를 향해 "백정 놈!"이라 소리치며 돌팔매질을 했습니다. 그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걷고, 또 묵묵히 칼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피비린내 나는 손으로 그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저잣거리 약재상에 들러 가장 값비싼 약재를 사는 것이었습니다. "어르신, 오늘은 녹용을 조금만 잘라주시게. 어머님 기력이 통 쇠하셔서..." 약재상은 돈을 받으면서도, 그가 만진 엽전이 더럽다는 듯 손끝으로 집어 상자에 던져 넣었습니다. 허 서방은 그 모든 멸시를 묵묵히 견뎌냈습니다. 그에게는 세상의 손가락질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었으니, 바로 방 한편에 누워계신 노모의 잦은 기침 소리였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십 년째 이름 모를 지병으로 자리에 누워 있었습니다. 용하다는 의원은 모두 불러보았지만, 그저 몸을 보하는 약을 잘 달여 먹이는 수밖에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그 약값이 너무나도 비싸, 천하디 천한 백정의 업을 대를 이어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푸줏간에서의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짐승 잡는 백정이었지만, 낡은 초가집의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그는 세상에서 가장 지극한 효자가 되었습니다. "어머니, 제가 왔습니다." 그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우물가에서 온몸의 피비린내를 몇 번이고 씻어냈습니다. 그리고는 정갈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서야, 어머니가 누워계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콜록, 콜록... 아... 아들인가..." "예, 어머니. 오늘은 날이 참 좋습니다. 볕이 따사로워, 이따가 잠시 툇마루에 모시겠습니다." 그는 사 온 약재를 정성껏 약탕기에 넣고, 몇 시간이고 불을 조절하며 달였습니다. 그리고는 식힌 약사발을 들고 가,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어머니의 입에 한 숟갈, 한 숟갈 떠 넣어 드렸습니다. "아들아... 애쓴다... 이 어미 때문에... 네가... 몹쓸 업을..."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잡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허 서방은 애써 웃으며 어머니의 손을 마주 잡았습니다. "어머니, 그런 말씀 마십시오. 아들이 어미를 봉양하는 것은 하늘의 이치입니다. 이까짓 일, 하나도 힘들지 않습니다. 어서 약 드시고 기운만 차리십시오." 그는 매일 밤, 잠든 어머니의 곁에서 조용히 기도를 올렸습니다. '부처님, 천지신명님. 소인의 죄가 깊어, 다음 생에 축생으로 태어난다 해도 원망치 않겠습니다. 허나... 제발... 소인이 지은 모든 죄업은 소인에게 내리시고, 우리 어머니... 단 하루라도 편안하게 숨 쉬게 해주시옵소서...' 그리고는 자신이 오늘 죽인 짐승들의 넋을 위로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생의 업과 효심의 공덕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그의 삶은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비 오는 여름날이었습니다. 푸줏간 지붕이 새는 것을 고치려 미끄러운 지붕에 올라갔던 허 서방은, 그만 발을 헛디뎌 마당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윽...!" 그는 짧은 비명과 함께, 그대로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생각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어머니... 약... 드셔야 하는데...'

※ 저승 가는 길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허 서방은 으슬으슬한 한기에 눈을 떴습니다. 이상하게도, 머리를 부딪쳤던 고통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몸은 깃털처럼 가벼웠지요. 그가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그는 자신이 푸줏간 마당이 아닌, 낯설고 황량한 벌판에 서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늘은 해와 달도 없이 온통 잿빛이었고, 땅에는 이름 모를 회색 풀들만 끝없이 널려 있었습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았지만, 뼛속까지 시린 한기가 스며들었지요. "여... 여기가 어디지...?" 그가 중얼거리는 순간, 등 뒤에서 무감정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허생. 네 수명은 거기까지다. 이제 우리를 따라 명부로 가야 한다." 돌아본 곳에는 검은 도포에 갓을 쓴, 창백한 얼굴의 사내 둘이 서 있었습니다. 한 손에는 명부(名簿)를, 다른 한 손에는 쇠사슬을 들고 있었지요. 저승사자였습니다. 허 서방은 그 자리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습니다.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채운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었습니다. "차사님! 차사님! 제발... 제발 소인에게 며칠의 시간만이라도 더 주십시오!" 그는 저승사자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애원했습니다. "시끄럽다. 저승의 법도는 어길 수 없는 법. 어서 일어나 길을 가자." "아닙니다! 저는... 저는 괜찮습니다! 허나... 홀로 남으신 저의 노모께서는 어찌합니까! 제가 없으면 약을 달여 드릴 사람도, 죽 한 그릇 끓여드릴 사람도 없습니다! 제가... 제가 이대로 가면... 저희 어머니는 굶어 돌아가실 겁니다! 제발... 제발..." 허 서방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자신의 죽음보다, 홀로 남겨진 어머니의 고통이 천만 배는 더 두려웠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승사자는 냉정했습니다. "그 또한 네 어미의 팔자다. 산 자의 일은 산 자에게 맡기고, 죽은 자는 죽은 자의 길을 가야 한다." 저승사자는 허 서방의 팔을 쇠사슬로 묶어, 강제로 일으켜 세웠습니다. 허 서방은 통곡하며, 힘없이 그들에게 이끌려 걷기 시작했습니다. 뒤를 돌아보자, 저 멀리 자신이 살던 이승의 모습이 아지랑이처럼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을 부르며 애타게 울부짖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아들아! 허생아! 어디 있느냐!" "어머니! 어머니! 불효자는... 먼저 갑니다!" 그는 목 놓아 울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이승에 닿지 않았습니다. 길은 끝이 없었습니다. 길 위에는 그와 같이, 저승사자에게 이끌려가는 수많은 영혼들이 묵묵히 걷고 있었습니다. 부자로 살았던 자도, 가난하게 살았던 자도, 저승길 위에서는 모두 똑같은 죄인의 모습이었습니다. 허 서방은 걷고 또 걸으며,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보았습니다. 평생 남에게 손가락질받고, 더러운 피를 묻히며 살아야 했던 고단한 삶. 하지만 그 삶 속에서도,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과, "고맙다, 아들아"라고 말해주던 희미한 미소가 있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그의 삶은 살 가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단 한 가지.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 마지막까지 어머니의 곁을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뿐이었습니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거대하고 위압적인 궁전의 모습이 안개 너머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영혼이 예외 없이 거쳐가야 하는 최후의 심판 장소. 염라대왕이 기다리는 명부의 심판정이었습니다. 허 서방은 마른침을 삼키며,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를 했습니다.

※ 칼을 든 심판자

마침내 허 서방은 저승의 심판대, 염라대왕의 어전에 당도했습니다. 거대한 궁전은 온통 차가운 안개로 뒤덮여 있었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높이의 기둥들 사이로는 죄인들의 희미한 신음 소리가 바람처럼 떠돌았습니다. 저 높은 단상 위에는 열두 폭 병풍을 등진 염라대왕이 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허 서방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의 눈빛은 너무나도 깊고 엄하여, 산 자의 모든 비밀과 죄악을 한순간에 꿰뚫어 보는 듯했습니다. 평생 짐승의 피를 보면서도 담대함을 잃지 않았던 허 서방이었지만, 그 위세 앞에서는 저도 모르게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며 고개가 땅으로 숙여졌습니다. 저승사자가 염라대왕 앞으로 나아가 공손히 아뢰었습니다. "대왕이시여, 명을 받고 죄인 허생의 혼을 잡아왔나이다." 염라대왕은 손에 든 두루마리, 즉 모든 이의 삶과 죽음이 기록된 생사부를 펼쳐보며 나직이 입을 열었습니다. 그 목소리는 궁전 전체를 쩌렁쩌렁 울릴 만큼 위엄이 있었습니다. "네가 바로 평생을 짐승의 목숨을 끊어 연명한 백정, 허생이더냐." "…예, 대왕이시여." "너는 인간 세상에서 오십 년의 삶을 받았으나, 네 손에 죽어 나간 생명의 수가 실로 헤아릴 수 없이 많구나.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어찌하여 그리도 많은 목숨을 해하였는지, 남김없이 고하라." 허 서방은 땅에 이마를 박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아뢰었습니다. "소인, 천하디 천한 백정의 신분으로 태어나, 배운 것이 짐승 잡는 기술밖에 없었습니다. 허나… 그 모든 것은… 십 년 넘게 병상에 누워계신 저의 노모를 봉양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머님의 약값을 벌기 위해… 소인은… 다른 길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회한과 애끓는 효심이 담겨 있었지만, 염라대왕의 표정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습니다. "어리석은 변명이다. 연유가 어떠하든, 살생은 살생일 뿐. 네 어미를 위하는 마음이, 네 칼끝에 스러져간 수많은 생명의 고통을 대신할 수는 없는 법이다. 네 입으로 고하지 못하겠다면, 저 거울이 대신 말해줄 것이다! 옥졸들은 저 죄인을 업경대(業鏡臺) 앞으로 끌고 가라!" 옥졸들이 허 서방의 양팔을 붙잡아 단상 옆에 놓인 거대한 청동 거울 앞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것이 바로 죄인의 일생을 비추는 거울, 업경대였습니다. 허 서방이 거울 앞에 서자, 뿌옇던 거울 표면에 핏빛 안개가 걷히며 영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속에는, 그가 평생을 바쳐 죽여 온 수만 마리 짐승들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습니다. 어미를 부르며 울부짖던 송아지, 마지막까지 발버둥 치던 돼지, 날갯짓 한번 못하고 목이 비틀린 닭… 그들의 겁에 질린 눈망울과, 뜨거운 피가 뿜어져 나오던 순간의 고통이 조금의 거짓도 없이 생생하게 비쳤습니다. 거울 속에서는 비명 소리가 그치지 않았고,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듯했습니다. 허 서방은 차마 그 광경을 마주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지만, 그 끔찍한 영상은 그의 머릿속을 더욱더 선명하게 파고들었습니다. "흐흑… 흐윽…" 그는 업경대 앞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변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흘리는 눈물은, 이제 자신의 운명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손에 죽어간 무수한 생명들에 대한 참회 때문이었습니다. 염라대왕은 차가운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최후의 판결을 내렸습니다. "죄인 허생은, 살아생전 무수한 살생을 저질러 그 죄업이 산과 같고, 그 피가 강과 같다. 법도에 따라, 죄인 허생을 도산지옥(刀山地獄)에 보내, 천 년 동안 칼의 산을 오르내리며 그 몸이 찢어지는 형벌을 받게 할 것이다!" 도산지옥. 그 이름만으로도 영혼마저 얼어붙게 만드는 끔찍한 형벌이었습니다. 옥졸들이 다가와 허 서방의 팔에 다시 쇠사슬을 걸었습니다. 쇠사슬이 살을 파고드는 차가운 감촉과 함께, 허 서방은 모든 것을 체념했습니다. 그저, 이승에 홀로 남겨진 어머니의 얼굴만이 눈앞에 아른거릴 뿐이었습니다.

※ 꽃을 든 구원자

허 서방이 지옥의 나락으로 끌려가기 바로 그 직전이었습니다. 살벌한 기운만이 가득하던 염라전(閻羅殿)에, 홀연히 따스한 온기가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선가 코끝을 스치는 은은한 연꽃 향기와 함께, 맑고 청아한 풍경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소리의 근원을 찾아 모두의 시선이 향한 곳. 차갑고 딱딱한 궁전 바닥 한가운데서,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한 송이 백련(白蓮)이 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꽃봉오리가 천천히 열리자, 그 속에서 눈부신 광채와 함께 한 분의 보살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자비로운 미소를 머금은 얼굴, 온몸을 감싼 순백의 옷자락, 한 손에는 버들가지를, 다른 한 손에는 정병(淨甁)을 든 여인. 중생의 고통을 살피고 구원한다는 자비의 화신, 관세음보살이었습니다. 관음보살이 나타나자, 서슬 퍼렇던 옥졸들은 물론, 단상 위의 염라대왕마저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합장하며 예를 표했습니다. 저승의 법도를 집행하는 심판자라 할지라도, 대자대비(大慈大悲)의 상징인 보살 앞에서는 함부로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관음보살은 연꽃 위에서 조용히 내려와, 허 서방의 앞에 섰습니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따사로운 봄볕과도 같아, 그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영혼의 모든 상처가 치유되는 듯했습니다. 그녀는 염라대왕을 향해 몸을 돌리며,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대왕이시여, 잠시 형을 멈추어 주시옵소서." 염라대왕은 다시 자리에 앉으며, 위엄 있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보살께서는 어인 일로 이 엄정한 심판의 장에 왕림하셨나이까." "대왕께서는 칼로 죄의 무게를 재시지만, 소첩은 마음의 깊이를 헤아리고자 이곳에 왔나이다. 저 영혼이 지은 살생의 죄업이 실로 산과 같음을 저 또한 보았습니다. 허나, 대왕께서는 저 영혼이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공덕의 탑 또한 보셨나이까?" 관음보살이 부드럽게 손을 들어 업경대를 가리켰습니다. 그러자, 끔찍한 피의 향연이 펼쳐지던 거울의 표면이 잔잔한 호수처럼 변하더니, 이내 새로운 장면들을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거울 속에는, 허 서방이 갓 잡은 소의 가장 좋은 부위를 따로 잘라내어, 늦은 밤 홀로 사는 과부의 집 담벼락에 몰래 걸어두고 오는 모습이 비쳤습니다. 자신의 끼니는 거르면서도, 동네의 굶주리는 아이들에게는 따뜻한 고깃국을 끓여주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병든 노모의 대소변을 손수 받아내고, 닳아버린 어머니의 발을 자신의 품에 안고 밤새 주물러드리는 모습이 비쳤습니다. 피 묻은 칼을 든 손과, 어머니의 약을 달이는 그 손은, 바로 같은 손이었습니다. 관음보살의 목소리가 조용히 궁전 안에 울려 퍼졌습니다. "저 영혼의 손은 생명을 끊는 칼을 잡았으나, 그 손이 향한 곳은 생명을 살리는 약탕기였습니다. 그의 몸에서는 피비린내가 진동했으나, 그의 마음에서는 천하의 그 어떤 향보다 진한 효(孝)의 향기가 났습니다." 그리고는 염라대왕을 향해 다시 물었습니다. "대왕이시여, 하늘 아래 가장 큰 죄가 무정한 살생이라면, 하늘 아래 가장 큰 공덕은 지극한 효심이 아니옵니까? 이 두 가지가 한 삶에 깃들었을 때, 대왕께서는 어느 쪽을 더 무겁게 보시나이까?" 관음보살의 질문에, 천하의 염라대왕은 처음으로 말문이 막혔습니다. 법도의 칼은 단 하나의 길만을 가리키고 있었으나, 자비의 꽃은 수많은 길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엄정한 심판과 자비로운 구원 사이, 허 서방의 영혼은 이제 운명의 갈림길에 서게 된 것입니다.

※ 심판과 자비의 대립

관음보살의 질문에, 서릿발 같던 염라전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법도의 칼은 한 영혼의 죄업을 가리키고 있었으나, 자비의 꽃은 그 영혼이 품었던 마음의 향기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천하의 염라대왕은 처음으로 판결을 망설였습니다. 그는 다시 한번 생사부를 넘겨보며, 위엄 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그 목소리에는 사사로운 감정이 아닌, 천지의 균형을 지켜야 하는 심판자의 고뇌가 담겨 있었습니다. "보살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소. 허나, 법도란 만인의 저울이요, 한번 무너지면 천지의 질서가 어지러워지는 법. 저 자의 효심이 지극하다 하여 살생의 죄를 묻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떤 영혼이 명부의 심판을 두려워하겠소. 이는 단지 한 영혼을 구제하는 일이 아니라, 저승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 될 수도 있단 말이오. 그의 효심에 대한 공덕은 다음 생에 복을 받는 것으로 갚으면 될 것이나, 살생에 대한 죄업은 이 생에서 마땅히 벌을 받아야만 하오." 염라대왕의 말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저승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대원칙이었습니다. 그러나 관음보살은 부드럽게 고개를 저으며 답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질책이 아닌, 더 깊은 근원을 비추는 등불과도 같았습니다. "대왕이시여, 저울이 마음의 무게를 담지 못한다면, 그것은 차가운 쇠붙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 영혼이 칼을 든 것은 재물을 탐하거나 생명을 희롱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스러져가는 어미의 생명을 단 하루라도 더 붙들고 싶은 애끓는 마음, 그것이 저 영혼이 지은 죄의 시작이자 끝이었습니다. 진흙탕 속에서 피어나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저 영혼은 살생이라는 진흙 속에서 효심이라는 맑고 깨끗한 꽃을 피워냈습니다. 인과응보의 법이 그러하듯, 마음에서 비롯된 업보는 마땅히 그 마음을 헤아려 다스려야 하는 것이 또한 하늘의 이치가 아니옵니까?" 심판의 왕과 자비의 보살. 두 절대자의 뜻은 팽팽히 맞섰습니다. 한쪽은 무너져서는 안 될 '질서'를 말했고, 다른 한쪽은 외면해서는 안 될 '마음'을 말했습니다. 어느 쪽도 틀리지 않았기에, 그 누구도 뜻을 굽힐 수 없었습니다. 궁전 안의 모든 영혼들이 숨을 죽인 채, 이 거대한 대립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한참의 침묵 끝에, 염라대왕이 마침내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의 눈빛은 이전보다 더욱 깊어져 있었습니다. "좋소. 그렇다면, 이 영혼의 길은 법도로도, 자비로도 정하지 않겠소." 그의 말에 관음보살이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스스로 선택하게 합시다." 그것은 실로 파격적인 제안이었습니다. 저승에 온 영혼은 오직 심판을 받을 뿐, 자신의 길을 선택할 권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 영혼에게 두 갈래의 길을 보여줍시다. 하나는, 그가 지은 살생의 죄를 모두 씻고, 그가 쌓은 효심의 공덕으로 다음 생에 부귀영화를 누리며 태어나는 길이오. 다른 하나는... 그의 가장 간절한 소원을 이루는 길이지. 그가 어느 길을 택하는지를 보면, 저 영혼의 본질이 죄와 공덕 중 어디에 더 가까이 닿아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오." 염라대왕은 허 서방에게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허생. 너는 지금부터 네 영혼의 무게를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이는 내가 너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이자, 가장 무거운 시험이 될 것이다." 허 서방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자신의 운명이 걸린 이 기이한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 두 갈래의 길

염라대왕이 손을 한 번 휘젓자, 허 서방의 눈앞이 순식간에 아득해지며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그가 서 있는 곳은 더 이상 차가운 염라전이 아니었습니다.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넓은 대청마루 위. 몸에는 최고급 비단옷이 걸쳐져 있었고, 그 부드러운 감촉이 너무나도 생소했습니다. 손에는 옥으로 만든 갓끈이 만져졌고, 허리에는 값비싼 비취 장식물이 달려 있었습니다. 마당에는 하인들이 분주히 오가며 그에게 연신 고개를 조아렸고, 아름다운 아내가 다과상을 들고 와 상냥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서방님, 날이 좋습니다. 잠시 후 사랑채에서 시회(詩會)가 있다 하옵니다. 존경하는 벗들께서 서방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모든 것이 풍족하고 평화로웠습니다. 사람들의 존경과 아내의 사랑, 어여쁜 자식들의 재롱, 근심 걱정 하나 없는 삶. 그는 더 이상 손에 피를 묻히는 천한 백정이 아니었습니다. 학식과 덕망을 갖춘 양반가의 대부(大夫)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의 효심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진 다음 생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잠시 그 안락함에 취해 보았습니다. 하인이 따라주는 향기로운 차를 마시고, 아내가 건네는 달콤한 약과를 맛보았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허전했습니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 그는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그가 나직이 중얼거리는 순간, 화려했던 풍경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다시 눈앞이 바뀌었습니다. 이번에 그가 서 있는 곳은,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이었습니다. 낡고 초라한 흙집 앞. 하지만 그곳은 그가 평생을 살았던 자신의 집이었습니다. 저 멀리 냇가에서는 아낙네들이 빨래를 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뛰어놀았습니다. 그는 이번 생과 마찬가지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있었습니다. 손에는 쟁기가 들려 있었고,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지요. 삶은 고단하고, 세상은 여전히 그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땀을 닦으며 흙집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그 모든 고단함이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방 안에는, 희끗희끗한 머리를 곱게 빗어 넘긴 한 여인이,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바느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병마가 찾아오기 전, 건강하고 인자한 모습의…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발견하고는, 세상 가장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왔느냐, 아가. 일이 고되지 않았어? 어서 이리 와서 밥 한술 뜨거라." 그 목소리, 그 미소. 허 서방은 그 자리에 선 채, 꼼짝할 수가 없었습니다. 첫 번째 길은 부귀영화를 약속했지만, 그곳에는 어머니가 없었습니다. 두 번째 길은 고단한 삶을 예고했지만, 그곳에는 세상 전부와도 같은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더 이상 볼 것도, 고민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의 선택은, 이미 그의 영혼 가장 깊은 곳에서 정해져 있었습니다.

※ 위대한 선택

환영이 걷히고, 허 서방은 다시 염라전의 차가운 바닥에 꿇어앉아 있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두려움이나 망설임의 기색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평온하고 단호한 빛이 감돌았지요. 염라대왕이 물었습니다. "보았느냐. 너의 다음 생을. 첫 번째 길은 네 공덕에 대한 보상이니, 너는 그 길을 택해 평생의 안락을 누릴 자격이 있다. 이제, 선택하거라. 너는 어느 길을 가겠느냐." 허 서방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분명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아뢰었습니다. "소인, 두 번째 길을 택하겠습니다." 그 대답에, 궁전 안의 모든 존재들이 숨을 죽였습니다. 부귀영화를 버리고, 다시 가난과 고난의 길을 택하겠다니. 염라대왕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마지막 확인을 하려는 듯한 무게가 실려 있었습니다. "…후회하지 않겠느냐?" "예, 대왕이시여. 천 번, 만 번을 다시 태어난다 하여도, 소인의 선택은 같습니다. 금은보화가 가득한 대궐이라 한들, 그곳에 저의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다면 소인에게는 텅 빈 지옥과 같사옵고, 가시밭길 험한 길이라도 어머니와 함께라면 그곳이 바로 극락정토이옵니다. 부귀영화는 한낮의 꿈과 같고 뜬구름과 같은 것이오나, 어미를 향한 자식의 마음은 영원불멸한 것이옵니다. 부디… 부디 소인이 다시 어머님의 아들로 태어나, 이번 생에 못다 한 효도를 마저 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허 서방은 이마가 깨어지도록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그의 진심 어린 효심 앞에, 서릿발 같던 염라대왕의 얼굴에 처음으로 희미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칼을 든 심판자는, 한 인간의 위대한 사랑 앞에서 조용히 자신의 칼을 거두었습니다. 꽃을 든 관음보살의 얼굴에서는, 눈부신 자비의 광채가 뿜어져 나와 궁전 전체를 환하게 비추었습니다. 염라대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장엄한 목소리로 선언했습니다. "들었노라. 네 선택은, 천 가지 공덕을 쌓는 것보다 위대하고, 만 가지 죄업을 씻어낼 만큼 숭고하다. 네 지극한 효심이 저승의 법도를 이겼으니, 내 너의 모든 죄를 사하노라." 관음보살이 이어서 말했습니다. "너의 어머니는, 너와 같은 아들을 둔 공덕으로 남은 생을 병고 없이 평안하게 보낼 것이며, 수명이 다하는 날, 고통 없이 극락왕생하게 될 것이다. 또한, 너희 두 모자는 다음 생에 반드시 귀한 인연으로 다시 만나, 평생을 서로 의지하며 행복하게 살게 될 것이다." 그것은 죄인에게 내려진 판결이 아니었습니다. 의인에게 내려진 축복이었습니다. 허 서방의 영혼은 빛에 휩싸여, 평온한 마음으로 다음 생을 향한 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가 떠난 이승의 초가집에서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십 년간 자리에 누워 신음하던 노모가, 그날 이후로 씻은 듯이 병이 나아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의아해했지만, 노모만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비록 다른 세상에 있을지라도, 여전히 자신을 위하는 아들의 지극한 효심 때문이라는 것을.

유튜브 엔딩 멘트

오늘 밤, ‘스르륵 잠드는 이야기’와 함께한 백정 허 서방의 이야기, 어떠셨나요? 엄정한 심판의 칼날 앞에서도, 가난한 삶을 택하게 한 그의 위대한 선택. 그것은 바로 '어머니'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이자, 세상 모든 자식의 마음일 것입니다. 오늘 밤, 잠자리에 드시기 전, 곁에 계신 혹은 마음속에 계신 부모님을 한번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여러분의 모든 밤이 사랑과 효심으로 따뜻하기를 바라며, 편안한 밤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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