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파는 저승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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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크립션
서울 종로 골목 어딘가에 자리잡은 신비한 상점. 이곳에서는 죽은 자의 남은 시간을 산 자에게 판매합니다. 하지만 시간을 사는 데는 반드시 그만한 대가가 필요하죠. 저승상점 '시계백화점'의 점원이 된 저승사자가 들려주는 시간을 둘러싼 인연과 운명의 이야기.
1: 상점의 시작
종로 골목 어딘가, 오래된 시계 가게가 문을 열었습니다. 간판에는 '시계백화점'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진열장에는 단 하나의 시계도 없었습니다.
"자, 이제부터 이곳이 네 담당 구역이다."
관리자처럼 보이는 노신사가 새로운 점원에게 말했습니다. 점원은 검은 양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젊은 남자였습니다.
"여기서는 시간을 삽니다. 그리고 팝니다."
"네? 시간을... 판다고요?"
"그래. 죽은 자의 남은 시간을 산 자에게 파는 거지. 물론 그에 맞는 대가를 받고."
젊은 점원의 눈이 흔들렸습니다. 그는 얼마 전까지 저승사자였습니다. 실수로 한 영혼을 놓친 벌로 이곳에 오게 된 것입니다.
"첫 손님이 오시는군."
문이 열리며 작은 종소리가 울렸습니다. 한 노파가 들어왔습니다.
"저... 시간을 살 수 있다고 들었어요."
"어떤 시간을 찾으시나요?"
"제 손자의 수명을 늘릴 수 있다면..."
점원은 순간 긴장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첫 거래가 될 것입니다.
2: 첫 거래
"손자의 수명을 늘리시려면... 그만한 대가가 필요합니다."
점원이 진열장 아래에서 오래된 장부를 꺼냈습니다. 그 안에는 수많은 이름들이 빼곡히 적혀있었습니다.
"방금 돌아가신 분들의 남은 시간입니다. 여기서 골라보시죠."
"그런데... 대가는 무엇인가요?"
"시간은 시간으로 맞바꿔야 합니다. 할머님의 남은 시간을..."
노파의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하지만 곧 결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좋아요. 제 시간을 드릴게요. 우리 손자만 살 수 있다면..."
그때 진열장의 유리가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안에 하나의 회중시계가 나타났습니다.
"이건... 오늘 아침 돌아가신 김만덕 할아버지의 시간입니다. 앞으로 살았을 10년이..."
"잠깐, 그 이름이 뭐라고요?"
노파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김만덕 할아버지... 왜 그러시죠?"
"그분이... 우리 손자의 또 다른 할아버지예요."
3: 숨겨진 진실
"잠시만요..." 점원이 장부를 다시 펼쳤습니다. "김만덕 할아버지께서 마지막으로 만나고 싶어하신 분이..."
"네... 그이는 저를 찾고 계셨죠. 하지만 전 끝까지 만나지 않았어요."
노파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오래된 이야기가 그녀의 입술을 통해 흘러나왔습니다.
"40년 전, 저희 딸이 그분의 아들과 사랑에 빠졌어요. 하지만 전 극구 반대했죠."
"그래서 손자는..."
"네. 제 딸은 아이를 낳자마자 세상을 떠났어요. 그리고 전 그 아이를 데리고 멀리 도망쳤죠."
진열장의 회중시계가 갑자기 강하게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오래된 기억이 깨어나는 것처럼.
"할아버지의 시간에... 할머님을 향한 마지막 말씀이 담겨있습니다."
점원이 조심스레 시계를 열자, 희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 손자를 한 번만이라도..."
노파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40년간 쌓아온 벽이 한순간에 무너진 것입니다.
4: 시간의 대가
"거래를 진행하시겠습니까?"
점원의 질문에 노파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네... 하지만 제 시간 전부를 드리고 싶어요. 한 시간도 남기지 말고."
"그건 안 됩니다. 시간을 모두 주시면 그 자리에서 돌아가시게 됩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제가 가진 시간 전부로... 할아버지의 시간과 더 많은 시간을 손자에게 주고 싶어요."
점원이 망설였습니다. 그때 관리자가 나타났습니다.
"특별한 경우에는... 특별한 거래도 가능하지."
"하지만 규칙상..."
"시간의 값어치는 그저 숫자로만 매길 수 있는 게 아니야. 진심의 무게도 중요하지."
관리자는 오래된 회중시계를 하나 더 꺼냈습니다. 그 안에는 푸른빛이 맴돌고 있었습니다.
"이건... 후회의 시간. 김만덕 할아버지께서 40년간 모으신 겁니다."
시계 두 개가 서로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붉은 빛과 푸른 빛이 섞이더니, 갑자기 황금빛으로 변했습니다.
"이제 선택하세요. 이 시간들을 어떻게 쓰시겠습니까?"
5: 운명의 연결
"잠깐 기다려주세요."
점원이 황금빛 시계를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안에서 누군가의 기억이 영화처럼 흘러나왔습니다.
"이건... 손자분이 태어난 날의 기억이네요."
시계 속에는 젊은 시절의 김만덕 할아버지가 산부인과 앞을 서성이는 모습이 담겨있었습니다.
"그날... 그이도 그곳에 있었군요."
노파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그녀도 그날 그곳에 있었지만, 서로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이상하네요..." 점원이 중얼거렸습니다. "보통은 시계 속 시간이 섞이면 흐려지는데, 이건 오히려 더 선명해지고 있어요."
그때였습니다. 상점 문이 열리며 한 청년이 들어왔습니다.
"할머니? 여기 계셨어요?"
"민수야..."
바로 그들이 이야기하던 손자였습니다. 청년의 모습은 젊은 시절의 김만덕 할아버지와 놀랍도록 닮아있었습니다.
"이상한 꿈을 꿨어요. 모르는 할아버지가 나오는..."
황금빛 시계가 더욱 강하게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6: 위기의 순간
"잠깐, 이대로는 안 됩니다."
까만 도포를 입은 저승사자가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점원의 옛 동료였습니다.
"이미 정해진 시간표가 있어. 이렇게 마음대로 바꾸면 안 되지."
"무슨 일이시죠?" 민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점원이 재빨리 답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저승차사님..." 노파가 중얼거렸습니다. 그녀의 눈에도 저승사자가 보였던 것입니다.
"할머니, 무슨 말씀이세요?" 민수는 여전히 저승사자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 아이의 수명은 오늘까지야. 그걸 바꾸려는 건 천지의 법도를 어기는 거라고."
저승사자의 말에 모두가 굳어버렸습니다. 황금빛 시계마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럴 리가..." 노파의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그래서 전 이 일을 맡은 거군요." 점원이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제가 실수로 놓친 그 영혼이..."
"바로 네가 오늘 데려가야 할 이 청년이었지."
7: 시간의 거래
"잠시만요." 관리자가 앞으로 나섰습니다. "시간의 거래에도 예외가 있답니다."
"예외라니요?" 저승사자가 눈을 빛냈습니다.
"삼대의 시간이 하나로 모이면... 운명을 새로 쓸 수 있지요."
관리자는 진열장에서 세 번째 시계를 꺼냈습니다. 이번에는 은빛으로 빛나는 시계였습니다.
"이건 민수 어머니의 시계입니다. 그녀가 아들을 위해 남겨둔 시간..."
"엄마의..." 민수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황금빛 시계와 은빛 시계가 서로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시계 사이로 무지개빛 다리가 생겼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세 분의 시간이 하나가 되면..."
"안 됩니다." 저승사자가 손을 들어 시계들을 멈추려 했습니다. "이건 법도에 어긋나요!"
그때였습니다. 민수가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시간이 없어요!" 점원이 외쳤습니다. "선택해야 합니다. 지금..."
8: 과거의 그림자
"잠깐... 이 시계들을 자세히 보세요."
점원이 세 개의 시계를 나란히 놓았습니다. 각각의 시계 뒷면에는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시간은 사랑으로 되돌릴 수 있다'... 이건 어머니의 글씨예요."
민수의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건... '용서는 시간을 넘어선다'..."
노파의 시계에 새겨진 글이었습니다. 그녀는 40년 동안 이 말을 새기며 살아왔습니다.
"마지막 시계에는... '사랑은 기다림의 다른 이름'..."
김만덕 할아버지의 시계였습니다. 그는 끝까지 가족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이제 알겠어요." 점원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이건 우연이 아닙니다. 세 분 모두 서로를 위해 시간을 아끼고 계셨던 거예요."
시계들이 서서히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오래된 이야기가 깨어나는 것처럼...
9: 선택의 기로
"결정하셔야 합니다." 관리자가 말했습니다. "세 개의 시계를 하나로 합치면..."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죠?" 노파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새로운 시간이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오직 한 사람만 가질 수 있어요."
쓰러진 민수의 숨이 점점 약해지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전 제 시간을 전부 드리겠습니다." 노파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할머님은..." 점원이 말을 멈췄습니다.
그때 저승사자가 한 발 앞으로 나섰습니다.
"잠깐, 나도 할 말이 있소. 사실... 40년 전 그날, 내가 데려가야 했던 건 민수의 어머니가 아니었소."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실수였다오. 내가 잘못 데려간 거요. 그래서 이 시계들이... 서로를 찾고 있었던 거요."
세 개의 시계가 갑자기 강하게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40년 전의 잘못된 시간을 바로잡으려는 것처럼...
10: 시간의 무게
"그렇다면... 시간을 돌릴 수 있다는 건가요?"
점원의 질문에 관리자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시간은 돌릴 수 없어. 하지만 잘못된 시간을 바로잡을 순 있지."
세 개의 시계가 공중에 떠올랐습니다. 빛나는 시곗바늘이 거꾸로 돌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40년 전으로 돌아가는 건가요?"
"아니, 40년 동안 잘못 흘러간 시간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거예요."
갑자기 민수의 몸이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주변으로 수많은 시간의 파편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아... 이제 알겠어요." 저승사자가 중얼거렸습니다. "이 아이는 처음부터 세 개의 시간을 모두 가지고 있었던 거야."
"무슨 뜻이죠?"
"할아버지의 기다림, 할머니의 후회, 어머니의 사랑... 이 모든 시간이 민수 안에 있었던 거예요."
노파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40년간의 무게가 한순간에 녹아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11: 마지막 거래
"이제 마지막 선택을 해야 할 때입니다."
관리자의 말에 모두가 숨을 죽였습니다. 세 개의 시계는 여전히 공중에서 빛나고 있었습니다.
"세 개의 시간이 하나가 되면, 새로운 운명이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하지만 무엇인가요?"
"그 시간을 받아들이는 순간, 과거의 모든 기억은 사라지게 됩니다."
민수의 몸이 점점 투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존재가 이 세계와 저승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잠깐..." 점원이 앞으로 나섰습니다. "제가 가진 시간도 있습니다."
"자네가 가진 시간이라고?"
"네. 제가 저승사자였을 때 모아둔 시간입니다. 실수로 놓친 영혼들을 위해 따로 모아둔..."
점원의 주머니에서 작은 회중시계가 나왔습니다. 그 안에는 푸른빛 시간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걸 더하면... 과거도, 현재도 모두 지킬 수 있지 않을까요?"
12: 새로운 시작
일 년 후, 종로의 시계백화점에는 네 개의 시계가 진열장에 놓여있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점원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단순한 점원이 아닌, '시간 지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할머니, 오늘도 시계 보러 오셨어요?"
민수가 노파의 손을 잡고 들어왔습니다. 그들의 눈빛은 이제 더 이상 슬픔으로 가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오늘은 네 할아버지 시계가 반짝이더구나."
진열장 속 김만덕 할아버지의 시계가 은은하게 빛났습니다. 시계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고, 그 안에는 따뜻한 기억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신기하죠? 네 개의 시계가 서로 다른 시간을 가리키는데도, 모두 정확한 시간을 알려준다니..."
관리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그의 옆으로 옛 저승사자가 지나갔습니다. 이제 그도 이 상점의 단골손님이 되어 있었습니다.
"시간은 끝나는 게 아니라, 다시 시작되는 거니까요."
점원은 자신의 시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시간도 이제 다른 이들의 시간과 함께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게 이름이 '시계백화점'인가 봐요. 수많은 시간이 모여서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창밖으로 새로운 손님들이 보였습니다. 그들의 손에도 저마다의 시계가 들려있었고, 그 안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습니다.
엔딩멘트
"여러분은 누군가의 시간을 산다면, 그 시간으로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혹은 자신의 시간을 판다면, 어떤 대가를 바라시나요? 시간의 가치는 결국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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