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부의 잉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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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부에 이름을 쓰는 문관사자가 실수로 빨간 잉크 대신 검은 잉크를 사용하면서 벌어지는 기묘한 이야기입니다. 잘못 쓰여진 이름의 주인공들이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지게 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문관사자가 벌이는 모험을 그립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펼쳐지는 신비로운 이야기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과 운명의 의미를 전합니다.
1. 실수로 검은 잉크를 쓰는 문관사자
저승의 관청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날따라 유난히 바빴던 문관사자 이필은 생사부에 이름을 기록하는 일에 정신이 없었지요. 저승사자들이 데려올 영혼들의 이름을 빨간 잉크로 써넣어야 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습니다.
"오늘도 명단이 이리 많을까..." 이필은 한숨을 쉬며 붓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지요. 평소와 달리 검은 잉크에 붓을 담그고 말았던 것입니다.
"다음은 김만석, 올해 예순 다섯, 병으로 죽을 운명이로다." 이필은 자신도 모르게 검은 잉크로 이름을 써내려갔습니다. "이어서 최월이, 스물셋, 물에 빠져 죽을 운명이며..." 계속해서 검은 잉크가 생사부를 적셔갔습니다.
"마지막으로 박동이, 여덟 살, 불길 속에서 죽을 운명이로구나." 세 명의 이름을 다 쓴 뒤에야 이필은 자신의 실수를 발견했습니다. "이를 어쩐다... 빨간 잉크가 아닌 검은 잉크로 썼구나!"
저승에서 생사부에 쓰이는 빨간 잉크는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그 잉크로 이름이 쓰여야만 저승사자들이 정확한 시간에 영혼을 데려올 수 있었지요. 하지만 검은 잉크로 쓰인 이름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큰일 났구나. 이대로라면 저승사자들이 이들의 혼을 거두지 못할 텐데..." 이필은 식은땀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지요. 저승사자들이 출발한 뒤였으니까요.
"사자님! 큰일 났습니다!" 그때 급히 뛰어온 저승사자 하나가 외쳤습니다. "김만석이라는 노인의 혼을 거두러 갔는데, 이상합니다. 몸은 죽어있는데 혼이 빠져나오질 않습니다!"
이필은 자신의 실수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깨달았습니다. 검은 잉크로 쓰인 이름의 주인공들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기이한 상태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이를 어찌하면 좋을고..." 이필은 떨리는 손으로 생사부를 어루만졌습니다. 그의 실수로 인해 세 사람의 운명이 뒤틀리게 된 것입니다. 이제 그는 이 실수를 바로잡아야만 했습니다.
2. 첫 번째 이름 - 병석의 노인이 깨어나다
한양 도성 북쪽, 깊은 골목에 자리 잡은 김만석의 집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사흘 전 숨을 거두었다는 노인의 몸에서 이상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래..." 상주들이 놀라 물러섰습니다. 수의를 입힌 노인의 몸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 숨은 쉬지 않았고, 맥박도 뛰지 않았습니다.
"아버님이... 아버님이 손가락을 움직이셨어요!" 큰딸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여들어 지켜보기 시작했지요. 분명 죽은 것 같던 노인의 손가락이 조금씩 움직이더니, 이내 눈꺼풀이 살짝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보시게들, 내가 왜 이러고 있는가?" 갑자기 김만석 노인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습니다. 상주들은 혼비백산하여 뒷걸음질 쳤습니다. 죽은 이가 깨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구나..." 노인이 중얼거렸습니다. "숨은 쉬지 않는데, 정신은 말짱하고... 심장은 멎었는데 몸은 움직이는구나." 노인은 자신의 상태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저승사자가 노인의 앞에 나타났습니다. "이상한 일이로다. 분명 생사부에 적힌 대로 왔건만..." 저승사자는 노인의 혼을 거두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이보시오, 저승사자님." 노인이 말했습니다. "내가 죽은 것이오, 살아있는 것이오?" 저승사자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것이... 알 수가 없소이다. 생사부에는 분명 오늘 돌아가시게 되어 있는데..."
마을 사람들 사이에 수군거림이 퍼져나갔습니다. 죽었다 깨어난 노인의 이야기는 삽시간에 한양 전체로 퍼져나갔고, 많은 사람들이 이 기이한 광경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이필은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아이고, 내 실수가 이런 일을 만들다니..." 검은 잉크로 쓰인 이름의 주인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아직도 두 명의 이름이 남아있었으니까요.
3. 두 번째 이름 - 수장된 여인이 물속에서 숨쉬다
한강 남쪽 나루터, 그날 밤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물에 빠져 죽은 최월이라는 처녀가 사흘째 물 속에 잠겨있는데도, 얼굴이 푸르게 변하지 않았다는 소문이 퍼진 것입니다.
"사흘 전에 물에 빠진 여인을 건져냈다는데, 시신이 썩지를 않는다지 뭡니까?" 나루터 주변에 모여든 구경꾼들이 수군거렸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물 속에서 긴 한숨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상하구먼..." 장사꾼들이 깜짝 놀라 물러섰습니다. 분명 물 속에 잠겨있는 최월이의 입에서 거품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죽어있었고, 동시에 살아있었습니다.
"숨은 쉬고 있는데, 심장은 멎어있다니..." 의원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최월이는 물 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었고, 의식도 또렷했습니다. 하지만 몸은 분명 죽어있었지요.
"살려주세요..." 최월이가 물 속에서 중얼거렸습니다. "이렇게 물 속에만 있어야 하나요? 나가면 몸이 굳어버리는데..." 그녀의 말대로였습니다. 물 밖으로 나오면 시신이 되어버리고, 물 속에 있으면 의식이 또렷한 채로 지내야 했습니다.
저승사자가 나타났지만, 그녀의 혼을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이상하구나. 분명 생사부에는 물에 빠져 죽을 운명이라 적혀있는데..." 저승사자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보세요, 저승사자님." 최월이가 물 속에서 말했습니다. "제가 지금 죽은 건가요, 살아있는 건가요?" 저승사자는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생사부에 적힌 대로라면 분명 죽었어야 하는데, 영혼이 빠져나오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필은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며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두 번째 이름의 주인도 역시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를 어찌하면 좋을고... 마지막 세 번째 이름은..."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도성 어딘가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이 보였습니다. 세 번째 이름의 주인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4. 세 번째 이름 - 화재 속 아이가 타지 않다
한양 도성 장안의 거리에서 큰 화재가 일어났습니다. 불길이 치솟은 곳은 다름 아닌 주막이었고, 그 안에는 여덟 살 박동이가 갇혀 있었습니다.
"살려주세요! 누가 우리 아들을... 우리 동이를 살려주세요!" 아이의 어머니가 울부짖었지만, 이미 불길은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아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 불길 속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상하다..." 한 구경꾼이 중얼거렸습니다. "벌써 한 식경이 지났는데 아이의 비명이 들리지 않는구려." 그때였습니다. 불길 속에서 한 아이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뜨거워... 하지만 타지는 않아..." 박동이는 불길 한가운데 서서 중얼거렸습니다. 그의 몸은 불에 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불길이 그의 몸을 감싸고 춤추는 것 같았습니다.
"귀신이다! 저것은 분명 귀신이야!" 사람들이 놀라 물러섰습니다. 하지만 박동이는 분명 살아있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상태였지요.
"아들아!" 어머니가 불길 속으로 달려들려 했습니다. "어머니, 전 괜찮아요. 불이 뜨겁기만 하고 저를 태우지는 못해요." 박동이의 말대로였습니다. 그의 몸은 불길 속에서도 멀쩡했지만, 불길 밖으로는 나올 수 없었습니다.
저승사자가 나타났지만, 이번에도 영혼을 거둘 수 없었습니다. "이는 필시 무슨 영문이란 말인가. 세 명 모두가 이리 되다니..." 저승사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이필의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세 사람 모두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김만석은 숨 쉬지 않는 몸으로 걸어다니고, 최월이는 물 속에서 살아있으며, 이제 박동이는 불길 속에서 타지 않는 몸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내 실수로 인한 것이로구나..." 이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때 저승에서 급한 전갈이 날아왔습니다. "문관사자 이필은 당장 염라대왕 전으로 나오라." 드디어 그의 실수가 발각된 것입니다.
5. 혼란에 빠진 저승 관청
저승 관청이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각지에서 저승사자들이 돌아와 아우성이었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영혼을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생사부가 말을 듣지 않습니다!"
십대왕들의 집무실에서는 긴급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런 일은 저승이 생긴 이래 처음이다!" 진광대왕이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했습니다.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존재가 생겼다니, 이는 천지의 이치를 어지럽히는 일이로다!"
그때 한 젊은 판관이 뛰어들어왔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생사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모든 대왕들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무슨 소리냐?" 평등대왕이 물었습니다. "죽지 못하는 자들로 인해 현세와 저승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저승문이 열리고 말 것이라고..." 판관의 말에 모든 이들의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범인을 찾았느냐?" 도시대왕이 다그쳤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문관사자 이필이 덜덜 떨며 들어섰습니다. "제... 제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이필의 고백에 관청이 순식간에 조용해졌습니다.
"무슨 실수를 저질렀느냐?" 송제대왕이 묻자, 이필은 땀을 흘리며 대답했습니다. "생사부에... 검은 잉크로 이름을 써버렸습니다. 빨간 잉크 대신..."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관청이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이런 망측한 실수가!" "천년을 이어온 저승의 법도가!" "당장 염라대왕께 알려야 한다!" 순식간에 저승 삼층 죄수청에서 기록관리를 하던 작은 문관사자의 실수가 저승 전체를 뒤흔드는 대사건이 되어버렸습니다.
"잠시만요." 전령사자가 허둥지둥 뛰어들어왔습니다. "인간 세상에서 더 큰 일이 벌어졌답니다! 죽지 못하는 자들을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고, 도처에서 소문이 퍼지고 있답니다!"
이필은 그 자리에서 쓰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자신의 작은 실수가 이토록 큰 파장을 일으킬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때 전령이 하나 더 들어왔습니다. "염라대왕님께서 지금 당장 이필 문관사자를 부르십니다!"
6. 염라대왕의 문책과 해결 시한
저승 최고의 관청, 염라전 앞에 이필이 무릎을 꿇고 있었습니다. 염라대왕의 위엄 있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네가 생사부에 검은 잉크로 이름을 써넣었다고?"
"예...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이필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염라대왕은 탁자를 내리치며 소리쳤습니다. "천 년을 이어온 저승의 법도를 어지럽힌 죄가 얼마나 큰지 알고 있느냐!"
그때 곁에 있던 판관이 나섰습니다. "대왕님, 이대로 가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습니다. 이미 인간 세상에서는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자들의 소문이 퍼져, 저승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날 위험에 처했습니다."
염라대왕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쓰여진 이름들은 어찌 되는 것이냐?" 옆에서 무독신이 답했습니다. "빨간 잉크로 다시 써야만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승의 빨간 잉크는..."
"그렇소이다." 이필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보통의 붉은 잉크로는 안 됩니다. 저승의 빨간 잉크는 옥황상제께서 직접 내리신 것이라 하던데..."
염라대왕의 눈이 커졌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네 말은, 옥황상제께 가서 저승의 빨간 잉크를 받아와야 한다는 것이냐?" 이필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허나 천계는 그리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염라대왕이 수염을 쓸어내렸습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 좋다. 네게 기회를 주마."
염라대왕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이필 문관사자, 너에게 사흘의 시간을 주겠다. 그 안에 천계에 올라가 옥황상제께 빨간 잉크를 받아오너라. 만약 실패한다면..."
이필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만약 실패한다면, 너는 영원히 저승의 문관직을 박탈당하고 인간 세상을 떠도는 잡귀가 될 것이다."
"사흘이면 충분할 것이다." 염라대왕이 말을 이었습니다. "지금 당장 출발하거라. 그리고 명심해라. 네가 실패하면 그 세 사람은 영원히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채로 머물러야 한다."
이필은 떨리는 다리로 일어섰습니다. 사흘 안에 천계에 올라가 옥황상제를 뵙고 빨간 잉크를 받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였지만, 이는 그가 저지른 실수를 바로잡을 유일한 기회였습니다.
7. 빨간 잉크를 찾아 떠나는 여정
저승의 외곽, 저승과 인간 세상의 경계에서 이필은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천계로 가는 길은 인간 세상을 지나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 너머로 천계로 이어지는 은하수가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천 년 동안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길이라고 하던데..." 이필은 주머니 속의 도술 부적을 만져보았습니다. 염라대왕이 준 세 장의 부적, 이것이 그가 가진 전부였습니다.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이필의 몸이 반투명하게 변했습니다. 저승사자의 모습으로는 인간 세상을 활보할 수 없기에, 그는 혼신의 모습으로 변해야 했습니다.
"우선 죽지 못하는 그들을 만나봐야겠구나..." 이필은 한양으로 향했습니다. 숨도 쉬지 않고 걷는 노인 김만석, 물 속에서 살아가는 최월이, 불길 속의 아이 박동이. 그들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은 김만석의 집이었습니다. "문관사자님..." 김만석은 이필을 보자마자 알아보았습니다. "제가 어떻게 된 건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노인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묻어있었습니다.
다음은 한강가였습니다. 물 속의 최월이가 이필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이제 저는 영원히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마지막으로 찾은 불길 속의 박동이는 그저 묵묵히 이필을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내가 꼭 빨간 잉크를 구해오겠소." 이필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사흘 안에 돌아올 테니, 그때까지만 견뎌주시오." 세 사람의 모습을 본 이필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하늘을 보니 은하수가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습니다. 천계로 가는 길은 그 은하수를 따라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은 필히 인간의 욕망이 가득한 삼악도를 지나야 했고, 그곳에는 수많은 잡귀와 악령이 도사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제 첫 번째 부적을 써야 할 때구나." 이필은 부적 하나를 꺼내들었습니다. 그것은 몸을 감싸는 보호막이 되어줄 것입니다. 남은 것은 두 장, 앞으로 이 부적들을 언제 써야 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습니다.
"자, 이제 가보자..." 이필은 은하수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저승의 말단 문관사자가 천계를 향해 가는 위험한 여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8. 해결의 실마리 - 옥황상제의 잉크방
삼악도를 지나 드디어 천계에 도착한 이필은 구름으로 이루어진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하늘의 관리들은 그를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았습니다. 저승의 문관사자가 천계에 온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옥황상제의 잉크방이라... 과연 어디 있는 것일까." 이필이 중얼거리는 순간, 한 노인이 다가왔습니다. 하얀 수염을 기른 그 노인은 천계의 문지기였습니다.
"천 년 만에 찾아온 손님이구나." 노인이 미소 지었습니다. "저승의 문관사자가 이곳까지 온 데는 필시 무슨 곡절이 있을 터. 말해 보거라." 이필은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잉크방은 구름다리를 건너 일곱 개의 문을 지나야 하느니라. 하지만 그곳에 이르기 전, 네 진심을 시험할 것이다." 노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구름다리가 나타났습니다.
이필이 구름다리에 발을 디디자, 갑자기 눈부신 빛이 쏟아졌습니다. 그 빛 속에서 세 개의 환영이 보였습니다. 죽지 못해 고통받는 세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들을 보게나." 노인이 말했습니다. "네 실수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이다. 네가 정말 그들을 구하고 싶은 것이냐, 아니면 단순히 네 죄를 면하고 싶은 것이냐?"
이필은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처음에는 분명 자신의 실수를 바로잡고 벌을 피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습니다. 하지만 세 사람을 만나고 난 뒤, 그의 마음은 달라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고통을 끝내고 싶습니다. 제 실수로 인해 그들이 겪는 고통을... 결코 그대로 둘 수 없습니다." 이필의 진심 어린 말에 노인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좋다. 이제 일곱 개의 문을 지나야 한다." 노인이 말을 이었습니다. "각각의 문에는 서로 다른 시험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시험들을 통과하면 비로소 잉크방에 이를 수 있으리라."
구름다리 너머로 일곱 개의 문이 보였습니다. 첫 번째 문에는 '진실'이라는 글자가, 두 번째 문에는 '용기'라는 글자가, 그리고 그 뒤로 '지혜', '인내', '자비', '희생', '깨달음'이라는 글자들이 써있었습니다.
이필의 남은 시간은 이제 단 하루. 그리고 남은 부적은 단 한 장뿐이었습니다. "자, 이제 시작이다." 이필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첫 번째 문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9. 시련 - 천계의 시험
첫 번째 '진실'의 문 앞에서 이필은 자신의 모습과 마주했습니다. 거울처럼 비친 그의 모습이 입을 열었습니다. "넌 정말 그들을 구하고 싶은가, 아니면 네 자신을 구하고 싶은가?" 이필은 진심을 담아 대답했습니다. "처음엔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소.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소." 문이 열렸습니다.
'용기'의 문 앞에서는 그의 가장 큰 두려움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영원히 떠도는 잡귀가 되는 환영이 그를 덮쳤습니다. 하지만 이필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내가 잡귀가 된다 해도, 그들을 이대로 둘 순 없소." 두 번째 문도 열렸습니다.
'지혜'의 문에서는 수수께끼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이필은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운명이 아니라, 본래의 자리를 찾아주는 것입니다." 세 번째 문이 열렸습니다.
'인내'의 문은 끝없는 계단이었습니다. 올라갈수록 다리는 무거워졌고, 숨은 가빠졌습니다. 하지만 이필은 한 걸음 한 걸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잠시의 고통쯤이야... 그들은 얼마나 긴 고통을 겪고 있을까..." 네 번째 문도 통과했습니다.
'자비'의 문 앞에서 이필은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눈앞에 나타난 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이 대신 짊어질 수 있다는 제안이었습니다. 이필은 망설임 없이 수락했고, 다섯 번째 문이 열렸습니다.
'희생'의 문에서는 가장 큰 시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네 관직을 포기하면 그들이 즉시 해방된다." 하지만 이필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것은 책임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제가 저지른 실수는 제가 바로잡아야 합니다." 여섯 번째 문도 열렸습니다.
마지막 '깨달음'의 문 앞에 섰을 때, 이필은 마지막 부적을 꺼내들었습니다. 하지만 문이 스스로 열렸습니다. "네가 찾는 것은 잉크가 아니라 네 안의 답이었다." 천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일곱 개의 문을 모두 통과한 이필 앞에 마침내 옥황상제의 잉크방이 나타났습니다. 그곳에는 수천 개의 잉크병이 보관되어 있었고, 각각의 잉크는 서로 다른 운명을 담고 있었습니다.
10. 잉크를 구하다
옥황상제의 잉크방 안은 수천 개의 잉크병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금빛 잉크, 은빛 잉크, 하얀 잉크, 검은 잉크... 그리고 수많은 붉은 잉크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각각의 잉크병에는 그것이 지닌 운명의 힘이 적혀 있었지요.
"이렇게 많은 잉크들이..." 이필이 놀란 듯 중얼거렸습니다. 그때 잉크방의 관리인이 나타났습니다. "천 년 동안 쌓아온 운명의 잉크들이지요. 당신이 찾는 것은 어떤 잉크입니까?"
이필이 대답했습니다. "저승의 생사부에 쓰일 붉은 잉크를 찾고 있습니다." 관리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수천 개의 붉은 잉크병이 있는 곳으로 그를 안내했습니다.
"이 중에서 고르시오. 하지만 명심하시오. 잘못된 선택을 하면 그들의 운명은 영원히 뒤틀리고 말 것이오." 관리인의 말에 이필은 식은땀을 흘렸습니다. 수많은 붉은 잉크들 중 어느 것이 진짜일까요?
그때 이필은 자신이 쓴 검은 잉크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세 사람의 모습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습니다. 숨쉬지 않는 노인, 물 속의 처녀, 불길 속의 아이...
"잠깐..." 이필의 눈이 빛났습니다. "제가 검은 잉크로 썼을 때, 그들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생사를 가르는 잉크는..." 이필은 잉크병들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그의 시선이 한 잉크병에 멈추었습니다. 다른 붉은 잉크들과 달리, 그 잉크는 마치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잉크병에는 '생사의 경계'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 이것입니다." 이필이 그 잉크병을 가리켰습니다. 관리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과연 그대는 진정한 답을 찾아냈소. 생사부의 잉크는 단순히 죽음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경계를 구분 짓는 것이니까요."
이필은 조심스럽게 잉크병을 받아들었습니다. 그 순간 잉크병에서 붉은 빛이 퍼져나왔고, 그 빛은 마치 생명력 자체처럼 따스했습니다.
"이제 돌아가시오. 하지만 기억하시오. 잉크의 힘은 그것을 사용하는 이의 마음에 달려있다는 것을..." 관리인의 말이 울려 퍼졌습니다. 이필은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잉크방을 나섰습니다. 이제 그에게 남은 시간은 단 반나절뿐이었습니다.
11. 이름을 다시 쓰는 순간
저승 관청으로 돌아온 이필 앞에는 생사부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의 손에는 천계에서 가져온 붉은 잉크가 들려있었고, 주변에는 십대왕과 수많은 저승사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자, 이제 시작하거라." 염라대왕이 말했습니다. 이필은 떨리는 손으로 붓을 들었습니다. 먼저 김만석의 이름부터 써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붉은 잉크가 검은 글자 위를 덮어가자, 신비한 빛이 퍼져나왔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대왕님, 큰일났습니다!" 전령이 급히 들어왔습니다. "김만석의 몸에서 갑자기 숨이 끊어졌다고 합니다!" 이필의 손이 멈칫했습니다. 하지만 곧 이어진 전령의 말에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의 혼이 자연스럽게 몸을 빠져나와 이곳으로 오고 있답니다."
이번에는 최월이의 이름을 써내려갔습니다. 붉은 잉크가 흐르자 물속에 잠겨있던 그녀의 몸이 마침내 물 밖으로 떠올랐고, 그녀의 혼도 평화롭게 저승으로 향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마지막으로 박동이의 이름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필의 손이 떨렸습니다. "어린아이의 운명을 바꾸는 것이 맞는 걸까..." 그때 옥황상제의 잉크방 관리인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잉크의 힘은 그것을 사용하는 이의 마음에 달려있다..."
이필은 깊은 숨을 내쉬고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이것은 운명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뒤틀린 운명을 바로잡는 것이다." 그의 확신에 찬 마음이 붓끝에 실렸고, 붉은 잉크가 흘러내렸습니다.
순간 불길 속의 아이가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세 개의 이름이 모두 붉은 잉크로 다시 쓰여진 것입니다. 생사부는 다시 한 번 빛을 발하더니, 이내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모두 제자리를 찾았구나..." 염라대왕이 만족스럽게 말했습니다. 이필은 마침내 붓을 내려놓았습니다. 그의 어깨가 무거웠지만, 마음만큼은 이상하게 가벼웠습니다.
"그대는 단순히 실수를 바로잡은 것이 아니라, 생사의 의미를 깨달은 것이니라." 염라대왕의 말씀에 이필은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제 그는 단순한 문관사자가 아닌, 생명의 무게를 아는 저승의 관리가 된 것입니다.
12. 질서의 회복과 깨달음
그 후로 저승의 문관사자 이필은 생사부를 더욱 신중하게 다루게 되었다고 합니다. 빨간 잉크로 이름을 쓸 때마다 그는 잠시 멈추어 그 이름의 주인을 생각했고, 생명의 무게를 한 번 더 되새겼다고 하지요.
김만석 노인의 혼은 저승에 와서 편안한 휴식을 얻었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이상한 일을 겪었지만, 이제는 그저 노인의 집 안마당에 매화나무 한 그루를 심어 그를 기억한다고 합니다.
최월이는 강가에 작은 사당이 세워졌습니다. 그곳을 지나는 뱃사공들은 물살이 거칠 때면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안전한 항해를 기원했고, 이상하게도 그럴 때마다 물살이 잔잔해졌다고 하네요.
어린 박동이를 기리며 마을 사람들은 불이 난 자리에 작은 절을 지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매년 봄이면 연등을 밝히며 아이의 넋을 위로했고, 그 불빛은 한밤중에도 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필은 가끔 인간 세상에 내려가 세 사람을 기리는 장소를 찾았습니다. 매화나무 아래에서, 강가의 사당에서, 그리고 절의 연등 앞에서 그는 깊은 생각에 잠기곤 했습니다.
"생사부의 잉크는 단순히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것이 아니었구나. 그것은 모든 생명이 제자리를 찾아가게 하는 것이었어..." 이필의 깨달음은 저승의 다른 관리들에게도 전해져, 그들 역시 생명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지금도 저승에서는 빨간 잉크로 이름을 쓸 때면 잠시 붓을 멈추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쓰여진 이름들은 더욱 평화롭게 자신의 마지막 길을 찾아간다고 하지요.
이렇게 해서 한 문관사자의 실수는 오히려 더 큰 깨달음이 되어 저승의 질서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생명의 소중함과 책임의 무게를 일깨우는 교훈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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