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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강아지를 따라 건넌 외나무다리

by K sunny 2026.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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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강아지를 따라 건넌 외나무다리, 저승의 진짜 풍경

태그 (1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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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250자 이상)

숨이 끊어지는 순간, 눈앞에 나타난 건 하얀 강아지 한 마리였습니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앞서 걸어가는 그 녀석을 따라가니, 안개 속에 아슬아슬한 외나무다리가 놓여 있었지요. 다리 아래는 끝이 보이지 않는 검은 물이 소용돌이치고 있었습니다. 전라북도 순창 땅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 이야기는, 실제로 죽음의 문턱을 넘었다 돌아온 한 사람의 입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저승에서 그이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염라대왕은 왜 그를 다시 이승으로 돌려보냈을까요? 오늘 밤, 그 기이한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시지요.

※ 씬1: 박노인이 큰 병을 앓다 숨이 끊어지고

전라북도 순창, 그 깊은 산골 마을에 박씨 성을 가진 노인이 한 분 살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박 영감이라 불렀지요. 올곧은 성품에 부지런한 손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논밭을 일구고 소를 몰며,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예순을 넘기니 몸이 성한 데가 없었지요.
어느 해 겨울, 박 영감은 큰 병을 얻었습니다. 처음에는 기침이 좀 나오는가 싶더니, 어느 날부터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습니다. 아들과 며느리가 약을 달이고 죽을 쑤어 올렸지만, 병세는 날이 갈수록 깊어만 갔습니다.
'이번엔 정말 큰일이 났구나. 몸이 이렇게 무거운 건 처음이야.'
박 영감은 천장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속에서 돌덩이가 굴러가는 것 같았고, 눈꺼풀은 납덩이를 올려놓은 것처럼 무거웠습니다.
며느리가 방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왔습니다.
"아버님, 미음 좀 드세요. 한 숟갈이라도 드셔야 기운을 차리시지요."
"……고맙다, 며느리야. 근데 오늘은 영 입맛이 없구나. 내려놓거라."
며느리가 안타까운 얼굴로 물러나고, 아들이 들어와 아버지의 이불을 여미어 주었습니다.
"아버지, 내일 읍내 큰 병원에 한번 모시고 가겠습니다. 제발 기운 좀 차리십시오."
"허허, 이 나이에 병원이 무슨 소용이냐. 사람 목숨이란 게 하늘이 정해놓은 거여. 너무 걱정 말아라."
그날 밤이었습니다. 자정이 넘어 마을에 개 짖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깊은 밤, 박 영감의 숨소리가 점점 가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슴이 오르내리던 것이 점점 느려지더니, 이윽고 아주 멈추어 버렸습니다.
'어,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분명히 숨이 끊어진 것 같은데, 박 영감은 자기 자신이 또렷이 깨어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눈을 떠보니 누워 있던 방이 아니었습니다. 사방이 뿌연 안개로 가득한 넓은 들판이었지요.
"여, 여기가 어디여?"
박 영감은 벌떡 일어났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토록 무겁던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프던 가슴도, 결리던 허리도 말끔히 나아 있었습니다.
'아니, 이게 어찌 된 거냐. 아픈 데가 하나도 없어. 설마…… 내가 죽은 건가?'
그때였습니다. 안개 속에서 뭔가 하얀 것이 다가왔습니다. 처음에는 안개 덩어리인가 싶었는데, 가까이 오니 강아지였습니다. 온몸이 눈처럼 하얀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박 영감 앞에 와 섰습니다.
"이 녀석은 어디서 나타났냐? 이리 와봐라, 이리 와."
강아지는 박 영감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코를 킁킁거리며 박 영감의 손을 핥더니, 돌아서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몇 발짝을 가다가 뒤를 돌아보았지요. 마치 따라오라는 것처럼.
'저 강아지를 따라가야 하나? 여기 혼자 서 있을 수도 없고…….'
박 영감은 흰 강아지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안개는 여전히 짙었지만, 강아지의 하얀 털이 희미하게 빛을 내어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걸었을까요. 시간의 감각조차 사라진 그 낯선 길 위에서, 박 영감은 문득 등 뒤에서 희미한 곡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건…… 우리 집사람 울음소리 아닌가?'
뒤를 돌아보려는 순간, 흰 강아지가 날카롭게 한 번 짖었습니다. 앞만 보고 가라는 뜻인 듯했지요. 박 영감은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 씬2: 흰 강아지를 따라 안개 속 외나무다리에 도착한다

흰 강아지를 따라 얼마나 걸었는지 모릅니다. 안개 속의 들판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발밑의 풀은 이승에서 보던 것과 달리 빛깔이 없었습니다. 회색빛 풀이 바람도 없이 흔들리고 있었지요.
'이게 다 꿈인가? 아니, 꿈치고는 너무 또렷해. 풀 냄새도 나고, 발바닥에 흙이 밟히는 감촉도 있고.'
박 영감이 그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앞쪽에서 물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인가 싶었는데, 가까이 갈수록 소리가 커졌습니다. 콸콸콸, 마치 큰 강이 바위를 때리는 것 같은 거친 물소리였지요.
안개가 조금 걷히자, 눈앞에 넓은 강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 강이 참으로 기이했습니다. 물빛이 시꺼멓습니다. 먹물을 풀어놓은 것보다 더 검고, 그 속을 들여다보면 바닥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강물은 소용돌이를 치며 흘러가고 있었는데, 그 소용돌이 속에서 무엇인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으아아……"
"살려주시오, 살려주시오……"
박 영감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세, 세상에! 물속에서 사람 소리가 나는 거여?"
검은 강물 위로, 아주 가느다란 외나무다리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통나무 한 개를 걸쳐놓은 것인데,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가 까마득히 멀었습니다. 너비는 사람 발 하나 겨우 올려놓을 만큼이었지요.
"저, 저걸 건너라고? 아이고, 이건 제정신으로는 못 건너겠구만."
흰 강아지가 뒤를 돌아보며 낮게 울었습니다. 걱정 말라는 듯이 꼬리를 한 번 흔들더니, 먼저 외나무다리 위로 올라섰습니다. 작은 발로 사뿐사뿐 걸어가는 것이, 마치 평지를 걷는 것처럼 자연스러웠지요.
'저 강아지도 건너는데, 내가 못 건널 것이 뭐가 있겠냐.'
박 영감은 이를 악물고 외나무다리 위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다리가 미세하게 흔들렸고, 아래에서 올라오는 찬 기운이 발목을 감쌌습니다.
한 발, 두 발, 세 발. 앞만 보고 걸었습니다. 절대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으려 했지만, 검은 물속에서 올라오는 아우성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습니다.
"나 좀 꺼내주시오! 제발!"
"아이고, 춥다, 춥다아!"
'듣지 말자. 아래를 보지 말자. 앞만 보고 가자.'
박 영감은 두 팔을 벌려 중심을 잡으며 한 발 한 발 나아갔습니다. 다리 한가운데쯤 왔을 때, 갑자기 누군가가 발목을 움켜쥐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으악!"
놀라서 아래를 보니, 검은 물속에서 손 하나가 쑥 올라와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습니다. 새파란 손이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손이 아니었지요.
"나도 데려가주시오…… 이 물속은 너무 차갑소……"
박 영감은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 순간, 흰 강아지가 날카롭게 짖으며 되돌아왔습니다. 강아지가 그 새파란 손을 향해 짖자, 손은 스르르 물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아, 하아…… 고, 고맙다 이 녀석아."
박 영감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남은 다리를 건넜습니다. 겨우겨우 저쪽 끝에 발을 디뎠을 때,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이런 무서운 곳이 있다니…… 여기가 정녕 저승인 건가.'
강 건너편은 안개가 조금 옅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 멀리, 눈앞에 거대한 건물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기와지붕이 겹겹이 올려진, 이승에서는 본 적 없는 어마어마한 궁궐이었지요. 흰 강아지가 다시 앞장을 서서 걸어갔습니다. 박 영감은 떨리는 다리를 일으켜 세우고, 다시 강아지의 뒤를 따랐습니다.

※ 씬3: 문 앞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친척들을 만난다

궁궐은 가까이 갈수록 더 크고 웅장했습니다. 담벼락은 사람 키의 서너 배는 되어 보였고, 기와는 검은색과 붉은색이 번갈아 올려져 묘한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대문은 열두 짝으로 되어 있었는데, 문짝마다 무시무시한 귀신 얼굴이 조각되어 있었지요.
'아이고, 저런 문은 난생처음 보겠다. 이 안에 도대체 뭐가 있는 거여.'
대문 앞에는 갑옷을 입은 거대한 장수 둘이 서 있었습니다. 키가 두 길은 넘어 보이는 이들이 창을 들고 문 양쪽을 지키고 있었는데, 얼굴이 사람 같기도 하고 짐승 같기도 했습니다. 하나는 얼굴이 붉고, 하나는 얼굴이 푸르렀지요.
흰 강아지가 그 장수들 앞을 지나자, 장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마치 강아지를 알아보는 것처럼.
"어, 어르신들, 여기가 어딘지 좀 알려주시오."
박 영감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지만, 장수들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턱짓으로 안으로 들어가라는 시늉을 했을 뿐이지요.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넓은 마당이 펼쳐졌습니다. 마당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수십 명, 아니 수백 명도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고개를 숙인 채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지요. 모두 하얀 옷을 입고 있었는데,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 사람들도 다…… 죽은 사람들인 건가.'
박 영감은 줄 옆을 지나가며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줄 속에서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니, 저건…… 삼촌 아니여?"
오 년 전에 세상을 떠난 박 영감의 삼촌이었습니다.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은 얼굴이었지만, 눈빛만은 이승에서 보던 것과 달리 깊은 슬픔이 서려 있었습니다.
"삼촌! 삼촌!"
박 영감이 다가가자, 삼촌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너, 너가 어찌 여기 있냐? 아직 올 때가 안 됐을 텐디."
"삼촌, 나도 모르겠소. 눈을 떠보이 여기 있더만요. 삼촌은 여기서 어떻게 지내고 계신 거여?"
삼촌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여기가 어딘 줄 아냐. 저승이여, 저승. 나는 염라대왕께 심판을 받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는 거여. 크게 나쁜 짓은 안 했으니 벌은 면했는디, 좋은 곳으로 가려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한다더구만."
"삼촌…… 이승에서는 삼촌 돌아가시고 숙모가 많이 울었소. 사촌 형들도 제사 때마다 삼촌 이야기를 하고요."
"그래? 그 소리를 들으이 고맙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구만. 너, 이승 사람들한테 전해라. 살아 있을 때 서로 잘하라고. 죽고 나면 한마디 말 건네는 것도 이리 어렵다고."
삼촌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그때, 줄 저 뒤쪽에서 또 하나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영감아, 너 아니냐?"
고개를 돌려보니, 같은 마을에 살다가 삼 년 전에 세상을 뜬 김 첨지였습니다.
"아니, 김 첨지 아저씨! 아저씨도 여기 계셨소?"
"나야 진작 여기 왔지. 근디 너는 왜 벌써 왔냐? 아직 젊은 축에 드는 사람이."
"나도 영문을 모르겠소이다."
김 첨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목소리를 낮추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꼭 기억해둬라. 염라대왕 앞에 서면, 거짓말을 절대 하지 마. 이승에서 한 일이 다 보이는 거울이 있어. 숨기려 들면 벌이 더 무서워져."
"거, 거울이라고요?"
"업경대라고 하는 건디, 그 앞에 서면 살아온 날이 전부 비쳐.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다."
박 영감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나도 저 앞에 서게 되는 건가…… 살면서 나쁜 짓은 안 했다고 생각했는디, 정말 그런가.'
흰 강아지가 다시 앞에서 짖었습니다. 가자는 뜻이었지요. 박 영감은 삼촌과 김 첨지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다시 강아지를 따라 걸어갔습니다. 궁궐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공기가 무거워지고 어디선가 북소리 같은 것이 둥둥 울려 퍼졌습니다.

※ 씬4: 염라대왕이 업경대 거울로 그의 일생을 비춘다

궁궐의 가장 깊은 곳에 커다란 전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지붕 끝에 용머리가 조각되어 있었고, 기둥은 사람 세 명이 팔을 벌려야 감을 수 있을 만큼 굵었습니다. 전각 안에서는 붉은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지요.
흰 강아지는 전각 앞에 이르자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박 영감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앉았지요. 여기서부터는 혼자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아이고, 이 녀석아. 여기서 나를 혼자 보낸다는 거냐.'
박 영감은 큰 숨을 한번 들이쉬고, 전각 안으로 발을 들였습니다.
안에 들어서는 순간, 박 영감은 자기도 모르게 두 무릎이 꺾여 바닥에 엎드렸습니다. 전각 안에 가득한 위엄에 몸이 저절로 반응한 것이지요. 고개를 들어보니, 정면 높은 자리에 한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그분의 얼굴은 사람의 얼굴이었지만, 크기가 보통 사람의 두 배는 되어 보였습니다. 머리에는 높다란 관을 쓰고 있었고, 검은 도포 위에 금실로 수놓은 용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습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박 영감은 온몸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눈빛은 마치 사람의 속내를 꿰뚫어보는 것 같았지요.
'저분이…… 염라대왕이시구나.'
염라대왕의 양쪽에는 문관 차림의 관리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그 앞에는 커다란 책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저승의 장부, 사람의 수명과 행실이 적혀 있다는 그 책이었습니다.
"박 아무개."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전각 안을 울렸습니다. 깊고 낮은 그 목소리에 기둥이 진동하는 것 같았습니다.
"예, 예……"
"고개를 들라."
박 영감이 떨리는 몸으로 고개를 들었습니다.
"네가 여기 온 것을 알고 있느냐?"
"소, 소인은 영문도 모르고 이곳에 왔사옵니다. 눈을 떠보이 들판에 서 있었고, 흰 강아지를 따라 여기까지 온 것이옵니다."
염라대왕이 옆의 관리를 돌아보았습니다. 관리가 장부를 살피더니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아뢰었지요.
"이자는 수명이 아직 삼 년이 남아 있사옵니다. 착오가 있었던 듯하옵니다."
"착오라."
염라대왕의 눈이 가늘어졌습니다.
"착오로 왔다 하여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다. 여기까지 왔으니 네 생전의 행실을 살펴보겠노라."
그 말이 떨어지자, 전각 한쪽에 있던 커다란 거울에 불이 켜졌습니다. 아니, 불이 켜졌다기보다 거울 자체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지요. 업경대였습니다.
"저 거울 앞에 서라."
박 영감은 떨리는 다리를 이끌고 업경대 앞에 섰습니다. 거울 속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나 싶더니, 갑자기 화면이 바뀌었습니다. 거울 속에 젊은 시절의 자신이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아니, 저건 내가 스물다섯 살 때 아닌가.'
거울 속의 젊은 박 영감이 논밭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웃집 할머니가 밭 경계를 넘어온 것을 보고 화를 내는 장면이었지요.
"남의 밭에 왜 들어와서 감자를 캐가는 거여! 이 할망구가 도둑질이야!"
거울 속 할머니가 울며 사정했습니다. 배가 고파서 감자 서너 개를 캐 간 것이었는데, 젊은 박 영감은 그 할머니를 호되게 나무랐지요.
박 영감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그 할머니가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랬겠냐. 감자 몇 개에 그렇게까지 화를 냈다니……'
거울은 계속 돌아갔습니다. 아내에게 큰소리 치던 날, 아이들에게 매를 들던 날, 이웃과 다투던 날. 하나하나가 부끄러운 장면들이었지만, 그 사이사이에 좋은 장면도 있었습니다. 홍수가 났을 때 이웃집 아이를 업고 뛰었던 일, 겨울에 혼자 사는 노인에게 땔감을 나눠주었던 일, 아내가 아플 때 밤새 간호하던 일.
염라대왕이 거울을 오래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크게 악한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으나, 크게 선한 일도 많지 않구나. 다만 네 마음 바닥에 남을 해치려는 뜻이 없었으니, 그것은 인정하마."
"황, 황송하옵니다."
"네가 여기까지 온 김에, 보여줄 것이 있다. 네 눈으로 직접 보고, 이승에 돌아가거든 사람들에게 전해라."
"보, 보여줄 것이라 하심은……"
"저승의 벌을 받는 자들의 모습이다. 절대로 눈을 감지 말고 똑똑히 보아라."
박 영감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전각의 옆문이 열리고, 붉은 빛이 더욱 강하게 쏟아져 나왔습니다.

※ 씬5: 저승 곳곳을 돌며 죄값을 치르는 망자들의 참혹한 모습을 목격한다

옆문을 나서자, 길고 어두운 복도가 이어져 있었습니다. 복도 양쪽 벽에는 횃불이 타고 있었는데, 그 불빛이 붉다 못해 핏빛이었습니다. 바닥에서는 열기가 올라왔고, 어디선가 사람의 신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저승의 관리 하나가 앞장서서 박 영감을 안내했습니다. 말없이 걷던 관리가 첫 번째 방 앞에서 멈추었지요.
"이 안을 보시오."
방문이 열리자, 박 영감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광경과 마주했습니다. 넓은 방 안에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는데, 그들의 혀가 길게 늘어져 있었습니다. 혀가 무릎까지 늘어진 사람도 있었고, 땅에 닿을 만큼 늘어진 사람도 있었지요. 그들은 말을 하려 해도 하지 못하고, 혀가 무거워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이 사람들은 무슨 죄를 지은 거요?"
"이 자들은 이승에서 거짓말로 남을 속이고, 헛된 말로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은 자들이오. 없는 말을 만들어 이웃을 모함하고, 거짓 증언으로 무고한 사람을 벌 받게 한 자들이지요."
박 영감은 소름이 끼쳤습니다.
'아이고, 거짓말 한 번 하는 게 이렇게 무서운 벌을 받는다니…….'
두 번째 방으로 안내되었습니다. 이 방에서는 사람들이 무거운 돌을 지고 끝없이 언덕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꼭대기에 다다르면 돌이 굴러떨어지고, 다시 처음부터 올라야 했지요. 땀과 눈물이 뒤범벅이 된 얼굴들이었습니다.
"이 자들은 이승에서 남의 것을 탐하여 빼앗은 자들이오. 재물에 눈이 멀어 약한 자의 것을 빼앗고, 속여서 남의 땅을 제 것으로 만들고, 빌린 것을 갚지 않은 자들이지요. 이승에서 탐한 만큼 무거운 짐을 영원히 지고 가야 하는 것이오."
"영원히요?"
"벌의 시간은 죄의 무게에 따라 다르오. 가벼운 자는 백 년, 무거운 자는 천 년이 넘기도 하지요."
세 번째 방은 차마 들어가기조차 두려웠습니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울음도 비명도 아닌, 짐승 같은 신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관리가 문을 열었습니다. 방 안에는 사람들이 꿇어앉아 있었는데, 그들 앞에 다른 사람들의 형상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형상들은 울면서 꿇어앉은 자들을 가리키며 무어라 말하고 있었지요.
"이 자들은 불효자들이오."
박 영감의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부모가 살아 있을 때 제대로 돌보지 않고, 거친 말로 상처를 주고, 부모의 재산만 탐하다 내친 자들이오. 저기 나타나는 형상들이 그 부모들의 혼이지요. 부모의 눈물을 마를 날 없이 흘리게 한 죗값을 치르고 있는 거요."
꿇어앉은 이들 중 한 명이 고개를 들고 울부짖었습니다.
"어머니, 용서해 주십시오…… 잘못했습니다…… 그때 왜 그랬는지……"
하지만 형상은 아무 대답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습니다.
박 영감은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자신도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늘 잘한 것만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나도 어머니한테 미안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디.'
네 번째 방에서는 사람들이 칼날 위를 맨발로 걷고 있었습니다. 발에서 피가 흘렀지만 멈출 수가 없었지요. 관리가 말했습니다.
"이 자들은 이승에서 남을 해치고 피를 흘리게 한 자들이오. 칼부림을 하고, 주먹을 휘두르고, 힘으로 약한 자를 짓밟은 자들이지요."
다섯 번째 방에서는 사람들이 끓는 물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관리가 설명했습니다.
"이 자들은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증오의 불을 품어 주변 사람들을 태운 자들이오. 자신의 화 때문에 가족이 무너지고, 이웃이 떠나고, 마을이 갈라진 것을 알면서도 끝내 뉘우치지 않은 자들이지요."
박 영감은 더 이상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그, 그만 보면 안 되겠소……"
"아직 하나 더 남았소."
마지막 방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사람도 없고, 벌도 없었지요. 다만 방 한가운데에 거울이 하나 서 있었습니다. 업경대와 같은 거울이었습니다.
"이 방은 무엇이오?"
"이 방은 아직 비어 있소. 이승에서 죄를 짓고 있으되 아직 이곳에 오지 않은 자들을 위한 방이오. 이 방이 채워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승의 사람들은 좀처럼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으니"
박 영감은 빈 방에 서 있는 거울을 오래오래 바라보았습니다.

※ 씬6: 흰 강아지가 다시 나타나 돌아가는 길을 안내한다

박 영감이 다시 염라대왕의 전각으로 돌아왔을 때, 온몸에 기운이 빠져 있었습니다. 방금 본 광경들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지요. 혀가 늘어진 거짓말쟁이들의 모습, 끝없이 돌을 지고 오르는 탐욕스러운 자들, 부모 앞에 꿇어앉아 용서를 구하는 불효자들, 칼날 위를 걷는 자들, 끓는 물속의 자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 텅 빈 방과 그 거울.
'사람이 살아 있을 때 짓는 일이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낳는 것이구나.'
염라대왕이 박 영감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다 보았느냐."
"예…… 다 보았사옵니다."
"어떠하더냐."
박 영감은 한참을 말하지 못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습니다.
"무, 무섭사옵니다. 사람이 이승에서 한 일이 이곳에서 고스란히 돌아온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았사옵니다."
"그렇다. 이승에서 한 일은 단 하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모두 여기에 기록되고, 모두 여기서 그 값을 치르게 되어 있느니라."
염라대왕의 목소리는 엄했지만, 어딘가 깊은 슬픔이 묻어 있었습니다. 마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것을 지켜봐온 자의 피로함 같은 것이었지요.
"너는 수명이 아직 남아 있는 자다. 이곳에 머물 수 없으니, 이승으로 돌려보내겠노라."
"저, 정말이옵니까?"
"다만 조건이 있다."
박 영감은 고개를 바짝 조아렸습니다.
"이승에 돌아가거든, 오늘 네가 본 것을 사람들에게 전하여라. 죄를 짓지 말라. 거짓말을 하지 말라.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 부모에게 효도하라. 화를 다스려라. 사람이 살아가면서 완벽할 수는 없으되, 스스로를 돌아볼 줄은 알아야 하느니라."
"명심하겠사옵니다. 반드시, 반드시 전하겠사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염라대왕이 몸을 약간 앞으로 숙였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죽음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죽음 앞에서 부끄러운 삶이 무서운 것이다. 떳떳하게 살다 온 자에게 저승은 두려운 곳이 아니니라."
그 말이 박 영감의 가슴 깊이 박혔습니다.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라, 부끄러운 삶이 무서운 것이다…….'
"가거라. 네 가족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박 영감이 전각을 나서자, 흰 강아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 것이 마치 오래된 벗을 만난 것 같았지요.
"이 녀석아, 나를 기다려줬구나. 고맙다, 참으로 고맙다."
강아지는 다시 앞장서서 걸었습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었지요. 궁궐을 나서고, 넓은 마당을 지나고, 대문을 빠져나왔습니다. 줄을 서 있던 사람들 중 삼촌이 손을 흔들었습니다.
"잘 가거라! 이승에서 잘 살아!"
"삼촌, 걱정 마시오! 좋은 곳으로 가실 거요!"
다시 외나무다리가 나타났습니다. 올 때는 그토록 무섭던 다리였는데, 돌아갈 때는 이상하게도 덜 무서웠습니다. 검은 물속에서 손이 올라오지도 않았습니다. 흰 강아지가 앞서 건너고, 박 영감이 그 뒤를 따랐지요.
다리를 건너자 다시 안개 낀 들판이 나왔습니다. 강아지는 점점 빠르게 걸었고, 박 영감도 따라 뛰었습니다. 어느 순간, 강아지의 모습이 안개 속에서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녀석아, 어디 가는 거냐! 가지 마!"
강아지가 마지막으로 한 번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까만 눈동자가 빙그레 웃는 것 같았지요. 그리고 안개 속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박 영감의 눈앞이 하얘졌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지요.

※ 씬7: 박노인이 가족에게 저승 이야기를 전하며, 절대 죄를 짓지 말라는 교훈을 남긴다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멀리서 들려오던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귀에 익은 아들의 목소리였지요.
"아버지, 눈을 떠보십시오! 아버지!"
박 영감은 천천히 눈을 떴습니다. 흐릿한 시야가 조금씩 선명해지더니, 아들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눈물범벅이 된 아들의 얼굴이.
"아, 아버지! 아이고, 아버지가 눈을 뜨셨어! 여보, 여보! 아버지가 살아나셨어!"
며느리가 달려왔습니다. 손에 수의 천을 들고 있었지요. 이미 장례 준비를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아버님! 아버님, 정말이세요?"
박 영감은 입술을 달싹거렸습니다. 목이 바싹 말라 소리가 나오지 않았지요. 며느리가 얼른 물을 떠와 입술에 적셔주었습니다.
"……내가…… 살아났구나."
"아버지, 이틀이나 숨이 끊어져 계셨습니다. 의원도 돌아가셨다 했고, 마을 사람들도 다 조문을 왔었습니다요."
"이틀이나……."
박 영감은 천장을 바라보았습니다. 낯익은 방 천장이었습니다. 금이 간 천장, 그을음이 묻은 서까래. 이승의 천장이었지요.
'돌아왔구나. 진짜로 돌아왔구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이 이렇게 감사한 일인 줄,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습니다. 이틀이나 죽어 있다가 살아난 사람이 있다는 소식에, 순창 일대의 사람들이 박 영감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방 안에 사람들이 가득 찼고, 마당에까지 사람들이 서서 안을 들여다보았지요.
"박 영감, 저승에서 뭘 보셨소?"
"염라대왕이 정말 있던가요?"
"무섭던가요?"
박 영감은 며칠을 쉰 뒤에야 기운을 차리고, 모여든 사람들 앞에서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본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말해줄 테니, 잘 들으시오."
방 안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숨이 끊어지고 나이, 안개 낀 들판에 서 있었소. 거기서 흰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났는디, 그 녀석이 길을 안내해줬소. 강아지를 따라가이 검은 강이 나오고, 그 위에 외나무다리가 놓여 있었소. 물속에서 사람 소리가 나는디, 그게 얼마나 무섭던지……."
사람들이 숨을 죽였습니다.
"다리를 건너이 큰 궁궐이 나왔소. 거기서 먼저 간 삼촌도 만나고, 김 첨지도 만났소. 그리고 염라대왕 앞에 끌려갔는디, 거기에 업경대라는 거울이 있어서 살아온 날이 전부 다 비치더이다."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그래서 벌은 안 받으셨소?"
"나는 수명이 남아 있어서 돌아오게 됐소만, 저승에서 벌 받는 사람들을 직접 봤소. 거짓말한 사람은 혀가 이만큼 늘어나 있고, 남의 것 빼앗은 사람은 무거운 돌을 끝없이 지고 올라가고, 불효한 사람은 부모 혼 앞에서 영영 용서를 구하고 있었소."
방 안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제발 죄를 짓지 마시오. 거짓말 하지 마시오. 남의 것 탐내지 마시오. 부모님 살아 계실 때 잘하시오. 화를 함부로 내지 마시오.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어도, 스스로를 돌아볼 줄은 알아야 하는 거요."
박 영감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염라대왕이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소. 죽음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죽음 앞에서 부끄러운 삶이 무서운 것이라고. 나는 그 말을 평생 잊지 못할 거요."
방 안에 긴 침묵이 흘렀습니다. 누군가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고, 누군가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있었지요.
그 뒤로 박 영감은 약속대로 삼 년을 더 살았습니다. 남은 삼 년 동안 그분은 이웃에게 더없이 너그러웠고, 아들과 며느리에게 늘 고마움을 표했으며, 마을 사람들에게 저승 이야기를 전하며 바르게 살 것을 당부했지요.
삼 년 뒤, 박 영감이 다시 눈을 감았을 때, 그의 얼굴에는 평온한 미소가 머물러 있었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분명 그 흰 강아지가 다시 마중을 나왔을 거라고. 이번에는 무서운 외나무다리가 아니라, 꽃이 핀 넓은 길로 안내했을 거라고.
순창 땅에 전해 내려오는 이 이야기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주는 오래된 가르침입니다. 죽음의 문턱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은 한 노인의 이야기. 오늘 밤 이 이야기가 여러분의 마음속에 조용히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편안한 밤 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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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라, 부끄러운 삶이 무서운 것이라는 염라대왕의 말씀이 오래 남습니다. 구독과 좋아요 눌러주시면, 더 많은 옛이야기로 편안한 밤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 또 만나요. 오늘도 편안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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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ystical Korean afterlife scene in 16:9 cinematic ratio, an elderly Korean man in white traditional hanbok standing at the entrance of a narrow single-log bridge stretching over a dark swirling river shrouded in thick fog, a small luminous white puppy with glowing fur walking ahead on the bridge guiding him forward, in the far background a massive ancient Korean palace with dark red and black tiled roofs emerges from the mist, the atmosphere is eerie yet hauntingly beautiful with cool blue and warm amber lighting contrast, painted in a semi-realistic Korean folklore illustration style, no text, no letters, no waterm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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