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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을 거부 저승에 남은 여자

by K sunny 2025.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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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을 거부 저승에 남은 여자, 염라대왕의 기록관이 되다

태그 (2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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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 멘트 (300자 내외)

"다음 생은 없습니다." 모든 망자가 그토록 바라는 환생, 그것도 '대갓집 아씨'로의 환생을 거부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어째서 이승의 고통을 다시 겪느니, 차라리 저승에 머물겠다 선언했을까요? 염라대왕마저 고개를 젓게 한 그녀의 사연, 그리고 저승의 법칙을 뒤바꾼 그녀의 애절한 소원. 『청구야담』에 실린, 가장 슬프고도 강인한 한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억울하게 죽은 남편의 한을 풀기 전까지는 단 한 걸음도 윤회의 수레바퀴에 오를 수 없다며, 환생을 거부한 여인 '서화'. 그녀는 염라대왕의 허락을 받아, 망자들의 모든 기억이 기록되는 '명부전'의 일꾼이 됩니다. 과연 그녀는 그곳에서 남편을 구할 진실을 찾고, 그토록 원하던 평안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 억울하게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던 여인 '서화'의 죽음

때는 조선 중기, 살을 에는 듯한 겨울바람이 허술한 창호지를 울부짖듯 때리던 밤이었습니다. 경기도 변방의 작은 초가집, 방 안의 공기는 이미 바깥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정도로 차갑게 식어 있었습니다. 그 방 한가운데, 얇은 이불을 덮은 한 여인이 앙상하게 마른 채 누워 있었습니다. 여인의 이름은 서화라 했습니다. 본디 한미하나 학식 높은 사대부가의 딸로, 강직한 성품의 젊은 선비 '강우'와 혼인하여 비록 가난하나 행복한 나날을 보냈었지요. 하지만 그 행복은 불과 삼 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올곧은 성품 탓에 조정의 간신, 임 판서의 비리를 목격하게 된 남편 강우가, 도리어 역모의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그로부터 오 년. '역적의 아내'라는 주홍글씨는, 서화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습니다. 친정은 풍비박산이 났고, 그녀는 관노로 끌려갔다가 병이 깊어져 버려지듯 풀려났습니다. 그녀는 남편과의 추억이 깃든 이 초가에서, 이웃들의 냉대와 멸시를 견디며, 오직 남편이 마지막으로 남긴 혈서 한 장을 품고 살아왔습니다. '부인 나는 억울하오 하늘이 나의 결백을 알아줄 것이오' 하지만 하늘은 무심했습니다. 그녀는 삯바느질로 겨우 연명했으나, 깊어지는 병과 지독한 가난, 그리고 사무치는 그리움은 그녀의 남은 생명력을 모두 갉아먹었습니다. "콜록 쿨럭" 피가 섞인 기침이 터져 나왔습니다. 서화는 힘겹게 손을 뻗어, 가슴팍에 품었던 남편의 혈서를 움켜쥐었습니다. "서 서방님 이제 저도 당신 곁으로 가려 하나 봅니다 춥 춥습니다" 그녀의 눈이 천천히 감겼습니다. 지독한 고통이 사라지고, 기묘한 평온함이 그녀의 얼어붙은 몸을 감쌌습니다. 그렇게 여인 서화의 고단했던 이승에서의 삶이, 소리 없이 끝을 맺었습니다.

※ 죄가 없고 덕이 높아 '귀한 환생'을 명 받는다

얼마나 지났을까. 서화는 문득, 자신이 어둡고 안개 낀 길을 걷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더 이상 춥지도, 아프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무의 감각만이 온몸을 지배했습니다. 이따금씩 곁에서 정체 모를 형상들이 울부짖으며 스쳐 지나갔지만, 서화는 왠지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묵묵히, 마치 누군가의 부름을 받은 듯, 길의 끝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길의 끝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거대한 성문이 있었고, 성문을 지나자 이승의 그 어떤 궁궐보다도 장엄하고 위압적인 법정이 나타났습니다. 수많은 망자들이 죄인처럼 엎드려 있었고, 좌우에는 무시무시한 형상의 귀졸들이 도열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높은 옥좌에는, 산처럼 거대한 존재가 앉아 있었습니다. 검붉은 용포를 입고,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깊은 눈을 가진 존재. 염라대왕이었습니다. "망자 서화. 고개를 들라." 천둥과도 같은 목소리가 법정 전체를 울렸습니다. 서화가 고개를 들자, 법정 한가운데 놓인 거대한 거울, '업경대'가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속에는, 서화의 스물아홉 평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으나 부모에게 효도했던 어린 시절, 남편 강우와 만나 수줍게 연정을 나누던 순간, 남편이 역적으로 몰리던 날의 절규, 그리고 홀로 남아 멸시를 견디면서도, 굶주린 아이에게 자신의 마지막 남은 밥 한술을 몰래 떠먹이던 모습까지. 그녀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으나, 그 어디에도 남을 해하거나 원망하는 악업은 없었습니다. 오직 인내와 덕, 그리고 남편을 향한 지극한 정만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업경대의 빛이 꺼지자, 염라대왕이 옥좌에 놓인 명부를 살폈습니다. 그리고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망자 서화. 네 이승에서의 삶은 고단했으나, 죄가 없고 오히려 덕을 쌓았구나. 네가 굶주리면서도 아이에게 내어준 그 밥 한술의 공덕이, 네 남은 업보를 모두 씻어내렸다." 염라대왕이 붉은 붓을 들었습니다. "판결한다. 망자 서화는, 즉시 환생하여, 다음 생에는 조선 팔도에서 가장 부유한 대갓집의 고명딸로 태어날 것이다. 평생 병치레 없이 부귀영화를 누리며, 백 년 해로할 귀한 인연을 만나 이승에서 누리지 못한 모든 행복을 누리도록 하라." 저승 법정에 있던 모든 망자들이 부러움의 탄식을 내뱉었습니다. 그것은 망자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판결이었습니다. 저승사자가 서화를 '환생의 문'으로 이끌기 위해 다가왔습니다.

※ 억울하게 죽은 남편의 한을 풀기 전까진 갈 수 없다

환생의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이승의 따뜻한 봄빛과도 같은 기운이 흘러나왔습니다. 곁에서 심판을 기다리던 다른 망자들은 그 빛을 향해 선망의 눈빛을 보냈습니다. 모두가 서화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엎드려 절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서화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두 눈은, 두려움이나 기쁨이 아닌, 깊고도 처절한 슬픔과, 이미 모든 것을 결심한 듯한 강인한 결의에 차 있었습니다. 그녀를 이끌기 위해 다가온 저승사자가 의아해하며 그녀의 팔을 이끌려 하자, 서화는 조용히,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그 손을 밀어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옥좌의 염라대왕을 향해, 꼿꼿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대왕님 송구하오나 명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무어라?" 염라대왕의 미간이 좁혀졌습니다. 그 목소리에는 천 년의 세월이 담긴 불쾌함이 묻어났습니다. 옥좌의 높이만으로도 망자의 혼을 떨게 만드는 그 절대적인 위엄 앞에, 감히 판결을 거부한 것입니다. 수천 년 저승 역사상, '지옥행'을 거부한 자는 많았으되, 이토록 완벽한 '축복'을 거부한 망자는 없었습니다. "소인은 환생할 수 없사옵니다." 법정 전체가 얼어붙었습니다. 웅성거리던 망자들의 속삭임도, 귀졸들의 창 부딪히는 소리도 모두 멎었습니다. "네 이년!" 염라대왕의 호통이 법정의 대들보를 뒤흔들었습니다. 그 음성에 실린 분노는 단순한 노여움이 아니라, 저승의 근간, 즉 '윤회의 법칙'을 거스르려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경고였습니다. "감히 짐의 판결을 거역하는 게냐! 네년에게 내린 것이 독배가 아니라,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복임을 정녕 모르느냐! 네가 이승에서 겪은 고통이 억울타 하여, 짐이 그 공덕을 치하해 다음 생의 부귀영화를 약속했거늘! 어찌하여 그 복을 걷어차려 하는가!" 서화는 그 무시무시한 기세에 눌려, 혼이 흩어질 듯한 고통을 느꼈지만,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바닥에 이마를 대고, 피를 토하듯 절규했습니다. "대왕님! 소인이 어찌 어찌 저 혼자 이승의 따뜻한 아랫목에서 다음 생의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단 말입니까!" "그것이 무슨 말이냐. 네 공덕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다!" "정당한 보상이라 하셨습니까!" 서화가 고개를 번쩍 들었습니다.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 대신 불꽃이 이는 듯했습니다. "소인의 남편 강우는 억울하게 죽었사옵니다. 그는 나라에 충성했을 뿐, 역모를 꾀한 적이 없나이다. 이승의 썩은 법도가 그를 버렸고, 그는 억울하다는 혈서 한 장만을 남기고 원통하게 돌아가셨나이다." "소인이 듣기로, 이승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은 자는, 그 원통함이 풀리기 전까지 저승에서도 죄인 취급을 받으며, '지옥'의 차가운 고통을 받는다 하였습니다. 그곳은 빛 한 줄기 들지 않고, 자신의 절규마저 얼어붙는 영원한 한의 감옥이라 들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법정 전체를 울렸습니다. "제 남편은 지금 그 차가운 곳에서 홀로 울고 있사옵니다. 그런데 어찌 어찌 저 혼자 따뜻한 대갓집 아랫목에서 비단옷을 입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 웃을 수 있단 말입니까!" 서화의 목소리는 울음으로 젖어 있었으나, 그 뜻은 강철처럼 단단했습니다. "대왕님 제 남편의 한이 풀리기 전까지는 저 혼자 결단코 윤회의 수레바퀴에 오를 수 없사옵니다. 대왕님께서 주신 다음 생의 행복은 저에게 행복이 아니라, 남편을 버리고 홀로 도망친 죄책감의 또 다른 지옥일 뿐이옵니다!" 그녀는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부디 저의 환생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차라리 차라리 제 혼을 이곳에서 소멸시켜 주시옵소서. 그것이 아니시라면 제 남편의 무고를 이 저승에서라도 소인의 손으로 밝힐 수 있게 해주십시오!"

※ '명부전 서관'이 되어 스스로 진실을 찾으라 명한다

염라대왕은 말이 없었습니다. 그는 수천 년 만에 처음 만나는, 당돌하고도 애처로운 그 영혼을 묵묵히 내려다보았습니다. 법정의 그 누구도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저승사자들은 창백한 얼굴로 엎드려 있었고, 다른 망자들은 두려움과 경외가 뒤섞인 눈으로 서화를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염라대왕은 옥좌에 놓인 거대한 명부를 다시 살폈습니다. 과연, '강우'라는 이름 옆에는, '이승의 법에 의해 역모로 판결됨'이라 붉은 글씨로 적혀 있었고, 그의 혼은 '지수복'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염라대왕의 깊은 딜레마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서화의 지극한 정, 남편을 향한 그 순수하고도 강인한 마음에 감동했지만, 저승의 법도는 엄격했습니다. 이승의 판결은 이승의 것이요, 저승의 판결은 저승의 것. "망자 서화야." 염라대왕이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아까의 분노가 가라앉고, 무겁고도 신중한 음색이었습니다. "네 남편의 억울함은 짐작하나 저승의 법은 이승의 법에 함부로 관여할 수 없는 법이다. 이승에서 벌어진 일은, 이승의 증거로 뒤집혀야 함이 원칙이다. 이승의 왕이 '역적'이라 판결한 자를, 짐이 '충신'이라 고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대왕님!" 서화의 얼굴에 절망이 스쳤습니다. "허나" 염라대왕의 눈이 빛났습니다. "이승의 증거가 없다면 저승의 증거라도 있어야지. 이승의 법이 눈이 멀었다면, 저승의 기록이 눈을 뜨게 해야지." 그는 서화를 꿰뚫어 보듯 바라보았습니다. "네년의 그 절개가 참으로 가상하다. 허나, 지옥에 떨어진 네 남편을 구하는 것은 짐이 아니라 네 스스로 해야 할 일이다." "소 소인이 무엇을 할 수 있사옵니까. 소인은 그저 힘없는 망자일 뿐입니다" "좋다. 네년의 그 소원을 허락하마. 환생을 거부하고 이곳 저승에 머물고자 하는 네 소원을." 염라대왕이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의 거대한 그림자가 법정 전체를 덮었습니다. "이곳 명부전에는," 그는 거대한 법전의 한쪽, 끝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가리켰습니다. 그곳에는 끝도 보이지 않는 거대한 서가가 있었고, 수억만 개의 두루마리들이 먼지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태초 이래 이승에서 죽은 모든 망자들의 기억과 행적이 그들이 숨긴 비밀과, 그들이 뱉은 거짓말까지 단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 "네가 오늘부터 저 명부전의 서관이 되어라." "서관 이라 하셨사옵니까" "그러하다. 너는 저곳에서, 매일같이 이승에서 올라오는 망자들의 기록을 읽고, 정리하고, 보관해야 한다. 그리고 그 수억만 개의 기록 속에서 네 남편 강우의 무고를 증명할 '단 하나의 진실'을 네 스스로 찾아내어라." 염라대왕의 목소리는 엄중했습니다. "허나 명심하거라. 그 기한은 없다. 네 남편을 모함한 그 원수가, 혹은 그 진실을 아는 자가 죽어 이곳에 올 때까지 백 년이 걸릴지, 천 년이 걸릴지 짐도 모른다." "또한, 산 자의 기억을 읽는 것은, 그 자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죄업까지도 네 혼으로 직접 감당해야 하는 끔찍한 고통이다. 이승의 그 어떤 고통보다 더할 것이다. 너는 수천, 수만 번의 다른 삶을 살며 고통받게 될 것이다. 그러다 네 자신의 기억마저 남편의 얼굴마저 잊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하겠느냐?" 그것은 축복이 아닌, 어쩌면 환생보다 더 가혹한 형벌일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서화의 얼굴에는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눈물을 닦고, 옥좌를 향해 다시 한번, 뼈가 부서져라 깊이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옵니다, 대왕님. 천 년이 아니라 영겁의 세월이 걸린다 해도 제 혼이 닳아 없어진다 해도 반드시 반드시 찾아내겠나이다." 염라대왕은 그녀를 묵묵히 바라보다, 옥좌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붉은 붓을 들어, 서화의 이름이 적힌 환생 명부에, 가로로 굵은 줄을 그었습니다. '보류'. 그 붉은 획이 그어지는 순간, 환생의 문은 소리 없이 닫혔습니다. 그렇게, 서화는 대갓집 아씨의 삶 대신, 망자도, 신도 아닌 존재, '저승의 기록관'이 되기를 스스로 선택했습니다.

※ 수억만 망자들의 기억을 읽는 고통과 기다림

그날부터 서화의 새로운 '삶'이, 아니, '삶 아닌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염라대왕의 법정을 나온 그녀가 인도된 곳은, 저승의 가장 깊고 조용한 곳에 위치한 '명부전'이었습니다. 그곳은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도서관과도 같았습니다. 천장은 어둠에 잠겨 보이지 않았고, 좌우로는 수억, 수조 권의 두루마리들이 하늘을 찌를 듯한 서가에 꽂혀 있었습니다. 먼지 냄새나 종이 냄새 대신, 잊힌 시간의 냄새, 그리고 수많은 망자들의 '한'과 '기억'의 냄새가 공기 중에 무겁게 떠다녔습니다. 이곳에는 빛도, 소리도 없었습니다. 오직, 망자들이 남긴 기록, '명부'를 지키는 서관들만이 유령처럼 서가를 오갈 뿐이었습니다. 시간의 흐름조차 무의미한 그곳에서, 서화의 유일한 임무는 '읽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수백, 수천의 망자들이 저승으로 올라왔고, 그들의 일생이 담긴 두루마리 '명부'가 그녀의 앞으로 산더미처럼 전달되었습니다. 서화는 그 두루마리를 펼쳤습니다. 그리고 읽었습니다. 그녀가 두루마리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두루마리에 손을 대는 순간, 그 망자의 일생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숨을 거두는 마지막 고통의 순간까지 마치 그녀 자신의 기억인 양, 생생하게 흘러들어왔습니다. 그녀는 갓난아이의 첫울음과 함께 순수한 기쁨을 느꼈고, 첫사랑을 만난 처녀의 설렘에 함께 가슴 뛰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짧은 순간의 축복이었습니다. 곧이어, 그녀는 친구에게 배신당한 자의 절망을 느껴야 했고, 자식을 먼저 잃은 어미의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전장에서 적의 칼에 목이 베이는 병사의 마지막 공포를, 살인자의 광기 어린 희열과, 그 칼에 찔린 피해자의 마지막 절규까지도 그녀의 혼은 매일같이 수천 번씩 태어났고, 수천 번씩 고문당했으며, 수천 번씩 죽어갔습니다. "흐윽 아 아프다 제발 그만" 그녀는 종종 다른 이의 기억에 갇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습니다. 이곳 명부전에서 일하는 다른 서관들은, 이미 오래전에 자신의 기억을 잃고, 그저 기계처럼 기록을 정리하는 존재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공감의 형벌'이야말로, 이승에서 겪었던 그 어떤 가난이나 멸시보다도, 더 끔찍한 형벌이었습니다. 서화의 혼은 점점 지쳐갔고, 그녀의 혼을 이루고 있던 이승에서의 기억은 닳고 닳아 희미해져 갔습니다. 그녀의 모습도, 처음 저승에 왔을 때의 애처로운 여인이 아니라, 감정이 마모된 듯, 창백하고 투명한 존재로 변해갔습니다. 시간은 저승의 강물처럼 흘러갔습니다. 이승에서 백 년이 지났는지, 삼백 년이 지났는지 서화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잊지 않으려 발버둥 친 것은 단 두 가지. 가슴을 쥐어짜는 그리움, 남편의 이름 '강우'. 그리고 뼈에 사무치는 분노, 원수의 이름 '임 판서'. 그녀는 수억, 수십억의 기록을 읽을 때마다, 그 두 이름과 관련된 자가 있는지 필사적으로 찾았습니다. 임 판서의 아들, 그의 노비, 그의 첩 하지만, 그 누구의 기억 속에서도, 그날의 '진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서방님 대체 어디에 계신 겁니까 제가 제가 당신의 얼굴마저 잊어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명부전의 먼지 쌓인 서가 사이에서, 홀로 지쳐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염라대왕님이 내리신 또 다른 형벌인가'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그녀는 남편의 마지막 혈서를 떠올렸습니다. '하늘이 나의 결백을' 그녀는 다시 일어섰습니다. 핏기 없는 손으로, 다음 두루마리를 집어 들었습니다.

※ 남편을 모함했던 '원수'의 망자가 도착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서화는 여느 때처럼, 영겁과도 같은 정적 속에서 새로 도착한 명부들을 기계적으로 읽어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감정은 이제 메마른 강바닥과도 같았습니다. 그때, 한 저승사자가 유독 검은 기운이 흉흉하게 감도는, 두껍고 무거운 두루마리 하나를 그녀의 책상에 '쿵'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습니다. "서관. 이 자는 죄가 무거워 일반적인 심판이 불가하다. 대왕님의 직속 심판을 받아야 할 자이니 그 죄목을 빠짐없이 정리하여 보고서를 올리라." 저승사자의 목소리에도 경멸이 담겨 있었습니다. 서화는 무심하게 두루마리를 펼쳤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혼이, 수백 년 만에 처음으로 얼어붙었습니다. 두루마리의 첫 장, 망자의 이름이 적힌 곳에, 선명하게 새겨진 세 글자. '망자 임수경'. 바로, 그녀의 남편 강우에게 역모의 누명을 씌우고, 그녀의 가문을 풍비박산 냈던 간신 '임 판서'였습니다. 수백 년이 흘러, 이승에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릴 대로 누린 그가, 명이 다해 드디어 저승으로 끌려온 것입니다. 서화의 손이, 수백 년 만에 처음으로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아 아" 그녀는 숨이 막혀, 소리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이것인가. 수백 년을, 수억의 고통을 견디며 기다려온 순간이.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임 판서의 명부를 펼쳤습니다. 그리고 그의 일생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유년 시절, 과거에 급제하던 순간, 권력의 맛을 알아가던 과정 그 모든 추악한 탐욕의 기록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의 기억이 나타났습니다. "흐음 강우 그놈 너무 강직해서야 원 내 앞길에 걸림돌이 된단 말이지." 임 판서가 자신의 수하들과 밀담을 나누는 기억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비리를 눈치챈 강우를 제거하기 위해, 흉계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그는 강우의 필체를 똑같이 위조하여, '역모를 꾀한다'는 거짓 서신을 꾸몄습니다. 그리고 군졸들에게 막대한 금괴를 안겨주며, 강우의 집 서가에 그 거짓 증거를 몰래 숨기게 했습니다. "하늘이 알긴 뭘 알아 이 임 아무개가 바로 하늘이지! 하하하!" 명부 속에는, 그가 강우를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단 한 순간의 두려움이나 죄책감이 아닌, 오직 방해물을 제거했다는 승리자의 희열에 차 있던 그 추악하고 역겨운 기억이 단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아 아!" 서화의 입에서, 비명 같은 탄식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것이었습니다. 수백 년을, 수억의 고통 속에서 찾아 헤맨 '진실'. 이승에서는 그 누구도 찾지 못했던, 감히 상상조차 못 했던 '증거'. 그녀는 임 판서의 명부를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움켜쥐었습니다. 그녀의 메말랐던 눈에서, 수백 년 만에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찾았 찾았나이다 서방님 당신의 당신의 결백을!" 그녀는 더 이상 서관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다시, 남편의 억울함을 풀고자 하는 여인 '서화'로 돌아왔습니다. 그녀는 명부전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자신의 자리를 박차고, 그 무겁고 거대한 명부 두루마리를 움켜쥔 채, 염라대왕의 법정을 향해 빛처럼 달려나갔습니다.

※ 두 번째 환생의 기로에 선 서화의 마지막 선택

"물렀거라! 감히 서관 따위가 대왕 전을!" 염라대왕의 법정을 지키던 귀졸들이, 미친 듯이 달려오는 서화를 막아서려 창을 겨누었습니다. 하지만 서화는 그 창을 피하지도 않고, 그대로 밀치며 법정 한가운데로 뛰어들었습니다. "대왕님! 염라대왕님! 찾았나이다! 제 남편 강우의 무고를 증명할 증거를 찾았나이다!" 옥좌에 앉아 다른 망자를 심판하던 염라대왕이, 수백 년 만에 보는 그녀의 격정적인 모습에, 천천히 눈을 떴습니다. 법정은 순식간에 정적이 감돌았습니다. "서화 로구나. 네가 드디어 찾았단 말이냐." "예, 대왕님! 여기 여기 오늘 막 도착한 망자, 역적 임 판서의 명부이옵니다!" 서화가 무릎을 꿇으며 명부를 바치자, 염라대왕은 그것을 받아 펼쳤습니다. 그리고 '업경대'에 그 기록을 비추었습니다. 법정 전체에, 임 판서가 강우의 필체를 위조하고, 금괴로 군졸을 매수하며, "하늘이 알긴 뭘 알아!"라고 웃던 그날 밤의 추악한 광경이 생생하게 펼쳐졌습니다.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순간이었습니다. 염라대왕의 얼굴이 분노로 검붉게 타올랐습니다. "이 천하에 파렴치한 놈!" 그는 당장 임 판서의 혼을 '무간지옥'의 가장 깊은 곳, 영원히 빛이 들지 않는 곳으로 던져버리라 명했습니다. 그리고 "지수복(지옥)에 갇힌 망자 강우의 혼을 이리로 데려오라." 잠시 후, 수백 년의 고통에 지쳐, 형체마저 희미해진 한 망자가 법정으로 끌려왔습니다. 그는 억울함과 한에 갇혀, 이승의 기억마저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남편 강우였습니다. 그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주위를 살피다, 자신을 보며 통곡하고 있는, 낯설지만 이상하게도 가슴이 아리도록 그리운 여인, 서화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부 부인? 정녕 내 아내 서화 란 말이오? 어찌 어찌 그대가 여기에" "서방님 서방님!" 서화가 달려가, 그 희미한 혼을 부둥켜안고 통곡했습니다. "제가 제가 너무 늦었지요 서방님!" 염라대왕이 강우에게 모든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아내가 환생의 복락마저 거부하고, 수백 년간 저승의 기록을 뒤져, 결국 그의 무고를 밝혀냈다는 것을. 강우는 아내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희생에, 차마 고개도 들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부인 나 나 하나 때문에 어찌 어찌!" 염라대왕이 두 사람을 묵묵히 내려다보다가, 엄숙하게 판결을 내렸습니다. "망자 강우. 너의 무고가 밝혀졌으니, 지수복의 형벌을 거두고 그 아내의 공덕을 더하여, 즉시 환생하여 다음 생에는 만 백성의 어버이, 제왕의 명을 받아 태어날 것이다." 그리고 염라대왕은 서화를 바라보았습니다. "망자 서화. 너의 정이 저승의 법도를 이겼고, 너의 인내가 영겁의 진실을 찾아냈다. 네 공 또한 하늘에 닿았으니 짐이 너에게도 가장 큰 상을 내리겠다." "너 또한, 네 남편과 함께 환생하여 그가 태어날 나라의 단 하나뿐인 왕후가 되어 이승에서 못다 한 부부의 연을 천 년 동안 누리도록 하라." 법정의 모든 망자들이 감동하여 울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완벽하고도 찬란한 보상이었습니다. 강우 역시 감격에 찬 눈으로 서화를 바라보았습니다. "부인 갑시다 하늘이 하늘이 우리를 다시 시작하라 하시는구려" 그는 아내의 손을 잡고 빛의 문으로 걸어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서화는 강우의 손을 잡은 채 그 자리에 멈추어 섰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습니다. "대왕님 은혜는 망극하오나 소인은 그 명을 받을 수 없사옵니다." "무어라? 네 또다시 또다시 환생을 거부하겠다는 것이냐?" 강우의 얼굴도 충격으로 굳어졌습니다. "부인!" "서방님 저를 용서하십시오" 그녀는 남편을 바라보며, 수백 년 만에 처음으로 평화롭고 슬픈 미소를 지었습니다. "소인은 수백 년간 이곳 명부전에서 수억의 기록을 보았나이다. 그 속에는 기쁨도 있었으나 이승의 고통이 너무도 많았나이다." 그녀는 다시 염라대왕을 바라보았습니다. "제 남편처럼 억울하게 죽은 자가 황 판서에게 속아 넘어간 군졸처럼 어리석게 죄를 지은 자가 굶주림에 쓰러진 아이의 어미가 그들의 한이 아직도 저 명부전에 산처럼 쌓여 있사옵니다." "제 남편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저의 소명은 다음 생의 부귀영화가 아닌 듯합니다. 제 남편의 한을 푸는 것이 소인의 '정'이었다면 이제는 저들의 한을 위로하는 것이 저의 '일'이옵니다. 소인은 이곳에 남겠나이다." 강우도, 염라대왕도 그녀의 말에 숨을 멈추었습니다. 잠시 후, 염라대왕이 처음으로 아주 희미한, 경외감마저 담긴 미소를 지었습니다. "네년은 인간의 정으로 저승에 머물기 시작하였으나 이제 신의 마음, 자비를 얻었구나." 염라대왕은 서화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좋다. 망자 강우는, 예정대로 환생하여 훌륭한 군주가 되거라. 망자 서화는 환생을 거부하고, 영원히 이곳 저승에 머물라. 짐이 너를 '명부전의 대서관'으로 임명한다. 영원히 이곳에서 망자들의 진실을 기록하고, 그들의 한을 위로하며 저승의 등불이 되거라." 강우는 아내의 위대한 선택에, 눈물로 하직 인사를 했습니다. 그는 빛의 문으로 걸어갔고, 서화는 그가 사라질 때까지, 평화로운 미소로 그를 배웅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수억 개의 기록이 기다리는 '명부전'으로 묵묵히,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도 당당하게 걸어 들어갔습니다. 이승의 '서화'는 죽었지만, 저승의 '기록관 서화'는 그렇게 영원히 환생을 거부한 채, 그곳에 남게 되었습니다.

유튜브 엔딩 멘트

오늘 '염라대왕 야담'이 들려드린, 환생을 거부한 여인 '서화'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승의 고통을 잊고, 다음 생의 복을 바라며 환생을 꿈꿉니다. 하지만 서화는, 그 모든 부귀영화를 거부하고, 가장 고통스러운 '기록관'의 소임을 스스로 선택했습니다. 남편을 구하겠다는 '사랑'으로 시작된 그녀의 집념이, 수백 년의 세월을 거쳐, 모든 억울한 영혼을 위로하는 '자비'의 마음으로 피어난 것이지요.

어쩌면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평안'이란, 모든 것을 잊고 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들처럼 자신의 소명을 다하고, 누군가의 한을 풀어주며,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찾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밤, 이 슬프고도 숭고한 이야기가, 시청자 여러분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기를 바랍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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