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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울에 어머님이 드시고 싶다 하신 잉어

    『삼강행실도』 설화를 바탕으로 한 야담 각색

    태그 1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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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 멘트

    한겨울, 강물까지 돌처럼 얼어붙은 밤. 죽음을 앞둔 어머니는 잉어국 한 숟갈이 먹고 싶다는 마지막 소원을 내비칩니다. 효자는 피투성이가 된 채 얼음 위에 엎드려 기도하는데요. 바로 그 순간, 강 밑에서 세 번의 울림이 들려오며 믿을 수 없는 기적이 시작됩니다.

    ※ 1단계. 첫 장면 — 얼어붙은 산촌의 겨울

    엄동설한이 닥친 산골 마을에 사흘 밤낮으로 눈이 쏟아졌다. 산과 들은 온통 하얗게 덮였고, 초가의 처마마다 매달린 고드름은 칼날처럼 번뜩였다. 산 아래를 흐르던 강도 꽁꽁 얼어붙었다. 마을 사람들은 소달구지가 지나가도 얼음이 깨지지 않을 것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해가 지면 집 밖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었고, 들짐승의 울음만 눈 덮인 골짜기를 떠돌았다.

    그 깊은 밤, 김만복은 나뭇짐을 등에 지고 산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눈에 젖은 장작은 돌덩이처럼 무거웠고, 해진 짚신 사이로 스며든 눈이 발가락을 바늘처럼 찔렀다. 몇 번이나 비탈에서 미끄러졌지만 만복은 나뭇짐을 내려놓지 않았다. 집에서 중병을 앓는 어머니와 자신을 기다릴 아내와 어린 딸을 생각하면 다리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사립문을 밀고 들어서자 아내 연실이 황급히 마당으로 나왔다.

    “이 추위에 어찌 이리 늦으셨어요? 손이 얼음장이 되었잖아요.”

    “나는 괜찮소. 어머님은 좀 어떠시오?”

    연실은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만 깨물었다. 그 표정만으로도 만복은 어머니의 병세가 더욱 깊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아궁이 불에 손을 녹일 겨를도 없이 안방으로 들어갔다. 희미한 등잔불 아래 어머니 박씨가 누워 있었다. 사흘 동안 미음 한 숟갈 제대로 삼키지 못한 얼굴은 종잇장처럼 창백했고, 이마에서는 뜨거운 열이 났다. 그러나 이불 밖으로 나온 손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어머니, 만복이가 돌아왔습니다.”

    박씨는 힘겹게 눈을 떴다. 아들의 젖은 옷과 갈라진 손을 본 노모의 눈가에 근심이 번졌다.

    “이 눈보라에 또 산에 갔느냐? 나 같은 늙은이를 살리겠다고 네 몸을 상하게 하면, 내가 어찌 편히 눈을 감겠느냐.”

    “그런 말씀 마십시오. 땔나무를 팔아 약도 짓고 쌀도 사야 하지 않습니까. 아들이 어머니를 위해 일하는 것이 어찌 고생이겠습니까.”

    만복은 애써 웃었지만 박씨의 거친 숨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았다. 연실이 묽은 미음을 떠먹이려 했으나 박씨는 한 모금도 넘기지 못했다. 잠시 후 박씨는 다시 깊은 잠에 빠졌고, 방 안에는 끊어질 듯 가느다란 숨소리만 남았다.

    만복은 잠든 어머니 곁을 떠나지 못했다. 밤이 깊어지자 그는 처마 아래로 나가 눈보라 속의 강을 바라보았다. 그때 얼어붙은 강 쪽에서 ‘쩡’ 하는 기이한 소리가 울렸다. 마치 단단한 얼음 아래 갇힌 무엇인가가 세상을 향해 문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였다. 만복은 한참 귀를 기울였으나 달빛 아래에는 끝없이 펼쳐진 얼음과 눈뿐이었다. 그는 까닭을 알 수 없는 불안에 사로잡힌 채 두 손을 모았다.

    “하늘이시여, 제 어머니가 이 겨울만 무사히 넘기게 해 주십시오. 제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하지만 대답하듯 돌아온 것은 차가운 바람과 또 한 번의 깊은 얼음 울림뿐이었다.

    ※ 2단계. 주제 제시 — 효도는 마음을 먼저 듣는 일

    이튿날 아침, 만복은 눈 덮인 고개를 넘어 이웃 마을의 의원을 찾아갔다. 백발의 의원은 폭설 때문에 길을 나설 수 없다며 처음에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만복이 눈밭에 무릎을 꿇고 간청하자 마침내 약재 상자와 침통을 챙겼다. 만복은 의원이 넘어질까 염려하여 업다시피 부축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의원은 박씨의 손목을 짚고 오랫동안 맥을 살폈다. 눈꺼풀을 들어 보고 혀의 빛깔을 확인한 뒤에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 병으로 기력이 바닥났네. 약을 쓰려 해도 몸이 약을 받을 힘이 없으니 걱정이야. 우선 무엇이든 먹어 기운을 붙여야 하네.”

    “어떤 음식이 좋겠습니까? 산삼이든 녹용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제 몸을 팔아서라도 구하겠습니다.”

    “비싼 음식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네. 환자의 마음이 당기고, 한 숟갈이라도 삼킬 수 있는 음식이 가장 좋은 법이지.”

    만복은 곧바로 어머니 곁에 앉았다.

    “어머니, 무엇이 드시고 싶으십니까? 죽이든 고기든 과일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박씨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물이나 한 모금 마시면 족하다.”

    하지만 만복은 어머니의 말이 진심이 아님을 알았다. 흉년이 들었던 어린 시절에도 박씨는 자신은 배가 부르다며 마지막 떡 한 조각을 아들에게 주었다. 어린 만복은 그 말을 그대로 믿고 떡을 받아먹었다.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 보니 어머니는 빈 솥바닥에 눌어붙은 죽을 긁어 드시고 있었다. 그때부터 만복은 어머니의 ‘괜찮다’는 말 속에는 언제나 감춰진 배고픔과 걱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원은 돌아가기 전 만복을 마당으로 불러 조용히 말했다.

    “자네의 효심이 깊다는 것은 온 마을이 아네. 하지만 부모에게 값비싼 것을 바치는 것만 효도가 아닐세. 아프다는 말 뒤에 감춘 두려움을 듣고, 괜찮다는 말 속에 숨긴 소원을 살피는 것이 먼저지.”

    “어머니께서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시니, 무엇을 해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조급해하지 말게. 곁에 앉아 옛이야기를 나누고,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들어 보게. 사람의 입맛은 혀가 아니라 마음속 기억에서 돌아올 때도 있으니.”

    의원은 잠시 만복의 상처 난 손을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다만 한 가지는 명심하게. 부모를 살리겠다며 자네 목숨을 함부로 버리는 것도 효도라 할 수 없네. 자식이 죽어 얻은 음식이 부모의 목으로 넘어가겠는가?”

    그 말은 만복의 마음에 깊이 박혔다. 그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박씨는 아들의 손바닥에 박인 굳은살과 얼어 터진 상처를 천천히 어루만졌다.

    “이 손이 어찌 이리 거칠어졌느냐. 내가 너를 낳았을 때는 꽃잎처럼 보드랍던 손이었는데.”

    “어머니를 모시고 딸을 키우며 생긴 손이니, 제게는 부끄러운 상처가 아닙니다.”

    “너는 이미 할 만큼 했다. 그러니 이제는 나 때문에 더 애쓰지 마라.”

    만복은 고개를 저었다.

    “자식이 부모의 은혜를 어찌 다 갚겠습니까. 다만 어머니께서 정말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만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박씨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눈가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만복은 그 눈물을 닦아 주며 밤이 새도록 어머니의 곁을 지켰다. 그날 그는 효도란 자신의 정성을 드러내는 일이 아니라, 부모가 차마 말하지 못한 마음을 듣는 데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 3단계. 설정 — 가난하지만 서로를 품은 식구들

    만복의 집에는 논 한 마지기도 없었다. 봄과 여름에는 남의 밭을 갈았고, 가을에는 산에서 밤과 도토리를 주웠으며, 겨울에는 장작을 해서 장터에 내다 팔았다. 가진 것이라고는 쓰러져 가는 초가와 박씨가 시집올 때 가져왔다는 낡은 반닫이 하나뿐이었다. 풍년이 든 해에도 흰쌀밥을 먹는 날은 손에 꼽았고, 흉년이 들면 보리쌀에 나무껍질 가루를 섞어 죽을 끓였다.

    그래도 만복은 새벽마다 어머니의 방부터 살폈다. 자신은 찬밥으로 끼니를 때워도 어머니의 미음에는 쌀을 한 줌 더 넣었다. 장터에서 엿 한 조각을 얻으면 어린 딸보다 먼저 어머니에게 드렸고, 겨울밤에는 자신의 솜이불을 어머니에게 덮어 주었다. 아내 연실도 시어머니를 친어머니처럼 모셨다. 박씨가 기침으로 밤을 새우면 등을 쓸어 주었고, 젖은 빨래를 하다 손이 부르터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여섯 살 난 딸 봄이도 할머니를 무척 따랐다. 봄이는 박씨의 차가운 손을 제 작은 품속에 넣어 녹였고, 약을 먹기 싫어하면 자신도 쓴물을 마시는 시늉을 하며 웃겼다.

    “할머니, 이 약 다 드시면 봄이가 호랑이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네가 언제부터 이야기꾼이 되었느냐?”

    “할머니한테 백 번이나 들었으니 이제는 제가 더 잘해요.”

    박씨는 손녀의 재롱 앞에서만 잠시 병을 잊고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미소가 사라지고 나면 기침은 더 깊어졌다. 만복은 약값을 마련하려고 장작을 헐값에 팔았고, 끝내 황 부자에게 보리 두 섬을 빌렸다. 황 부자는 봄까지 원금과 이자를 갚지 못하면 초가를 넘겨야 한다는 문서에 손도장을 받았다.

    “사람 목숨이 급하니 곡식을 빌려주는 것이오. 하지만 인정과 빚은 다른 것이니 날짜를 어기면 안 되네.”

    황 부자는 그렇게 말했지만 이자를 원금의 절반이나 붙였다. 만복은 억울해도 따질 수 없었다. 어머니의 약을 지으려면 당장 곡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자신 때문에 집안이 빚더미에 앉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음식을 더욱 멀리했다.

    “나는 이제 살 만큼 살았다. 약을 더 쓰지 말고 그 돈으로 봄이에게 따뜻한 신을 사 주어라.”

    “어머니께서 일어나셔야 봄이도 새 신을 신고 뛰는 모습을 보여 드리지요.”

    “나 하나 때문에 온 식구가 굶고 있지 않느냐.”

    “굶는 것이 아니라 함께 견디는 것입니다. 가족이 어찌 서로를 짐이라 하겠습니까?”

    그러나 만복이 아무리 달래도 박씨는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너무 깊어 오히려 각자의 아픔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만복은 어머니가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지 못해 답답했고, 박씨는 자신의 소원이 아들의 고생이 될까 두려워 입을 닫았다.

    그날 밤, 봄이는 할머니의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할머니, 겨울이 지나면 제일 먼저 무엇을 보고 싶어요?”

    “글쎄다. 따뜻한 햇볕도 보고 싶고, 매화꽃도 보고 싶구나.”

    “그것 말고 정말 보고 싶은 거요.”

    박씨는 한동안 눈을 감고 옛 기억을 더듬었다.

    “어릴 적 살던 마을 앞에는 큰 강이 있었단다. 봄이 되면 은빛 물고기들이 물 위로 뛰어올랐지. 네 외할머니가 끓여 주시던 잉어국 냄새도 참 좋았는데…….”

    그 말을 하던 박씨의 입가에 오랜만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방문 밖에 서 있던 만복은 그 말을 우연히 들었다. 아직 소원이라고 부르기에는 작은 기억이었지만, 어머니의 흐릿한 눈에 잠시 생기가 돌아오는 것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 4단계. 사건 발생 — 한겨울에 나온 단 하나의 소원

    그날 밤 박씨의 열은 더욱 높아졌다. 노모는 돌아가신 남편의 이름을 부르다가 어린 시절 살던 강가 이야기를 중얼거렸다. 만복은 찬물에 적신 수건을 이마에 올려 주고, 연실은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방이 식지 않도록 애썼다. 그러나 박씨의 몸은 불처럼 뜨거웠다가도 순식간에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기를 반복했다.

    “만복아, 거기 있느냐?”

    “예, 어머니. 제가 여기 있습니다.”

    “얼굴을 가까이 대 보아라. 눈이 흐려 네가 잘 보이지 않는구나.”

    만복이 고개를 숙이자 박씨는 떨리는 손으로 아들의 뺨을 만졌다.

    “이상한 일이구나. 아까부터 네 외할머니가 끓여 주시던 잉어국 냄새가 나는 듯하다. 푹 고아 하얀 국물이 우러나면, 그 국물에 밥을 말아 먹곤 했지.”

    만복은 숨을 죽였다.

    “어머니, 잉어가 드시고 싶으십니까?”

    박씨는 잠시 망설이다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점만 먹으면 기운이 날 것도 같다. 하지만 지금은 한겨울이지 않느냐. 강도 얼었는데 잉어가 어디 있겠느냐. 방금 말은 못 들은 것으로 하여라.”

    “아닙니다. 반드시 구해 오겠습니다.”

    “그러지 마라. 내가 정신이 흐려 쓸데없는 말을 했다. 겨울 강에 나갔다가 네가 잘못되면 나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박씨는 더 말하려 했지만 심한 기침이 터졌다. 입을 막은 수건에는 붉은 피가 번졌다. 만복과 연실의 얼굴이 동시에 굳었다. 박씨는 피 묻은 수건을 감추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날이 밝자 만복은 장터로 달려갔다. 어물전마다 찾아가 잉어가 있는지 물었지만 상인들은 고개를 저었다. 말린 조기와 소금에 절인 고등어는 있어도 살아 있는 민물고기는 한 마리도 없었다.

    “이 추위에 잉어를 찾다니, 자네 정신이 나간 것 아닌가?”

    “병든 어머니께서 한 점만 드시고 싶다 하셨습니다.”

    “봄이 오기 전에는 어렵네. 강이 저렇게 얼었는데 누가 잡아 주겠는가?”

    읍내 부잣집 연못에 잉어가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지만 연못은 바닥까지 얼어 있었다. 창고에 소금으로 절인 잉어가 있다는 황 부자의 말에 만복은 다시 희망을 품었다.

    “그것이라도 주십시오. 품삯으로 갚겠습니다.”

    황 부자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만복을 훑어보았다.

    “그 잉어는 귀한 손님상에 올리려고 둔 것이네. 빌린 보리의 이자를 오늘 갚고, 자네 초가 문서까지 미리 넘긴다면 생각해 보겠네.”

    “썩지 않게 소금에 오래 절인 잉어가 병자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싫으면 그만두게. 나는 자네 어머니를 살려야 할 의무가 없으니.”

    만복은 주먹을 움켜쥐었지만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다. 빈손으로 집에 돌아오자 박씨는 아들의 젖은 옷과 지친 얼굴만 보고도 모든 일을 짐작했다.

    “내가 괜한 말을 해서 너를 고생시켰구나. 잉어는 이제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나 만복은 어머니가 말라붙은 입술로 침을 삼키는 모습을 보았다. 잊었다는 말은 아들을 위한 거짓말이었다. 그는 어머니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며 조용히 말했다.

    “어머니께서 평생 제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이번에는 단 하나뿐인 어머니의 소원을 제가 들어드리겠습니다. 봄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어떻게든 잉어를 찾아오겠습니다.”

    그 약속이 앞으로 자신을 어떤 시련 속으로 이끌지, 그때의 만복은 알지 못했다.

    ※ 5단계. 고민 — 어머니의 소원과 자식의 목숨

    만복은 해가 기울기 전에 강가로 내려갔다. 강 가장자리의 얼음을 도끼로 두드리자 쇳소리처럼 단단한 울림이 퍼졌다. 도끼날이 튕겨 올라 손목이 얼얼할 정도였다. 그는 몇 번이나 자리를 옮겨 보았으나 어디에도 물이 드러난 곳은 없었다. 강 전체가 거대한 바위로 변한 듯했다.

    마침 장작을 실어 나르던 마을 사람들이 그를 발견했다.

    “만복아, 거기서 무엇을 하는 게냐?”

    “잉어를 잡을 만한 자리를 찾고 있습니다.”

    “이 한겨울에 잉어라니? 며칠 전에도 건너 마을 나무꾼이 얼음을 깨다가 빠져 죽을 뻔했다. 얼른 돌아가거라.”

    늙은 어부도 만복의 말을 듣고 혀를 찼다.

    “잉어는 겨울이면 물이 깊은 곳으로 내려가 꼼짝하지 않는다. 게다가 얼음 밑의 물살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사납다. 얼음이 깨지면 장정 열 명이 와도 건져 내지 못해.”

    만복은 집으로 돌아왔으나 마음을 정할 수 없었다. 도끼를 갈고 새끼줄과 통발을 준비하면서도 의원의 말이 떠올랐다. 부모를 살리겠다며 자식이 목숨을 버리는 것은 효도가 아니라고 했다. 자신에게는 어머니뿐 아니라 아내와 어린 딸도 있었다. 만약 강에서 변을 당한다면 병든 어머니는 자신 때문에 아들이 죽었다는 죄책감 속에서 눈을 감게 될 것이고, 연실과 봄이는 의지할 사람을 잃게 된다.

    연실은 말없이 남편이 준비한 새끼줄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강에 가시려는 것이지요?”

    “아직 정한 것은 아니오.”

    “거짓말하지 마세요. 당신은 이미 마음을 정한 얼굴이에요.”

    만복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어머님이 오늘 밤을 넘기실지 알 수 없소. 잉어 한 점이면 기운을 되찾으실 수도 있다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곁에서 숨이 끊어지는 것을 볼 수는 없소.”

    “저도 어머님을 살리고 싶어요. 하지만 당신까지 잃으면 어머님께서 그 잉어를 기쁘게 드실 수 있을까요?”

    “그러니 목숨을 함부로 걸지는 않겠소. 허리에 줄을 묶고, 얼음이 안전한 곳만 살피겠소.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곧 돌아오리다.”

    연실은 남편의 말이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임을 알았다. 그래도 더는 말릴 수 없었다. 그때 방 안에서 박씨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만복이 달려가 보니 어머니는 피가 묻은 수건을 이불 밑으로 감추고 있었다.

    “어머니, 또 피를 토하신 겁니까?”

    “아니다. 입술이 조금 터졌을 뿐이다.”

    “제게까지 숨기시면 어떻게 합니까?”

    박씨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아들의 손목을 잡았다.

    “나는 잉어가 먹고 싶지 않다. 강에 나갈 생각이라면 당장 버려라. 네가 다치면 나는 그 자리에서 혀를 깨물고 죽을 것이다.”

    만복의 눈가가 붉어졌다.

    “어머니께서는 제가 어릴 때 열병에 걸리자 눈보라를 뚫고 의원을 찾아가셨다 들었습니다. 그때 어머니께서도 무서우셨을 것 아닙니까?”

    “부모가 자식을 살리는 일과 자식이 늙은 부모를 위해 목숨을 거는 일은 다르다.”

    “제게는 다르지 않습니다. 어머니도 제 가족이고, 제가 지켜야 할 사람입니다.”

    그날 밤 만복은 장작더미 옆에서 오래도록 도끼를 바라보았다. 가야 할지, 남아야 할지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 방 안에서 봄이가 할머니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 아버지가 잉어를 잡으러 가면 꼭 돌아오게 해 달라고 제가 하늘에 빌게요.”

    만복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는 마침내 결심했다. 무모하게 목숨을 내던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 돌아올 준비를 철저히 하여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실패할지라도 가만히 앉아 후회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 6단계. 2막 진입 — 얼어붙은 강을 향한 발걸음

    새벽닭이 울기도 전, 만복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솜이 거의 빠진 저고리 위에 낡은 도포를 겹쳐 입고, 발에는 짚신을 두 켤레나 포개어 신었다. 허리에는 굵은 새끼줄을 감았으며 어깨에는 도끼와 대나무 통발을 멨다. 작은 등잔과 부싯돌, 마른 솔가지도 챙겼다.

    연실은 밤새 잠들지 않고 남편의 주먹밥을 만들었다. 쌀이 부족해 보리와 조를 섞었지만 조금이라도 든든하게 하려고 남은 참기름을 모두 발랐다. 화롯불에 달군 돌도 두꺼운 천으로 싸서 품 안에 넣어 주었다.

    “이 돌이 식기 전에 한 번은 몸을 녹이세요. 손에 감각이 없어지면 도끼를 놓고 바로 돌아오셔야 합니다.”

    “그리하리다. 절대 무리하지 않겠소.”

    봄이는 졸린 눈을 비비며 마당으로 나왔다. 아이는 밤새 푸른색과 붉은색 실을 엮어 만든 짧은 끈을 아버지의 손목에 묶었다.

    “아버지, 이걸 보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잊지 않을 거예요.”

    “우리 봄이가 준 끈이 있으니 아버지가 어찌 길을 잃겠느냐.”

    “잉어를 못 잡아도 괜찮아요. 아버지는 꼭 돌아오셔야 해요.”

    만복은 딸을 품에 안았다. 그 말이 가슴에 박혀 한동안 아이를 놓을 수 없었다. 그는 안방으로 들어가 잠든 어머니에게 절했다. 박씨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만복이 돌아서려는 순간 희미하게 입을 열었다.

    “만복아.”

    “깨셨습니까?”

    “내가 가지 말라 해도 가려는 것이냐?”

    “위험하면 곧 돌아오겠습니다. 어머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박씨는 아들의 소매를 붙잡으려 했지만 손에 힘이 없었다.

    “잉어보다 네가 먼저다. 그것만 잊지 마라.”

    만복은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사립문을 열자 눈보라가 얼굴을 후려쳤다. 그는 가족을 향해 마지막으로 고개를 숙인 뒤 강으로 향했다.

    강가에는 사람의 발자국 하나 없었다. 바람이 얼음 위에 쌓인 눈을 쓸어 가며 희뿌연 장막을 만들었다. 만복은 먼저 물살이 약해 보이는 가장자리에서 도끼를 내리쳤다. ‘쩡’ 하는 굉음과 함께 도끼가 튕겨 올라왔다. 충격으로 손바닥이 찢어져 피가 배어 나왔다. 스무 번을 내리쳐도 얼음에는 작은 흠집만 생겼다.

    그는 늙은 어부가 말했던 상류의 따뜻한 샘을 찾아 걸었다. 하지만 샘이 흘러든다는 곳까지도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만복은 얼음에 귀를 대고 물소리를 들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곳도 있었고, 어떤 곳에서는 아주 멀리서 물이 흐르는 듯한 울림이 올라왔다.

    해가 떠오를 무렵 그는 소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다. 만복은 허리에 감은 줄의 반대쪽 끝을 나무에 단단히 묶었다. 매듭을 세 번 확인한 다음 조심스럽게 얼음 위로 발을 내디뎠다. 발밑에서 낮고 둔탁한 진동이 느껴졌다. 두꺼운 얼음 아래에는 시커먼 물살이 흐르고 있을 터였다.

    만복은 강 한가운데로 조금씩 나아갔다. 몇 걸음마다 엎드려 얼음 아래의 소리를 들었다. 한참 뒤 어느 지점에서 희미한 첨벙거림이 들리는 듯했다. 그는 허리춤의 붉은 천을 풀어 그 자리에 표시했다. 다시 한번 매듭과 얼음의 상태를 확인한 만복은 도끼를 높이 들어 올렸다.

    “어머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첫 번째 도끼질이 적막한 강 위에 울려 퍼졌다. 익숙한 집과 가족의 온기를 떠나 얼음 밑 생명을 찾아 나선 만복의 길이 비로소 시작되고 있었다.

    ※ 7단계. B 이야기 — 어머니가 아들을 살린 오래된 겨울

    얼음 위에서 도끼를 내리치던 만복은 어린 시절의 어느 겨울을 떠올렸다. 그해에도 지금처럼 눈이 많이 내렸다. 아버지가 산에서 나무를 하다 벼랑 아래로 떨어져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박씨는 삯바느질과 품팔이로 어린 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여섯 살이던 만복은 갑자기 심한 열병을 앓았다. 온몸에 붉은 반점이 돋고 정신을 잃은 채 헛소리를 했다. 마을 의원은 이미 병이 깊어 약을 써도 살리기 어렵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박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십 리 밖 고을에 어린아이의 열병을 잘 치료하는 의원이 있다는 말을 듣고, 눈보라가 몰아치는 밤에 아들을 업고 길을 나섰다.

    등에 업힌 만복이 춥다고 보채자 박씨는 자신의 겉옷을 벗어 아이를 감쌌다. 속적삼만 입은 채 허리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다가 몇 번이나 넘어졌고, 얼어붙은 돌에 발이 찢겨 짚신이 피로 젖었다. 그래도 박씨는 아들을 한 번도 눈밭에 내려놓지 않았다.

    “만복아, 잠들면 안 된다. 어미 목을 꼭 붙잡아라.”

    “어머니, 집에 가고 싶어요.”

    “조금만 참아라. 의원님께 가면 금세 나을 것이다. 네가 나으면 어미가 따뜻한 엿을 사 주마.”

    박씨는 그렇게 아들을 달래며 밤새 산길을 걸었다. 의원의 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손발이 얼어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 다행히 만복은 치료를 받고 살아났지만, 박씨는 그때 입은 동상 때문에 평생 겨울마다 무릎이 붓고 손가락 마디가 아팠다.

    만복은 자란 뒤에야 이웃 노인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에게 어째서 목숨까지 걸었느냐고 묻자 박씨는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부모가 자식을 살리는 데 까닭이 어디 있느냐. 네가 숨을 쉬어야 나도 사는 것이지.”

    그 말을 들었을 때도 만복은 제대로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언젠가 잘 모시면 된다고 생각했으나 세월은 빠르게 흘렀고, 어느새 어머니는 병석에 누워 있었다.

    그 기억은 얼어붙은 만복의 손에 다시 힘을 주었다. 도끼를 내리칠 때마다 어린 자신을 업고 눈길을 걷던 어머니의 발걸음이 떠올랐다.

    한편 초가에서는 연실과 봄이가 박씨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박씨는 아들이 강으로 갔다는 사실을 알고 눈물을 흘렸다.

    “내가 늙어 망령이 났다. 어찌 한겨울에 잉어를 먹고 싶다는 말을 했을까. 만복이가 잘못되면 나는 살아서도 저승에서도 죄인이 될 것이다.”

    연실은 박씨의 손을 꼭 잡았다.

    “어머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어도 저 사람은 어머님 마음을 알았다면 나갔을 것입니다. 만복 아비가 효도하는 것은 남들에게 칭찬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자신이 받은 사랑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어미가 자식을 위험한 곳으로 보내 놓고 어찌 편히 누워 있겠느냐.”

    “그러니 어머님께서 버텨 주셔야 합니다. 만복 아비가 돌아왔을 때 눈을 뜨고 맞아 주셔야 해요.”

    봄이도 할머니의 손 위에 제 손을 포갰다.

    “할머니, 아버지가 잉어를 못 잡아도 혼내지 마세요. 대신 살아서 돌아오면 잘했다고 해 주세요.”

    박씨는 손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힘겹게 웃었다. 세 여인은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만복을 기다렸다. 강 위에 홀로 있던 만복 역시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을 떠올렸다. 어머니를 위해 강에 나왔지만, 아내와 딸을 위해 반드시 살아 돌아가야 했다. 그는 효도가 한 사람을 위해 다른 가족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 했다.

    ※ 8단계. 재미 구간 — 잉어를 찾아 헤맨 눈보라 속 사투

    만복은 붉은 천으로 표시한 자리를 반나절 동안 내리쳤다. 손바닥의 상처가 벌어져 도끼자루가 피로 미끄러웠지만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주먹만 한 구멍이 뚫리자 검은 강물이 위로 솟구쳤다. 만복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가 대나무 통발에 볶은 보릿가루를 넣어 얼음 밑으로 밀어 넣었다.

    기다리는 동안 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로 눈발이 얼굴을 때렸다. 한참 뒤 통발을 끌어 올렸지만 썩은 나뭇잎과 작은 돌멩이만 들어 있었다. 만복은 미끼를 바꾸어 다시 내려 보았다. 이번에는 말린 지렁이와 곡식가루를 넣었으나 결과는 같았다.

    그는 한 곳만 지킬 수 없다고 판단하여 상류로 올라갔다. 갈대가 무성했던 자리와 물살이 휘도는 굽이마다 얼음에 귀를 대 보았다. 그러다 눈밭에 쓰러진 사람을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늙은 어부였다. 장작을 구하러 나왔다가 발을 헛디뎌 다친 모양이었다.

    “정신 차리십시오. 이대로 계시면 얼어 죽습니다.”

    만복은 자신의 품에 있던 데운 돌을 노인의 가슴에 넣어 주고, 연실이 싸 준 주먹밥도 내놓았다.

    “그것은 자네가 먹어야 하지 않는가?”

    “저는 아직 걸을 힘이 있습니다. 어르신부터 드십시오.”

    노인은 주먹밥을 조금씩 먹고 기운을 되찾았다. 만복은 노인을 업어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바위 아래로 옮겼다. 노인은 만복이 잉어를 찾는다는 말을 듣고 강 상류의 용소를 알려 주었다.

    “이 강의 큰 잉어들은 겨울이면 용소 바닥에 모여든다. 물이 깊어 완전히 얼지 않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곳은 얼음이 얇고 물살이 사나우니 함부로 다가가서는 안 된다.”

    만복은 노인을 마을 어귀까지 부축한 뒤 용소를 향했다. 해가 기울 무렵에는 굶주린 들개 세 마리가 뒤를 따랐다. 만복이 걸음을 재촉할수록 들개들은 간격을 좁혔다. 그는 마른 솔가지에 불을 붙여 횃불을 만들고 짐승들을 향해 휘둘렀다. 들개 한 마리가 달려들자 도끼자루로 눈앞의 눈을 퍼 올려 시야를 가린 뒤 가까스로 물리쳤다.

    도망치는 과정에서 도끼를 잃어버린 만복은 맨손으로 눈더미를 파헤쳤다. 손톱이 들리고 피가 흘렀지만 도끼 없이는 얼음을 살필 수 없었다. 한참 만에 도끼를 찾아낸 그는 비틀거리며 용소에 도착했다.

    그곳의 얼음은 다른 곳보다 검고 투명했다. 얼음 아래로 커다란 그림자 하나가 움직이는 듯했다. 만복은 숨을 죽이고 가느다란 낚싯줄을 구멍 사이로 드리웠다. 잠시 후 줄이 세차게 당겨졌다.

    “걸렸다!”

    만복은 온 힘을 다해 줄을 끌어올렸다. 손바닥이 찢어지고 줄이 살을 파고들었지만 놓지 않았다. 마침내 얼음 구멍 위로 무언가가 올라왔다. 그러나 잉어가 아니라 오래전에 물에 빠진 낡은 짚신 한 짝이었다.

    만복은 허탈함에 주저앉았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가 입에서 새어 나왔다.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고 통발은 비어 있었다. 그때 멀리 눈보라 속에서 방울 소리가 들렸다. 물고기를 담은 나무통을 실은 작은 수레가 강둑길을 지나고 있었다. 만복은 마지막 희망을 붙잡고 방울 소리를 향해 달려갔다.

    ※ 9단계. 중간 전환점 — 손에 넣은 한 마리와 무너진 희망

    수레를 끌던 행상인은 큰 나무통에 살아 있는 잉어 한 마리를 싣고 있었다. 인근 현감의 잔칫상에 올리려고 가을부터 깊은 연못에 보관했다가 가져가는 중이었다. 얼음물 속에서 움직이는 붉은 지느러미를 본 만복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주인장, 그 잉어를 제게 파십시오.”

    “이것은 이미 주인이 정해진 물건이오. 현감 댁에 가져갈 것이니 길을 비키시오.”

    만복은 눈 위에 무릎을 꿇었다.

    “중병을 앓는 어머니께서 잉어 한 점이 드시고 싶다 하셨습니다. 며칠째 아무것도 넘기지 못하고 계십니다. 값을 두 배로 치르겠습니다.”

    행상인은 만복의 해진 옷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

    “두 배는커녕 반값도 낼 형편이 아니지 않은가. 현감과의 약속을 어기면 내가 벌을 받을 수도 있소.”

    만복은 품속을 뒤졌지만 가진 돈은 동전 몇 닢뿐이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 초가의 집문서를 꺼냈다. 황 부자에게 빌린 곡식 때문에 담보로 잡힌 문서였지만 아직 완전히 넘어가지는 않은 상태였다.

    “이 집문서를 드리겠습니다. 비록 낡은 초가지만 마당과 텃밭이 딸려 있습니다.”

    “가족과 상의는 했소?”

    “어머니가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하실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시간이 없습니다.”

    행상인은 문서를 꼼꼼히 살피더니 욕심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만복은 손도장을 찍고 잉어를 물동이에 옮겨 담았다. 가족에게 말도 없이 집을 내놓았다는 죄책감이 들었지만, 물속에서 힘차게 움직이는 잉어를 보자 어머니를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이 더 컸다.

    그는 물동이를 품에 안고 눈길을 달렸다. 잉어가 움직일 때마다 물이 출렁이며 옷을 적셨다. 산모퉁이를 돌던 중 만복은 얼어붙은 돌을 밟고 넘어졌다. 물동이가 손에서 빠져나가 눈밭에 굴렀고, 잉어는 차가운 바닥으로 튀어나왔다.

    “안 된다!”

    만복은 황급히 잉어를 주워 물동이에 넣었다. 물은 절반 이상 쏟아졌지만 잉어는 아직 아가미를 움직였다. 그는 가까운 개울에서 물을 채우려 했으나 개울도 얼어붙어 있었다. 만복은 눈을 녹여 물동이에 넣으며 다시 길을 재촉했다.

    집이 보이는 고개에 이르렀을 때 잉어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물동이 속의 물이 살얼음으로 변하며 잉어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만복은 품속에 잉어를 넣어 녹여 보았으나 붉은 아가미는 닫힌 채였다.

    그때 비린내를 맡은 들개들이 다시 나타났다. 만복은 물동이를 안고 도망쳤지만 비탈에서 발을 헛디뎌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머리를 바위에 부딪친 그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물동이는 깨져 있었고 잉어는 사라지고 없었다. 눈 위에는 짐승의 발자국과 비늘 몇 개만 흩어져 있었다.

    만복은 기어 다니며 잉어를 찾았다.

    “제발, 한 점만이라도 남겨 다오. 어머니께 가져가야 한다.”

    하지만 들개들은 이미 어둠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손안에 남은 것은 달빛을 받아 차갑게 빛나는 비늘 한 조각뿐이었다. 만복은 집문서까지 내주고도 빈손이 되었다는 사실에 눈밭을 치며 울었다. 그래도 어머니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는 은빛 비늘 하나를 품에 넣고 피투성이가 된 몸을 일으켰다.

    ※ 10단계. 위기 압박 — 꺼져 가는 숨과 거세지는 폭설

    만복이 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밤이 깊어 있었다. 연실은 비틀거리며 들어오는 남편을 보고 달려 나갔다. 옷은 찢어지고 얼굴에는 피와 눈이 엉겨 붙어 있었다. 손가락에서는 계속 피가 흘렀고 입술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잉어는요? 어찌 된 일이에요?”

    만복은 대답하지 못했다. 품속에서 은빛 비늘 하나를 꺼내 연실의 손에 놓았다. 연실은 그 작은 비늘과 남편의 텅 빈 눈을 번갈아 보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했다.

    “내가 집문서를 주고 잉어를 구했소. 그런데 오는 길에 잃고 말았소. 어머니를 살리기는커녕 당신과 봄이가 살 집까지 없애 버렸소.”

    연실의 눈에 눈물이 고였지만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다.

    “집은 다시 지으면 됩니다. 당신이 살아 돌아왔으니 그것으로 됐어요.”

    “어머니께 무엇이라 말씀드리겠소?”

    “지금은 문서보다 어머님 곁으로 가는 것이 먼저예요.”

    방 안으로 들어가자 박씨는 거의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만복은 차마 실패했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어머니,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따뜻한 국을 곧 끓여 드리겠습니다.”

    박씨는 희미하게 눈을 떴다.

    “네가 무사히 왔느냐?”

    “예, 돌아왔습니다.”

    “그러면 됐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바로 그때 황 부자가 하인들을 데리고 찾아왔다. 행상인에게서 만복의 집문서를 샀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날이 밝으면 초가를 비우라고 했다. 게다가 빌린 보리의 이자는 별도의 빚이니 그것도 갚으라고 몰아세웠다.

    “사람이 죽어 가는 집에서 꼭 지금 이러셔야 합니까?”

    연실이 항의하자 황 부자는 냉정하게 대꾸했다.

    “병든 노인이 있다고 약속이 없어지는가? 가난할수록 문서를 함부로 내놓지 말았어야지.”

    만복은 하인들 앞에 무릎을 꿇고 며칠만 기다려 달라고 빌었다. 황 부자는 새 주인이 마음을 바꾸지 않는 한 자신도 어쩔 수 없다며 돌아섰다.

    설상가상으로 의원이 다시 박씨의 맥을 짚고는 오늘 밤이 고비라고 말했다.

    “맥이 실처럼 가늘어졌네. 새벽까지 기운을 붙이지 못하면 나도 장담할 수 없네.”

    만복은 말린 명태를 구해 국을 끓였지만 박씨는 비린 냄새만 맡아도 몸을 뒤틀었다. 연실이 남은 쌀을 모두 갈아 미음을 만들었으나 한 모금도 삼키지 못했다.

    밖에서는 폭설이 더욱 거세졌다. 눈이 방문의 절반까지 쌓였고, 지붕 위에서는 무거운 눈에 눌린 서까래가 삐걱거렸다. 만복이 다시 강으로 나가겠다고 하자 마을 사람들이 붙잡았다.

    “용소의 얼음에 금이 갔다. 지금 나가면 잉어를 구하기도 전에 물귀신이 될 것이다.”

    박씨도 마지막 힘을 내어 아들의 손목을 잡았다.

    “한 번 갔다 왔으면 됐다. 네가 또 나가면 나는 지금 당장 숨을 끊겠다.”

    만복은 어머니를 안심시키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손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맥박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방 안의 등잔불도 기름이 다 되어 가는 듯 작게 흔들렸다. 만복은 꺼져 가는 불꽃과 어머니의 창백한 얼굴을 번갈아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에 짓눌렸다.

    ※ 11단계. 최악의 순간 — 끝내 멎어 가는 어머니의 맥박

    자정이 가까워졌을 무렵 박씨의 호흡이 갑자기 멎었다. 가슴이 오르내리지 않았고, 만복이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어머니! 눈을 떠 보십시오. 만복이가 여기 있습니다!”

    만복은 어머니를 일으켜 등을 두드리고 차가운 손을 힘껏 문질렀다. 의원이 가르쳐 준 대로 가슴을 누르고 따뜻한 물을 입술 사이로 흘려 넣었지만 물은 그대로 흘러내렸다. 연실은 약탕기를 들고 달려오다가 문턱에 걸려 넘어졌다. 약사발이 깨지며 사기 조각과 검은 탕약이 방바닥에 흩어졌다.

    봄이는 할머니의 발치에 매달려 울부짖었다.

    “할머니, 봄이 두고 가지 마세요. 봄이 이야기 아직 다 못 했어요.”

    만복은 어머니의 코밑에 가느다란 실오라기를 대 보았다.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런데 한참 뒤 실 끝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숨이 완전히 끊긴 것은 아니었다.

    의원은 급히 침을 놓고 뜸을 떴다. 박씨의 손가락 끝을 따서 막힌 기운을 돌게 했지만 맥은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다.

    “아직 숨은 붙어 있네. 그러나 새벽 종이 울리기 전 기운을 되돌리지 못하면 손쓸 길이 없을 것이야.”

    만복은 방바닥에 엎드려 울었다.

    “제 수명을 가져가십시오. 어머니께서 하루만 더 사실 수 있다면 제 목숨의 절반이라도 내놓겠습니다.”

    의원은 만복의 어깨를 붙잡았다.

    “목숨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네. 정신을 차리게. 어머니께서 마지막까지 듣고 계실지도 모르니 따뜻한 말을 해 드리게.”

    만복은 떨리는 손으로 어머니의 얼굴을 감쌌다.

    “어머니, 제가 어릴 때 어머니 등에 업혀 눈길을 건넜다지요. 저는 그 은혜를 한 번도 제대로 갚지 못했습니다. 좋은 옷 한 벌 지어 드리지 못했고, 배불리 모시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어머니께서는 늘 충분하다고 하셨지요. 제발 한 번만 더 눈을 떠 주십시오.”

    박씨의 눈꺼풀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노모는 힘겹게 눈을 뜨고 아들의 뺨을 만졌다.

    “네가 태어난 날부터…… 나는 넘치는 복을 누렸다. 네가 착하게 자라 식구를 이루고 사는 모습을 보았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느냐.”

    “그런 말씀 마십시오. 봄이 크는 것도 보셔야 하고, 따뜻한 봄날도 맞으셔야 합니다.”

    “내게 더 갚으려 하지 마라. 너는 이미…… 충분히 좋은 아들이었다.”

    말을 마친 박씨는 다시 눈을 감았다. 손에서 힘이 빠지고 맥박은 더욱 희미해졌다. 만복은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 하나 들어드리지 못했다는 자책에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집문서를 내주고, 몸이 상하도록 강을 헤매고도 결과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가족이 살 집까지 빼앗길 처지였다.

    그때 만복의 손목에 묶인 색동 끈이 눈에 들어왔다. 잉어를 잡지 못해도 살아서 돌아오라는 봄이의 부탁이었다.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잉어를 얻기 위해 힘과 재물만 사용했을 뿐, 진심으로 하늘에 빌어 본 적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적을 바라는 것은 어리석을지 몰랐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어머니의 숨이 끊어지는 것을 바라볼 수는 없었다.

    만복은 자리에서 일어나 연실에게 고개를 숙였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강에 다녀오겠소. 잉어를 잡겠다고 무모하게 얼음을 깨지는 않겠소. 그저 어머니의 마음을 강물과 하늘에 전하고 오겠소.”

    연실은 남편의 눈빛을 바라보다가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 12단계. 영혼의 밤 — 얼음 위에 엎드린 아들의 기도

    만복은 도끼도 통발도 들지 않고 집을 나섰다. 연실은 남편의 허리에 긴 새끼줄을 감아 주었다.

    “강가의 가장 굵은 소나무에 묶으세요. 얼음 안쪽으로는 들어가지 마십시오.”

    “그리하겠소.”

    봄이는 잠이 덜 깬 얼굴로 아버지의 손목을 확인했다. 색동 끈은 피와 눈에 젖어 있었지만 풀리지 않았다.

    “아버지, 이 끈이 있으니 꼭 돌아오셔야 해요.”

    “그래. 할머니께서 눈을 뜨실 때까지 곁을 지키고 있거라.”

    만복은 눈보라 속으로 걸어갔다. 첫 번째로 강에 나왔을 때에는 도끼와 통발, 미끼와 줄이 있었다. 두 번째에는 집문서로 잉어를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빈손이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상처투성이 몸과 어머니를 살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뿐이었다.

    강에 도착한 그는 허리의 줄을 굵은 소나무에 세 번 감아 묶었다. 바람이 너무 세어 몸이 밀릴 정도였지만 만복은 천천히 얼음 위로 나아갔다. 낮에 도끼질했던 자리는 다시 살얼음으로 덮여 있었다. 그는 강 한가운데까지 가지 않고 어머니의 고향 쪽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차가운 기운이 무릎에서 허리까지 올라왔다. 만복은 두 손을 모아 하늘과 강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하늘이시여, 강을 지키는 신령이시여. 제가 제 효심을 자랑하려 이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 잉어를 주시면 세상에 이름을 알리겠다는 욕심도 없습니다. 다만 제 어머니께서 자식에게 짐이 되었다는 마음을 품고 돌아가실까 두렵습니다.”

    바람이 그의 목소리를 삼켰다. 만복은 더 크게 말했다.

    “어머니께서는 흉년마다 자신의 밥을 제게 주셨습니다. 제가 열병에 걸렸을 때에는 겉옷을 벗어 저를 감싸고 맨몸으로 눈길을 걸으셨습니다. 저는 그 은혜를 다 갚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지금껏 따뜻한 방 한 칸조차 마련해 드리지 못했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강은 여전히 돌처럼 굳어 있었고, 눈발만 만복의 어깨에 쌓였다. 손발의 감각이 점점 사라졌다.

    “제가 부족한 아들이라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다면 벌은 제게 내리십시오. 하지만 어머니께서 자신을 원망하며 떠나지는 않게 해 주십시오. 잉어 한 마리가 아니라 국물 한 숟갈이면 됩니다. 그 한 숟갈로 어머니께서 자신이 사랑받았다는 것을 아실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만복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자신을 업고 눈보라를 걸었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는 낡은 도포를 벗어 얼음 위에 깔고 그 위에 몸을 엎드렸다. 사람의 체온으로 두꺼운 강 얼음을 녹일 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잉어를 얻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어머니가 자신에게 주었던 온기를 아주 조금이라도 세상에 되돌려 주고 싶은 몸부림이었다.

    얼음의 냉기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만복은 정신이 흐려지는 가운데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은 듯했다.

    ‘만복아, 잉어보다 네가 먼저다.’

    그는 고개를 들어 집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과 조금만 더 기도하고 싶다는 마음이 맞섰다. 마침내 만복은 얼음에 뺨을 대고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제 목숨을 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제 진심만 받아 주십시오. 어머니께서 아직 저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순간 얼음 아래 아주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듯한 둔탁한 울림이 들려왔다.

    ※ 13단계. 3막 진입 — 강 밑에서 들려온 세 번의 울림

    처음에는 추위로 정신이 흐려져 환청을 들은 것이라 생각했다. 만복은 얼음에 귀를 더욱 가까이 댔다. 잠시 뒤 ‘쿵’ 하는 두 번째 울림이 강바닥에서 올라왔다. 소리는 얼음판을 타고 산과 골짜기까지 번져 나갔다. 눈발 사이에서 잠들어 있던 새들이 놀라 날아올랐다.

    만복이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쩡’ 하는 세 번째 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그가 무릎을 꿇었던 자리에서 가느다란 금이 생겼다. 만복은 얼음이 무너질까 두려워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허리에 묶은 줄이 팽팽해졌다.

    금은 나뭇가지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이상하게도 얼음판 전체가 부서지는 대신, 만복의 앞에 둥근 테두리를 만들었다. 둥글게 갈라진 얼음 조각이 아래에서 누군가 밀어 올리는 것처럼 천천히 들렸다. 그 틈으로 검고 맑은 강물이 솟구쳤다.

    만복은 숨조차 쉬지 못하고 바라보았다. 물속에서 은빛 섬광이 번쩍이더니 커다란 잉어 한 마리가 얼음 위로 뛰어올랐다. 붉은 지느러미와 황금빛 비늘이 달빛 아래 찬란하게 빛났다. 잉어는 만복의 무릎 가까이에 떨어져 힘차게 꼬리를 쳤다.

    “이것이…… 정녕 꿈이 아니란 말인가?”

    놀라움이 가시기도 전에 두 번째 잉어가 물 위로 솟았다. 곧이어 세 번째 잉어까지 얼음 위로 뛰어올랐다. 세 마리는 도망치기는커녕 만복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그 순간 거세게 몰아치던 눈보라가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구름 사이로 둥근 달이 나타나 얼음과 잉어의 비늘을 환하게 비추었다.

    만복은 기쁨에 앞서 두려움과 경외심을 느꼈다. 그는 얼음 위에 이마를 대고 절했다.

    “하늘과 강의 은혜를 어찌 다 갚겠습니까. 제 어머니께서 드실 만큼만 허락해 주십시오.”

    그는 세 마리 중 가장 작은 잉어 한 마리를 품에 안았다. 나머지 두 마리는 강으로 돌려보내려 했지만 얼음 위에서 계속 꼬리를 치며 떠나지 않았다. 만복은 잠시 생각하다 한 마리를 물속으로 밀어 넣었다.

    “어머니께는 한 마리면 충분하다. 너는 강으로 돌아가 새 생명을 이어라.”

    잉어는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머리를 내밀었다. 마치 만복을 바라보는 듯 잠시 머물더니 깊은 물속으로 사라졌다. 만복은 두 번째 잉어도 놓아주려 했으나 병이 얼마나 오래갈지 알 수 없었다.

    “너는 어머니께서 나으실 때까지 잠시 우리 집에 모시겠다. 병이 나으면 반드시 이 강으로 돌려보내마.”

    그는 남은 두 마리를 도포로 감싸 품에 안았다. 신기하게도 얼어붙었던 손과 발에 다시 감각이 돌아왔다. 무겁던 몸도 가벼워진 듯했다. 만복은 소나무에 묶어 둔 줄을 풀고 집을 향해 달렸다.

    눈길에 몇 번이나 넘어졌지만 품속의 잉어는 놓치지 않았다. 멀리 초가의 작은 불빛이 새벽별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만복은 숨이 찢어질 듯 달리며 외쳤다.

    “어머니, 기다리십시오! 만복이가 잉어를 구했습니다!”

    그 외침은 잠든 산촌을 깨우고, 눈 덮인 골짜기를 지나 병든 어머니가 누운 초가까지 퍼져 갔다.

    ※ 14단계. 결말 — 잉어국 한 숟갈이 불러온 봄

    만복이 사립문을 밀치고 들어오자 연실이 놀라 뛰어나왔다. 남편의 품에서 힘차게 움직이는 잉어 두 마리를 본 그녀는 처음에는 자신의 눈을 믿지 못했다.

    “이 한겨울에 어디서 이것을…….”

    “강의 얼음이 저절로 갈라졌소. 그 안에서 잉어 세 마리가 올라왔소. 한 마리는 다시 강으로 돌려보내고 두 마리를 데려왔소.”

    연실은 기적 같은 이야기를 더 물을 겨를도 없이 잉어를 받아 들었다. 의원 역시 살아 있는 잉어를 보고 말문을 잃었다.

    “내가 평생 이 강가에서 살았지만 이런 일은 들어 본 적도 없네. 어서 한 마리를 손질하게. 시간이 없네.”

    연실은 두 손을 깨끗이 씻고 잉어 한 마리를 정성껏 손질했다. 살과 뼈를 푹 고아 국물이 뽀얗게 우러나게 했고, 속을 따뜻하게 하는 생강과 파뿌리를 조금 넣었다. 만복은 아궁이 앞에 앉아 불길이 약해질 때마다 장작을 밀어 넣었다. 집을 비우라는 황 부자의 말도, 찢어진 손의 통증도 그 순간에는 생각나지 않았다.

    마침내 잉어국이 완성되었다. 의원은 국물 위의 기름을 모두 걷어 내고 맑은 부분만 떠서 식혔다. 만복은 작은 숟가락에 국물을 담아 어머니의 입술에 가져갔다.

    “어머니, 만복이가 잉어를 구해 왔습니다. 한 숟갈만 드셔 보십시오.”

    박씨의 눈꺼풀이 희미하게 떨렸다. 노모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천천히 눈을 떴다.

    “정말…… 잉어란 말이냐?”

    “예.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그 잉어입니다.”

    첫 숟갈은 입술 사이로 흘러내렸다. 만복은 포기하지 않고 어머니의 등을 받쳐 몸을 조금 일으켰다. 두 번째 숟갈은 아주 천천히 목을 넘어갔다. 세 번째 숟갈을 삼킨 뒤 박씨는 약하게 기침했지만 국물을 토해 내지는 않았다.

    “따뜻하구나. 꼭 내 어머니가 끓여 주시던 맛 같구나.”

    그 말을 들은 만복과 연실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의원이 다시 맥을 짚자 조금 전까지 실처럼 끊어질 듯하던 박씨의 맥박이 아주 미세하게 힘을 되찾고 있었다.

    “멈추지 말고 조금씩 먹이게. 급하게 많이 드리지는 말고, 밤새 한 숟갈씩 이어 가야 하네.”

    동이 틀 무렵 박씨는 스스로 물을 찾았다. 정오가 되자 묽은 미음을 몇 숟갈 먹었고, 사흘이 지나자 아들의 부축을 받아 앉을 수 있었다. 보름 뒤에는 지팡이를 짚고 마당에 나와 햇볕을 쬘 만큼 회복했다.

    만복은 남겨 둔 잉어 한 마리를 물이 담긴 독에서 정성껏 살렸다. 어머니가 일어나던 날, 그는 가족과 함께 강으로 가서 잉어를 놓아주었다. 잉어는 물속으로 들어가 세 번이나 뛰어오른 뒤 깊은 곳으로 사라졌다.

    행상인도 기적의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그는 집문서를 내놓으며 고개를 숙였다.

    “병든 어머니를 살리려는 사람의 다급함을 이용해 집을 빼앗으려 했으니, 내가 사람의 도리를 잊었소. 이 문서는 돌려드리겠소.”

    황 부자도 마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빚의 이자를 거두었다. 사람들은 쌀과 장작을 모아 만복의 집으로 가져왔다. 그러나 만복은 자신을 칭송하는 이들에게 고개를 저었다.

    “제가 특별한 효자라서 기적이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께서 평생 베푸신 사랑이 제 마음을 움직였고, 그 마음을 하늘과 강이 불쌍히 여겨 주신 것입니다.”

    박씨는 아들의 말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노모의 병든 얼굴에는 어느새 겨울을 이겨 낸 봄빛이 돌아와 있었다.

    ※ 15단계. 마지막 장면 — 녹은 강물에 되돌려 보낸 은혜

    긴 겨울이 물러가고 산골 마을에도 마침내 봄이 찾아왔다. 처마에 매달렸던 고드름은 녹아 떨어졌고, 지붕을 짓누르던 눈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죽은 듯 굳어 있던 강에서는 맑은 물이 힘차게 흘렀다. 버드나무 가지에는 연둣빛 새싹이 돋았고, 따뜻한 햇볕 아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골짜기를 채웠다.

    박씨는 지팡이를 짚고 초가 밖으로 나왔다. 아직 걸음은 느렸지만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다. 만복이 한쪽 팔을 내어 주자 박씨는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다가, 아들의 서운한 표정을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팔을 잡았다.

    “어머니, 강가까지 걸어가실 수 있겠습니까?”

    “네가 옆에 있으니 천 리라도 갈 수 있지.”

    연실과 봄이도 도시락과 봄꽃을 들고 뒤를 따랐다. 네 식구는 눈보라 속에서 만복이 걸었던 길을 천천히 걸었다. 겨울에는 목숨을 위협하던 길이 이제는 햇볕과 새소리로 가득했다.

    강가에 도착한 만복은 자신이 무릎을 꿇었던 자리를 찾았다. 그러나 얼음도 핏자국도 도끼 자국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잔잔한 물결만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박씨는 한동안 강을 바라보다 아들의 손을 잡았다.

    “만복아, 그날 내가 잉어를 말하지 않았다면 네가 그 고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프구나.”

    “어머니께서 말씀해 주셔서 다행입니다. 평생 제 소원을 들어주신 어머니께서 처음으로 바라시는 것을 말씀하셨는데, 자식이 어찌 외면하겠습니까?”

    “그래도 너는 네 목숨을 먼저 생각했어야 한다.”

    “저도 이제 압니다. 효도한다고 목숨을 버리는 것은 어머니를 위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요. 그래서 마지막에는 잉어를 잡으려 간 것이 아니라, 어머니께 받은 마음을 하늘에 전하러 갔습니다.”

    박씨는 아들의 손등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효도란 부모가 자식에게 받은 것을 세는 일이 아니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 살아 있음을 고마워하고, 힘든 날에도 손을 놓지 않는 것이지. 너는 이미 내게 넘치는 복을 주었다.”

    그때 봄이가 강 가운데를 가리켰다.

    “아버지, 저기 보세요!”

    커다란 잉어 한 마리가 수면 위로 뛰어올랐다. 햇빛을 받은 비늘이 은빛으로 번쩍였다. 이어 두 마리가 더 솟구치며 맑은 물방울을 사방에 흩뿌렸다. 세 마리 잉어는 나란히 강을 거슬러 헤엄쳤다.

    마을 사람들도 그 광경을 보고 두 손을 모았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고을 원님은 만복의 효행을 기록하게 하고, 가난 때문에 부모를 봉양하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관아의 곡식과 땔감을 나누게 했다. 만복에게 비단과 상금을 내리려 했으나 그는 정중히 사양했다.

    “제게 주실 것이 있다면 병든 노인과 굶주린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십시오. 저희 가족이 받은 은혜를 다른 이에게 돌려주는 것이 어머니께 효도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그 뒤로 만복은 강가에서 얻은 물고기나 산에서 캔 약초가 생기면 가난한 이웃과 나누었다. 연실은 홀로 사는 노인들의 옷을 지어 주었고, 박씨는 아이들을 불러 모아 부모와 자식이 서로 아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봄이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잘 기억해 다시 어린아이들에게 전했다.

    한겨울에는 죽음처럼 굳어 있던 강이 이제 온 마을의 논과 밭을 적시는 생명의 물이 되었다. 만복은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박씨가 아들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자 만복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조용히 웃었다.

    멀리서 세 마리 잉어가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뛰어올랐다. 은빛 물방울이 봄 햇살 속에서 꽃잎처럼 흩어졌다. 잉어들은 잠시 만복의 가족 앞을 맴돈 뒤 나란히 물살을 거슬러 헤엄쳐 갔다. 그 모습은 한 사람이 베푼 사랑이 다른 사람의 사랑을 낳고, 마침내 온 세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오래도록 빛나고 있었다.

    엔딩 멘트

    어머니께서 평생 베푼 사랑을 잊지 않은 아들의 간절한 마음은 단단한 겨울 얼음마저 갈라놓았습니다. 진정한 효도는 값비싼 것을 바치는 데 있지 않고, 부모님의 말 못 한 마음을 헤아리며 곁을 지켜 드리는 데 있겠지요. 오늘도 사랑하는 가족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시길 바랍니다. 이야기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로 다음 이야기에도 함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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