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 염라청(閻羅廳) 다녀온 선비, 벼슬길이 환히 트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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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
조선 한양에 박달재라는 선비가 살았습니다. 십 년 동안 과거 시험에 매달렸지만 단 한 번도 붙지 못했습니다. 실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돈이 없어서입니다. 뇌물을 바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글을 써도 답안지가 읽히지도 않는 세상이었습니다. 어느 날 밤, 굶다 지쳐 쓰러진 달재 앞에 저승사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착오였습니다. 잡아가야 할 사람은 옆 마을의 투전꾼 박달채였고, 달재는 잘못 끌려온 것이었습니다. 산 사람이 저승에 와 버린 겁니다. 그런데 이 선비는 저승에서 겁을 먹기는커녕, 염라대왕의 판결문을 고쳐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붓끝이 저승의 질서를 뒤흔들고, 마침내 염라대왕이 직접 이 선비의 등에 무언가를 써 주었습니다. 그 뒤로 이승에서 벌어진 일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조선시대 야담에 실제로 기록된 이야기입니다.
※ 1단계: 첫 장면
한양 남산골, 사람 하나 겨우 누울 만한 비좁은 초가집이 있었다. 벽 틈새로는 황소바람이 숭숭 들어왔고, 천장 구석에는 십 년 묵은 거미줄이 쳐져 있었다. 바닥은 장판이 삭아 군데군데 맨흙이 드러나 있었고, 그 위에 깔린 멍석은 짚이 다 삭아 앉으면 엉덩이가 찬 흙에 닿았다. 방 안 가득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는데, 그것은 벽에 핀 곰팡이 냄새인지 며칠째 씻지 못한 사람의 냄새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 어두침침한 방 한가운데, 며칠을 굶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선비 하나가 붓을 쥐고 사시나무 떨듯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관절이 뻣뻣해져서 붓대를 제대로 쥘 수가 없었고, 먹을 갈아야 하는데 먹을 누르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름은 박달재. 나이 서른.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놈의 벼슬길은 십 년째 꽉 막힌 변비처럼 도무지 뚫릴 기미가 없었다. 스물에 처음 과거를 보았고, 그 뒤로 해마다 응시했으나 열 번을 보면 열 번 다 낙방이었다. 달재는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내쉬며 붓을 들어 누런 화선지 위에 나라 국 자를 쓰기 시작했다. 내일이 시험이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밤을 새워 글을 다듬고 있었다. 제발 이번만은, 제발. 먹물을 듬뿍 머금은 붓끝이 종이에 닿는 순간, 꼬르륵. 뱃가죽이 등가죽에 붙을 지경인 배에서 천둥소리보다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손이 미끄러졌다. 툭. 검은 먹물 한 방울이 종이 위로 튀어버렸다. 아차 하는 순간 근엄하게 쓰려던 나라 국 자가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획 하나가 삐뚤어지면서 마치 간사할 간 자처럼 변해 버린 것이었다. 달재는 붓을 내려놓고 그 글자를 한참 바라보았다. 에잉, 붓 꼬라지 하고는. 주인 닮아서 붓까지 삐뚤어졌구나. 내 팔자나 붓 팔자나 참 똑같구나 똑같아. 달재는 화선지를 북북 찢어 구겨진 종이 뭉치가 산처럼 쌓인 책상 구석에 신경질적으로 던져버렸다. 방 한쪽 벽면을 따라 쌓인 구겨진 종이 뭉치가 이미 허리 높이까지 와 있었다. 십 년 낙방의 흔적이 종이 산이 되어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밖에서 바람이 불 때마다 문풍지가 떨렸고, 그 소리가 마치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들렸다. 달재는 그 소리에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 밤, 진짜로 문을 두드리는 것은 바람이 아니었다.
※ 2단계: 주제 제시
그때 삐걱거리며 낡은 방문이 열리고 아내가 삯바느질감을 한아름 안고 들어왔다. 찬바람에 튼 손등이 붉게 부어올라 갈라져 있었고, 터진 곳마다 실핏줄이 드러나 피가 배어 나와 있었다. 하루 종일 바늘을 쥐었던 손가락 끝에는 바늘에 찔린 자국이 수십 개나 찍혀 있었다. 아내는 남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보, 혹시 그 기가 막힌 소문 들으셨소. 윗마을 기와집 사는 김 대감 댁 아들놈 말이에요. 글쎄 이번 과거 시험에서 백지를 내고도 장원급제를 했답니다. 시험관이 김 대감 사돈의 팔촌이라나 뭐라나. 뇌물을 얼마나 갖다 바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예 글자 한 자를 안 쓰고 붙었다니,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답니까. 달재는 기가 막혀 입을 떡 벌렸다가, 한참 만에야 겨우 말이 나왔다. 뭐라고. 백지라고. 먹물 한 방울 안 찍고 급제를 했다고. 허참,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는구만. 내가 밤을 새워가며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쓴 답안지는 읽지도 않고 아궁이 불쏘시개로 쓰더니, 백지를 낸 놈이 장원이라니. 나라 꼴이 말이 아니구만. 이건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거야. 아내는 씁쓸하게 웃으며 바늘에 실을 꿰었다. 손이 떨려 실이 바늘귀를 세 번이나 비켜 나갔다. 그러게 말이에요. 실력이 무슨 소용입니까. 이 세상에서는 든든한 줄 하나 잡는 게 장땡인 더러운 세상인걸요. 우리 같은 흙수저는 손가락이 닳아 없어지도록 글을 써봐야 소용없나 봅니다. 언제쯤이면 글 잘 쓰는 사람이 대접받는 세상이 오려나요. 달재는 아내의 터진 손등을 바라보았다. 그 손으로 하루 종일 바느질을 해서 버는 돈이 겨우 좁쌀 한 줌 값이었다. 그 좁쌀 한 줌으로 묽은 죽을 쑤어 둘이서 나눠 먹는 것이 이 집의 전부였다. 가난은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불공평함은 뼛속까지 갉아먹는 독이었다. 노력이 보상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재능이 돈 앞에 무릎을 꿇는 세상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그 무력감이 달재를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무너뜨리고 있었다.
※ 3단계: 설정
달재는 사실 사서삼경을 거꾸로 외울 정도로 글에 관해서는 천재였다. 일곱 살에 천자문을 떼었고, 열두 살에 마을 훈장이 더 가르칠 것이 없다며 손을 들었다. 스무 살 무렵에는 한양에서 손꼽히는 문장가들 사이에서도 박달재의 글솜씨를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문제는 그놈의 줄과 돈이었다. 과거 시험을 볼 때마다 부패한 시험관들에게 뇌물을 바치지 못해 번번이 낙방하는 것이 일쑤였고, 한번은 시험관이 대놓고 말하기까지 했다. 글은 잘 썼는데 성의가 없으니 다음에 오게. 성의라는 것이 돈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달재에게는 그 성의를 보일 돈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대문 밖에서 쾅쾅 소리가 나더니 집주인이 들이닥쳐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어이 박 선비. 안에 쥐 죽은 듯이 있는 거 다 알아. 이번 달까지 밀린 방세, 석 달치야 석 달치. 안 내면 당장 짐 다 밖으로 던져버릴 거야. 알았어. 당장 방 빼. 달재는 죄인처럼 문고리를 잡고 고개를 숙였다. 입술이 바짝 말라 있었고 목소리가 갈라졌다. 어르신,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내일 과거 시험이 있는데, 이것이 제 인생 마지막 기회요. 이번에만 붙으면 밀린 돈에 이자까지 쳐서 다 갚으리다. 제발 한 번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봐주시오. 집주인이 코방귀를 뀌며 씩씩거리고 돌아갔다. 달재는 방 안으로 돌아와 결연한 표정으로 책상 앞에 앉았다. 이게 진짜 마지막이다. 이번에도 안 되면 더는 아내를 고생시킬 수 없다. 혀를 깨물든, 한강에 돌을 안고 빠지든, 끝을 내자. 달재는 쏟아지는 졸음을 쫓기 위해 허벅지를 손톱으로 꼬집어 피멍이 들도록 밤새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그러나 며칠간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시지 못한 몸이 의지를 따라가 줄 리 없었다. 새벽닭이 울기도 전에, 달재는 책상 위에 엎어진 채 그만 의식을 잃고 말았다. 과로와 영양실조가 겹친 것이었다. 촛불이 꺼졌고, 방 안이 칠흑처럼 어두워졌다. 그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마루를 밟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의 발소리가 아니었다.
※ 4단계: 사건 발생
얼마나 지났을까. 뼛속까지 스며드는 으스스한 한기가 달재의 의식을 흔들어 깨웠다. 눈을 뜨는데, 방 안의 공기가 달라져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가 얼어붙는 것 같았고, 내쉬는 숨이 하얀 서리가 되어 코앞에서 흩어졌다. 한겨울이라 원래도 추운 방이었지만, 이것은 추위가 아니었다. 삶과 죽음 사이의 온도였다. 달재가 고개를 드는 순간, 눈앞에 시커먼 갓을 쓰고 창백한 얼굴을 한 사내가 서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기척은 없었다. 발소리도 없었고,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도 없었다. 그냥 처음부터 거기 있었다는 듯이 서 있었다. 사내의 피부는 달빛 아래의 백자처럼 하얗고 차가웠으며, 눈동자는 검은 구멍처럼 깊었다. 그 안에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사내가 품에서 장부를 꺼내 펼쳤다. 박달재. 서른. 명줄 끝났다. 가자. 달재는 상황 파악이 안 돼 눈만 깜빡였다. 네, 저승사자요. 아니, 이보시오. 난 아직 죽을 때가 아니오. 내일 아침이 시험이란 말이오. 공부하다 잠깐 쓰러진 것뿐인데 죽다니, 말도 안 돼. 이건 꿈이야. 꿈이라고. 달재가 발버둥을 쳤지만 사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포승줄을 던져 달재의 팔다리를 꽁꽁 묶었다. 포승줄이 닿는 곳마다 살이 시리게 저렸고, 묶인 곳에서 검은 서리가 피어올랐다. 잔말 말고 따라와라. 염라대왕님이 기다리신다. 달재는 질질 끌려 안개 자욱한 황천길을 건넜다. 길 양쪽에는 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이 웅크리고 앉아 달재를 올려다보았다. 눈이 없는 얼굴들이었다. 입만 있었는데, 그 입이 달재를 향해 무언가를 속삭이는 것 같았으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검은 물이 흐르는 삼도천을 건너자 저편에 거대한 기와집이 나타났다. 처마 끝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고, 기둥은 사람 열 명이 팔을 벌려도 안을 수 없을 만큼 굵었다. 편액에는 염라청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글자 자체가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그런데 입구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명부 담당관이 달재를 데려온 사자의 뒤통수를 퍽 소리 나게 후려갈긴 것이다. 야 이 멍청한 놈아. 눈을 어디다 달고 다니는 거야. 오늘 데려올 놈은 옆 동네 투전판에서 사람 찔러 죽인 박달채잖아. 박달재가 아니라 박달채. 재와 채. 받침 하나 차이를 구별 못 하냐. 너 글자도 못 읽어.
※ 5단계: 고민
저승사자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산 채로 저승에 끌려온 달재. 사자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난처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아, 이거 큰일 났네. 실수한 거 들키면 시말서만 세 장은 써야 하는데. 게다가 지금 저승 문 닫는 축시라 이승행 통로가 아침까지는 열리지 않는데. 이를 어쩐다. 어쩌긴 뭘 어째, 일단 구석에 처박아 두고 아침에 슬쩍 돌려보내면 되지 않겠냐. 달재는 그 말을 듣고 정수리에서 불이 났다. 뭐라고. 내일 아침에 시험 시작인데 아침까지 못 나간다니. 당신이 글자를 잘못 읽어서 엉뚱한 사람을 잡아와 놓고 나 몰라라 하는 거요. 이보시오, 내가 이 시험을 보려고 십 년을 준비했소. 십 년. 그동안 아내가 손에 피가 나도록 바느질을 해서 번 돈으로 먹을 사고, 종이를 사고, 빚까지 냈소. 이번에 떨어지면 나는 진짜로 굶어 죽소. 빨리 돌려보내 주시오. 당장 문을 열란 말이오. 달재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사자의 멱살을 잡았다. 사자는 산 사람의 손아귀 힘에 놀라 뒤로 밀려났다. 저승에서 산 사람이 행패를 부리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주변의 관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염라대왕의 집무실 안에서 기와장이 들썩일 만큼 쩌렁쩌렁한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대체 이 판결문을 누가 쓴 거야. 문장이 개판이잖아. 주어와 서술어가 호응이 안 되고, 논지는 앞뒤가 맞지 않고, 맞춤법은 다 틀리고, 글자가 삐뚤빼뚤해서 도저히 해석이 안 돼 해석이. 이따위로 판결문을 쓰면 억울한 영혼들이 들고 일어나. 이거 쓴 놈 당장 잡아와. 집무실 문이 벌컥 열리며 안에서 장부가 날아와 벽에 부딪혀 낱장이 흩어졌다. 관리들이 고개를 숙이고 벌벌 떨었다. 달재는 그 소리를 듣고 귀가 번쩍 뜨였다. 글이라면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6단계: 2막 진입
달재는 사자의 손을 뿌리치고 집무실 앞으로 달려나갔다. 관리들이 막으려 했지만 달재의 기세에 밀려 양옆으로 갈라졌다. 집무실 문 앞에 서자,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숨이 막히고 다리가 떨렸다. 그래도 달재는 문을 밀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단상 위에 앉아 있는 형체가 보였다.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았고, 다만 두 눈만이 숯불처럼 붉게 빛나고 있었다. 염라대왕이었다. 달재는 무릎이 꺾이려는 것을 억지로 버티며 입을 열었다. 대왕님. 죽을 때 죽더라도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 소생은 한양 남산골에 사는 선비 박달재라 하옵니다. 당신 부하놈이 글자를 잘못 읽어서 저를 잡아왔는데, 저는 원래 죽을 사람이 아닙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밖에서 들으니 판결문이 문제라 하셨는데 소생이 한번 봐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평생 한 게 글 읽고 글 쓰는 것밖에 없는 놈입니다만, 그 한 가지만은 자신이 있습니다. 염라대왕은 꾀죄죄한 몰골의 선비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네까짓 게 뭘 안다고 감히 나서느냐. 산 놈이 겁도 없이 저승의 법정 문서에 손을 대겠다고. 가소롭구나. 그러나 염라대왕의 눈빛에는 흥미가 서려 있었다. 수천 년을 다스리며 숱한 영혼을 보았지만, 산 사람이 자기 앞에서 이토록 당당하게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염라대왕이 책상 위의 붓을 달재 앞에 던졌다. 좋다. 밑져야 본전이니 어디 한번 해봐라. 그 대신 내 눈에 차지 않으면 바로 지옥불에 던져버릴 테다. 각오하고 잡아라. 달재는 붓을 잡았다. 붓을 쥐는 순간, 등골에 전류가 흐르듯 온몸이 떨렸다. 이것은 보통 붓이 아니었다. 붓대가 손가락에 착 감기는 느낌이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았다. 달재가 장부를 펼쳤다. 판결문의 내용은 뒤죽박죽이었다. 주어가 빠져 있고,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았으며, 죄목과 형벌의 연결이 엉뚱했다. 달재의 눈이 빛났다. 붓끝이 종이에 닿자, 붓이 마치 칼처럼 춤을 추었다. 난해하고 엉망이던 문장이 달재의 손을 거치자 논리가 정연하고 문장이 수려한 명문으로 탈바꿈했다. 염라대왕의 붉은 눈이 커졌다. 오호라. 이것 봐라. 글솜씨가 제법이 아니라 완전 물건인데.
※ 7단계: B 이야기
그때부터 달재는 염라청 구석방에 앉아 산더미처럼 쌓인 밀린 서류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저승의 행정 문서가 밀린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유능한 문서 담당이 없어 수십 년째 쌓여만 가고 있었고, 판결문의 오류 때문에 억울하게 지옥에 떨어진 영혼이 한둘이 아니었다. 달재는 서류를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 읽으면 읽을수록 손이 떨렸다. 먹물이 아니라 피로 써야 할 것 같은 내용들이었다. 이승에서 탐관오리들이 뇌물을 받고 대충 써서 올린 엉터리 상소문과 억울한 판결문들이 수두룩했다. 쌀을 훔친 것은 관아의 사또인데, 누명을 쓴 종놈이 매를 맞다 죽어서 왔다. 장부를 보니 사또가 심사관에게 뇌물을 먹여 판결을 뒤집은 것이 선명했다. 땅을 빼앗긴 농부가 억울해하다 화병으로 죽어온 건도 있었다. 양반이 문서를 위조하여 소작농의 밭을 제 것으로 만든 것인데, 관아에서는 양반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 농부는 아내와 어린 자식 셋을 남기고 피를 토하며 죽었다고 적혀 있었다. 이 나쁜 놈들. 백성들의 피를 빨아먹고도 모자라 글까지 이따위로 엉망으로 쓰다니. 내 붓으로 다 바로잡아 주마. 달재는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의 사연 하나하나를 읽으며, 눈에서 눈물이 흘러 먹물에 섞이는 것도 모른 채 붓을 놀렸다. 판결문을 고쳐 쓸 때마다 바닥에 앉아 있던 영혼들이 고개를 들었다. 수십 년째 풀리지 않던 억울함이 풀리는 것을 느끼는 듯했다. 어떤 영혼은 울었고, 어떤 영혼은 절을 올렸다. 달재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다만 붓을 놀리는 손끝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을 뿐이었다. 글이라는 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을 담는 그릇이었고,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는 칼이었다. 달재는 이승에서 그 칼을 쓸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저승에서 비로소 그 칼의 날을 세우고 있었다. 염라대왕은 달래가 고쳐 쓴 판결문을 하나하나 읽었다. 차가운 표정이 점점 달라졌다. 이 선비는 단순한 글쟁이가 아니구나. 백성의 아픔을 제 아픔처럼 느끼는 놈이야. 이런 놈이 이승에서 썩고 있었다니.
※ 8단계: 재미 구간
염라대왕은 신이 나서 달재에게 일을 더 시켰다. 야, 박 선비. 넌 진짜 천재다. 이것도 좀 봐라. 저승 리모델링 계획서인데 천 년 전에 만든 서류를 그대로 쓰고 있어서 영 엉망이야. 네가 좀 싹 갈아엎어 봐라. 달재는 계획서를 펼쳐 보고 혀를 찼다. 이게 천 년 전 문서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비효율적이었다. 저승의 시스템 자체가 구닥다리였다. 달재는 이승에서 십 년간 갈고닦은 글솜씨와, 밤마다 몰래 읽었던 경세제민의 학문을 총동원하여 저승의 행정 개혁안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꽉 막힌 삼도천 교통 체증 해결 방안. 현재 삼도천을 건너는 배가 한 척뿐이어서 영혼들이 수십 년씩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달재는 지옥행, 환생행, 극락행 세 갈래로 나누는 급행 노선 신설을 제안했다. 두 번째, 이승에서 뇌물을 받아먹고 영혼을 잘못된 곳으로 보내는 부패 저승사자들을 적발하기 위한 특별 감사 제도 도입. 세 번째, 착하게 살다 온 영혼들에게 환생 시 좋은 조건을 부여하는 선행 보상 제도. 달재의 혁신적인 기획안을 본 염라청 관리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근에 시달리던 하급 관리들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이, 이런 제도가 있으면 우리도 야근을 안 해도 되는 겁니까. 박 선비님 최고입니다. 진작에 이런 분이 왔어야 했는데. 염라대왕은 흡족한 표정으로 달재를 바라보았다. 야, 너 그냥 이승 가지 말고 여기서 나랑 같이 일하자. 내가 지옥 공무원 일급 자리를 줄게. 연봉은 수명 백 년 연장이야. 쉬는 날은 삼도천 유람 무료이용권을 주지. 이승 같으면 정삼품 당상관급이다. 어때, 꿀 직장이지. 달재는 귀가 솔깃했으나 고개를 저었다. 감사하오나, 소생에게는 이승에 두고 온 아내가 있습니다. 그 사람을 두고는 갈 수 없습니다.
※ 9단계: 중간 전환점
그런데 즐거운 시간도 잠시였다. 새벽닭이 울기 직전, 분위기가 급변했다. 염라대왕이 기분 좋게 달재의 수명 장부를 확인하다가 갑자기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것이다. 장부를 넘기는 염라대왕의 손가락이 한 페이지에서 멈추었다. 어라. 이상하다. 이놈의 운명이. 염라대왕이 장부를 다시 읽고, 세 번째 읽고, 네 번째 읽었다. 그때마다 미간의 주름이 깊어졌다. 이 녀석은 이번 생에 관운이 아예 없구나. 평생 과거 시험만 보다가 열한 번 낙방하고, 마지막에는 굶주림과 화병이 겹쳐 죽을 팔자야. 재능은 하늘이 내렸는데 운명이 그 재능을 쓸 길을 막아 놓았어. 쯧쯧, 아깝다 아까워. 달재는 그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 절망했다. 귀에서 윙 하는 소리가 났고, 시야가 흐려졌다. 네, 제가 평생 백수로 살다 굶어 죽을 팔자라고요. 아무리 글을 잘 써도 소용없단 말입니까. 대왕님, 이건 너무 억울합니다. 소생이 저승의 일도 이렇게 잘 해드렸는데, 이승으로 돌아가면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겁니까. 달재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눈에 눈물이 고였으나 흘리지는 않았다. 제발 운명을 바꿔 주십시오. 아내에게 따뜻한 밥 한 끼 해주고 싶습니다. 그것 하나만이라도. 염라대왕은 난처한 표정으로 턱을 괴었다. 팔자는 하늘이 정한 것이라 나도 함부로 못 고친다. 옥황상제 결재를 받아야 하는데, 서류 처리가 보통 삼백 년은 걸려. 달재의 얼굴에서 마지막 빛이 사라지려는 순간, 염라대왕이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잠깐. 법을 정면으로 어기지 않으면서 도와줄 꼼수가 하나 있긴 하다. 법의 글자를 바꾸는 게 아니라, 글자의 기운을 바꾸는 것이다.
※ 10단계: 위기 압박
염라대왕이 꼼수를 설명하려는 그 순간, 염라청 밖에서 쿵쿵거리는 무거운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두 명의 발소리가 아니었다. 수십 명이 일제히 걸어오는 소리였다. 집무실 문이 벌컥 열리고 검은 갑옷을 입은 저승 감찰관들이 들이닥쳤다. 선두에 선 감찰관의 눈이 매처럼 날카로웠고, 손에는 철로 만든 소환장을 들고 있었다. 염라대왕님, 계십니까. 산 사람을 불법으로 저승에 유치하여 강제 노동을 시켰다는 제보가 접수되었습니다. 저승법 제일조 생자 접근 금지 위반이며, 추가로 제삼조 명부 외 인력 고용 금지 위반입니다. 당장 해당 인간을 내놓으십시오. 감찰관들의 눈이 방 안을 훑었다. 달재는 순간적으로 책상 밑으로 몸을 구겨 넣었지만, 서른 살 성인 남자가 들어가기에 책상 밑은 너무 좁았다. 다리가 비죽 튀어나와 있었다. 염라대왕이 재빠르게 자신의 거대한 도포 자락을 펼쳐 달래를 덮었다. 그리고 달재의 귀에 대고 다급하게 속삭였다. 야, 들키면 너는 바로 무간지옥행이고, 나는 탄핵이야. 숨소리도 내지 마. 절대로. 재채기 한 번이면 끝이야. 알았지. 달재는 도포 자락 아래에서 숨을 멈추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심장 소리가 밖에까지 들리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감찰관들이 방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서류함을 열고, 장부를 넘기고, 벽장을 열었다. 킁킁, 분명히 어디서 산 놈 냄새가 나는데. 피 냄새와 땀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어디 숨었냐 이놈이. 감찰관 하나가 코를 벌름거리며 염라대왕의 의자 쪽으로 다가왔다. 도포 자락이 바닥에 펼쳐져 있는 것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왕님, 실례지만 이 도포 자락 밑을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 11단계: 최악의 순간
감찰관의 손이 도포 자락에 닿으려는 찰나였다. 손가락 끝이 천에 스치기 직전, 염라대왕이 갑자기 의자에서 굴러떨어지며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아이고 배야. 아이고 으으, 배가 끊어질 것 같다. 아까 올라온 제사 음식이 상했나 봐. 이승 놈들이 제사상에 올린 음식이 쉰 거야 분명히. 으으으, 나 죽네. 의원이 필요해. 당장 의원을 불러. 염라대왕은 바닥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저승의 절대 권력자가 바닥에서 뒹구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관리들이 허둥지둥 달려왔다. 감찰관들도 당황하여 도포 자락에서 손을 뗐다. 나가라. 다들 썩 나가란 말이다. 감찰이고 나발이고 내 방에서 당장 나가. 배가 아파 죽겠는데 검사를 받으라고. 너희가 내 의원이냐. 꺼져. 염라대왕의 고함에 감찰관들이 뒤로 물러섰다. 아무리 감찰관이라 해도 염라대왕의 건강 문제 앞에서는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대왕님. 쾌유를 빕니다. 의원을 즉시 보내겠습니다. 감찰관들이 물러나고 문이 닫혔다. 발소리가 멀어지고 나서야 염라대왕이 벌떡 일어났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휴, 연기 한번 죽여줬지. 달재는 도포 자락 아래에서 기어 나오며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대왕님, 저 이제 진짜 가야 합니다. 더 있으면 저도 대왕님도 끝입니다. 창밖이 이미 푸르스름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이승의 해가 뜨기 직전이었다. 시험이 시작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 12단계: 영혼의 밤
시간이 없었다. 달재는 염라대왕 앞에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박았다. 대왕님, 소생은 이승에 가서 반드시 백성을 위해 글을 쓰겠습니다. 오늘 밤 이곳에서 깨달았습니다. 글이라는 것은 과거 급제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억울한 사람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칼이라는 것을. 소생을 보내 주십시오. 가서 이승의 썩어빠진 것들을 제 붓으로 심판하겠습니다. 염라대왕은 달재를 측은하게, 그러면서도 대견하게 바라보았다.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영혼을 보았지만, 재능이 있으면서도 겸손하고, 자기보다 약한 자의 편에 서려는 놈은 드물었다. 이놈은 이승에서 썩힐 인재가 아니야. 그래, 너 같은 놈을 썩히는 건 저승의 수치이자 이승의 손해지. 내가 선물 하나 주마. 법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줄 수 있는 것이다. 염라대왕이 책상 위에서 황금빛이 감도는 붓을 집어 들었다. 그 붓은 저승의 판결문을 쓸 때만 사용하는 것으로, 붓끝에 서린 기운이 범상치 않았다. 달재의 등을 돌려세우더니 적삼을 걷어 올렸다. 달래의 등판에 직접 붓을 대고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붓이 닿는 곳마다 뜨거운 기운이 척추를 타고 흘러 사지 끝까지 찌릿하게 전해졌다. 피부 위에 글자가 새겨지는 것인지, 피부 안에 새겨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뜨거웠다. 이승의 불로 지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뜨거움이었다. 이것은 염라대왕 추천서다. 이승의 썩어빠진 시험관 놈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글자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기운이 작용하는 것이다. 네 글에서 신의 빛이 나게 해 줄 테니, 가서 다 쓸어버려라. 다만 조건이 있다. 이 힘을 사사로운 욕심에 쓰는 순간 등의 글자가 사라지고, 네 수명도 그 자리에서 끝이다. 오직 백성을 위해서만 써라. 알겠느냐. 달재는 등의 열기를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 13단계: 3막 진입
달재는 저승사자의 등에 업혀 빛의 속도로 이승으로 돌아왔다. 눈을 떠보니 자신의 차가운 방이었다. 책상 위에 엎어져 있었고, 먹이 마른 붓이 손에 쥐어져 있었다. 멀리서 닭이 울고 있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새벽이었다. 꿈인가. 달재는 고개를 들었다. 등이 뜨거웠다. 적삼 안쪽을 만져보니 무언가가 새겨져 있는 듯한 요철이 손끝에 잡혔다. 꿈이 아니었다. 시험. 달재는 벌떡 일어났다. 다리에 힘이 없었지만 아드레날린이 온몸을 채웠다. 붓통을 챙기고, 먹을 품에 넣고, 미친 듯이 달렸다. 한양 거리를 가로질러 성균관으로 향했다. 맨발이었다. 신을 신을 시간도 없었다. 돌길을 달리는 발바닥에서 피가 났지만 느끼지 못했다. 성균관 앞에 도착했을 때, 시험장 대문이 닫히고 있었다. 문지기가 빗장을 걸려는 참이었다. 안 돼, 안 돼, 안 돼. 달재는 닫히는 문틈으로 몸을 날렸다. 어깨가 문짝에 부딪혀 뼈가 울렸지만 간신히 안으로 굴러 들어갔다. 문지기가 소리를 질렀지만 달재는 이미 시험장 안이었다. 흙투성이에 맨발, 머리는 헝클어지고 얼굴은 핏기가 없었다. 주변의 선비들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저놈이 미쳤나. 거지가 과거장에 왔어. 달래는 주변의 시선을 무시하고 빈자리에 앉았다. 헐떡거리는 숨을 고르며 붓을 잡았다. 붓을 쥐는 느낌이 확실히 달랐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배고픔에 떨리던 손이었는데, 지금은 묵직한 힘이 손끝에 실려 있었다. 저승에서 수만 장의 서류를 처리하며 단련된 필력이, 밤새 갈아 세운 붓의 날이 손끝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시험 주제가 걸렸다. 부국강병. 달재의 눈이 빛났다. 이 주제라면 할 말이 넘쳤다. 저승에서 본 억울한 영혼들의 얼굴이 스쳤다. 뇌물에 짓밟힌 판결문들이, 백성의 피를 빨아먹는 탐관오리들이, 백지를 내고도 급제하는 세상의 부조리가 머릿속에서 불길처럼 타올랐다. 붓이 종이에 닿았다. 막힘이 없었다.
※ 14단계: 결말
달재의 붓끝에서 글자가 쏟아져 나왔다. 한 글자 한 글자가 종이 위에 박힐 때마다 먹물에서 미세한 빛이 번졌다. 사람 눈에 보일 듯 말 듯한 은은한 빛이었으나, 그 빛을 본 주변 선비들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옆자리 선비의 글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풍기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달재는 주변을 의식하지 않았다. 눈앞에 종이 한 장만 보였고, 머릿속에는 쓸 말만 가득했다. 나라가 강해지려면 백성이 먼저 배불러야 합니다. 백성의 배를 채우려면 탐관오리의 주머니를 먼저 뒤집어야 합니다. 글을 마쳤을 때, 시험장에 종이 울렸다. 시간이 끝난 것이었다. 답안지가 거두어져 시험관들에게 넘어갔다. 시험관 셋이 채점을 시작했다. 이들은 이미 뇌물을 받고 합격자를 정해 둔 자들이었다. 김 대감의 아들을 장원으로 올리기로 작정한 터였다. 그런데 달재의 답안지를 펼치는 순간, 세 사람의 손이 동시에 멈추었다. 답안지에서 빛이 났다. 눈에 보이는 빛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가슴을 치는 빛이었다. 글자 하나하나가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 같았고, 문장의 흐름이 물처럼 거침이 없으면서도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시험관 하나가 중얼거렸다. 이건 사람이 쓴 글이 아니다. 신이 내린 문장이야. 다른 시험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안지를 다시 읽었다. 이 문장 좀 보게.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아.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이 뜨거워지네. 세 번째 시험관은 등에 소름이 돋아 옷깃을 여몄다. 이 자를 떨어뜨렸다간 천벌을 받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난 합격에 한 표. 뇌물로 정해 둔 합격자가 있었지만, 그 어떤 돈도 이 글 앞에서는 힘을 잃었다. 만장일치로 장원급제, 박달재. 합격자 방에 박달재 이름 석 자가 대문짝만하게 붙었다. 달재는 방 앞에 서서 자기 이름을 한참 바라보았다.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나와야 할 눈물이 십 년치가 한꺼번에 밀려와 목구멍에서 막혀 있었다. 아내가 달려왔다. 터진 손으로 달재의 팔을 잡았다. 여보, 당신 이름이야. 당신 이름이 저기 붙어 있어. 그때서야 눈물이 쏟아졌다. 여보, 나 붙었어. 드디어 붙었어. 이제 우리 고생 끝났어.
※ 15단계: 마지막 장면
몇 해가 흘렀다. 달재는 암행어사가 되었다. 탐관오리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떠는, 저승사자보다 무서운 암행어사였다. 부임 첫 고을에서 달재가 마패를 높이 들어 올리며 외쳤다. 암행어사 출두야. 그 한마디에 관아가 뒤집어졌다. 수년간 백성의 곡식을 빼앗아 제 곳간을 채운 사또가 사색이 되어 도망치다 담장에 걸려 넘어졌고, 뇌물 장부를 숨기던 이방은 뒷간에 숨었다가 발각되었다. 달재는 판결문을 직접 썼다. 저승에서 단련한 필력이 이승의 법정에서 빛을 발했다. 그의 판결문은 논리가 정연하고 증거가 촘촘해서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었다. 억울하게 빼앗긴 땅이 주인에게 돌아갔고, 거짓 누명이 벗겨졌으며, 빼앗긴 곡식이 다시 백성의 손에 쥐어졌다. 달재가 지나간 고을마다 백성들은 환호했고, 아이들은 노래를 불렀다. 사또야 사또야 도망가거라, 박 어사 온다 박 어사 온다. 그런데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달재가 마패를 들어 올릴 때마다, 그의 등 뒤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팔짱을 끼고 서서 흐뭇하게 웃고 있는 것을 사람들이 보았다는 것이었다. 어떤 이는 저승사자라 했고, 어떤 이는 귀신이라 했으나, 그 그림자는 해를 끼치는 법이 없었다. 다만 달재가 부패한 관리의 죄를 읽어 내려갈 때마다, 그림자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달재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모른 척했을 뿐이다. 어느 날 저녁, 관아의 업무를 마치고 돌아온 달재가 서재에서 낡은 붓을 어루만지며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 한쪽에서 검은 구름이 익숙한 형태로 뭉쳐 있었다. 달재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대왕님, 저 잘하고 있지요. 이승 청소 깔끔하게 해놓고 있습니다. 나중에 수명 다하면 약속대로 지옥 공무원 일급 자리 비워 두십시오. 그때 가서 또 야근 시키시면 시말서 접수하겠습니다. 바람이 불었다. 검은 구름이 흩어지며, 그 사이로 한 줌의 빛이 달재의 서재 창문을 비추었다. 마치 웃는 것 같았다. 달재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관아 담을 넘어 온 마을에 울려 퍼졌다. 아내가 부엌에서 고개를 내밀며 소리쳤다. 여보, 밥 다 됐어요. 오늘은 쌀밥이에요. 쌀밥. 달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가난했던 시절, 아내에게 하얀 쌀밥 한 그릇을 해주지 못해 미안했던 그 마음이 가슴을 쳤다. 지금은 할 수 있었다. 당당하게, 떳떳하게, 아내에게 밥을 해줄 수 있었다. 달재는 붓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밥 먹으러 갑시다.
엔딩
조선 시절, 암행어사 중에 유독 탐관오리들이 무서워한 자가 있었다고 전합니다. 이름은 박달재. 그가 마패를 들면 등 뒤에 검은 그림자가 따라다녔다는 소문은 야담집 여러 곳에 실려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그림자가 염라대왕이었다고 수군거렸고, 달재가 죽은 뒤에는 저승에서 공무원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진위는 알 수 없으나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글 한 줄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 그것만은 거짓이 아닙니다.
1단계: 첫 장면 (오프닝 이미지)
Image Prompt: Cinematic close up, interior of a shabby Joseon Dynasty hut. A thin scholar, Park Dal-jae, trembling while holding a brush. Ink splashes on the paper, ruining the character for 'Country (國)'. A mountain of crumpled papers next to him. Gloomy atmosphere.
[대본]
한양 남산골, 사람 하나 겨우 누울 만한 비좁은 초가집. 벽 틈새로는 황소바람이 숭숭 들어오고, 천장 구석엔 십 년 묵은 거미줄이 쳐진 방 안에서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진동했다. 그 어두침침한 방 한가운데, 뼈만 앙상하게 남은 선비 하나가 붓을 쥐고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박달재.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놈의 벼슬길은 십 년째 꽉 막힌 변비처럼 뚫릴 기미가 없었다. 달재는 깊은 한숨을 땅이 꺼져라 내쉬며 붓을 들어 누런 화선지 위에 '나라 국' 자를 쓰기 시작했다. 먹물을 듬뿍 머금은 붓끝이 종이에 닿는 순간, 꼬르륵. 며칠째 굶은 배에서 천둥소리가 나는 바람에 손이 미끄러졌다. 툭. 검은 먹물 한 방울이 종이 위로 튀어버렸다. 아차 하는 순간, 근엄해야 할 '나라 국' 자가 마치 '간사할 간' 자처럼 흉측하게 일그러져 버렸다. 에잉, 붓 꼬라지 하고는... 주인 닮아서 붓까지 삐뚤어졌구나. 내 팔자나 붓 팔자나 똑같구나 똑같아. 달재는 화선지를 북북 찢어 구겨진 종이 뭉치가 산처럼 쌓인 책상 구석에 던져버렸다.
2단계: 주제 제시
Image Prompt: Dal-jae's wife entering the room with sewing work. She looks tired and sad. Dal-jae looks shocked. They talk about the corrupt world.
[대본]
그때, 삐걱거리며 낡은 방문이 열리고 아내가 삯바느질감을 한아름 안고 들어왔다. 찬바람에 튼 손등이 붉게 부어올라 있었다. 아내는 달재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보, 혹시 그 소문 들으셨소? 윗마을 기와집 사는 김 대감 댁 아들놈 말이에요. 글쎄 이번 과거 시험에서 백지를 내고도 장원급제를 했답니다. 시험관이 김 대감 사돈의 팔촌이라나 뭐라나. 달재는 기가 막혀 입을 떡 벌렸다. 뭐? 백지? 먹물 한 방울 안 찍고 급제를 했다고? 허참,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는구만. 내가 쓴 답안지는 읽지도 않고 불쏘시개로 쓰더니, 백지를 낸 놈은 장원이라니.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구만. 아내는 씁쓸하게 웃으며 바늘에 실을 꿰었다. 그러게 말이에요. 실력이 무슨 소용입니까. 든든한 '줄' 하나 잡는 게 장땡인 더러운 세상인걸요. 우리 같은 흙수저는 붓이 닳도록 써봐야 소용없나 봅니다.
3단계: 설정 (준비)
Image Prompt: Angry landlord shouting at Dal-jae outside the door. Dal-jae bowing apologetically. Later, Dal-jae studying hard at night, looking exhausted, then fainting.
[대본]
달재는 사실 사서삼경을 거꾸로 외울 정도로 천재였지만, 그놈의 '줄'과 '돈'이 없었다. 시험을 볼 때마다 심사관들에게 뇌물을 바치지 못해 번번이 낙방하는 게 일쑤였다. 설상가상으로 대문 밖에서 쾅쾅 소리가 나더니 집주인이 들이닥쳐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어이 박 선비!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이번 달까지 밀린 방세 안 내면 짐 다 밖으로 던져버릴 거야! 알았어? 당장 방 빼! 달재는 죄인처럼 문고리를 잡고 고개를 숙였다. 어르신, 죄송합니다. 내일... 내일 과거 시험이 마지막 기회요. 이번에만 붙으면 밀린 돈에 이자까지 쳐서 다 갚으리다. 제발 한 번만 봐주시오. 집주인이 씩씩거리며 돌아가자, 달재는 결연한 표정으로 책상 앞에 앉았다. 이게 진짜 마지막이다. 이번에도 안 되면 확 혀 깨물고 죽자. 그는 졸음을 쫓기 위해 허벅지를 꼬집으며 밤새 책을 읽었다. 하지만 며칠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몸이 버틸 리 없었다. 새벽닭이 울기 전, 달재는 그만 과로와 영양실조로 픽 쓰러지고 말았다.
4단계: 사건 발생 (촉발)
Image Prompt: A Grim Reaper in black traditional clothes standing in front of fainted Dal-jae. Tying him with ropes. Dragging him to the underworld gate. A gatekeeper hitting the Reaper's head.
[대본]
얼마나 잤을까. 으스스한 한기에 눈을 뜬 달재 앞에 시커먼 갓을 쓰고 창백한 얼굴을 한 사내가 서 있었다. 박달재, 서른. 명줄 끝났다. 가자. 저승사자였다. 달재는 상황 파악이 안 돼 눈만 깜빡였다. 네? 저승사자요? 아니, 이보시오! 난 아직 죽을 때가 아니오! 내일 아침이 시험이란 말이오! 공부하다 잠깐 존 것뿐인데 죽다니, 말도 안 돼! 달재가 발버둥 쳤지만, 사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포승줄을 던져 그를 꽁꽁 묶었다. 잔말 말고 따라와라. 염라대왕님이 기다리신다. 달재는 질질 끌려 황천길을 건너고 삼도천을 지나, 웅장한 기와집인 염라청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입구에서 명부 담당관이 사자의 뒤통수를 퍽 소리 나게 후려갈겼다. 야 이 멍청한 놈아! 눈을 어디다 달고 다니는 거야! 오늘 데려올 놈은 옆 동네 투전꾼 '박달채'잖아! '박달재'가 아니라 '박달채'! 어이 '아이'도 구별 못 하냐? 너 글자도 못 읽어?
5단계: 고민 (망설임)
Image Prompt: Grim Reaper sweating and looking panicked. Dal-jae shouting angrily. King Yeomra shouting from inside a room, holding a messy document.
[대본]
사자의 실수로 산 채로 저승에 온 달재. 사자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난처해했다. 아, 이거 큰일 났네. 실수한 거 들키면 시말서 써야 하는데... 게다가 지금 저승 문 닫는 축시(새벽 1~3시)라 아침까지는 이승으로 못 나가는데... 이를 어쩐다? 달재는 그 말을 듣고 펄쩍 뛰었다. 뭐요? 내일 아침에 시험 시작인데 못 나간다니! 당신이 실수해서 잡아와 놓고 나 몰라라 하는 거요? 나 이번 시험에 떨어지면 진짜 굶어 죽는단 말이오! 빨리 돌려보내 주시오! 당장 문 열어! 달재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피우려던 찰나, 염라대왕의 집무실 안에서 쩌렁쩌렁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아오! 도대체 이 판결문을 누가 쓴 거야! 문장이 개판이잖아! 주어랑 서술어도 안 맞고, 맞춤법은 다 틀리고! 도저히 해석이 안 돼, 해석이! 이거 쓴 놈 당장 잡아와!
6단계: 2막 진입 (새 세계로 들어감)
Image Prompt: Dal-jae rushing into King Yeomra's room. He grabs a brush and corrects the documents. Yeomra looks surprised and impressed.
[대본]
달재는 그 소리에 귀가 번쩍 뜨였다. 글이라면 자신이 있었다. 그는 사자를 밀치고 염라대왕 앞으로 달려나갔다. 대왕님! 죽을 때 죽더라도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 소생이 한양 최고의 문장가 박달재라 하옵니다! 그깟 판결문, 제가 한번 봐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염라대왕은 꾀죄죄한 몰골의 선비를 보고 코웃음을 쳤다. 네까짓 게 뭘 안다고? 하지만 너무 답답했던지라 밑져야 본전이라며 붓을 던져주었다. 어디 한번 해봐라. 못하면 바로 지옥불이다. 달재는 붓을 잡자마자 눈빛이 변했다. 그는 신들린 듯 붓을 휘갈겼다. 난해하고 뒤죽박죽이던 판결문이 달재의 손을 거치자마자, 논리가 정연하고 문장이 수려한 명문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염라대왕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호라? 이것 봐라? 너 글 솜씨가 제법이구나? 아니, 제법인 정도가 아니라 완전 물건인데?
7단계: B 이야기 (감정 줄거리)
Image Prompt: Dal-jae working in a corner of the underworld office, surrounded by stacks of papers. He looks angry while reading corrupt appeals from the living world. He cries for the unjust souls.
[대본]
그때부터 달재는 염라청 구석방에 앉아 산더미처럼 쌓인 밀린 저승의 행정 서류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서류를 읽어내려가던 달재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승의 탐관오리들이 뇌물을 받고 대충 써서 올린 엉터리 상소문과 판결문들이 수두룩했다. 억울하게 죽은 백성들의 사연은 묻혀있고, 돈 있는 자들의 죄는 가려져 있었다. 이 나쁜 놈들... 백성들 피를 빨아먹고도 모자라 글까지 이렇게 엉망으로 쓰다니. 내 붓으로 다 심판해주마! 달재는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의 사연 하나하나에 공감하며, 그들의 한을 풀어줄 명판결문을 작성해 나갔다. 붓끝에 눈물이 맺혔고, 그 진심 어린 문장은 염라대왕의 마음마저 움직였다. 단순한 글쟁이가 아니라, 백성의 마음을 담는 명재상감이었던 것이다.
8단계: 재미 구간 (볼거리·핵심 장면들)
Image Prompt: King Yeomra giving a thumbs up. Dal-jae drawing diagrams and plans on a big board. Other grim reapers clapping and cheering. Atmosphere of a successful presentation.
[대본]
염라대왕은 신이 나서 달재에게 일을 더 시켰다. 야, 박 선비! 이것도 좀 고쳐봐라. 저승 리모델링 계획서인데 영 마음에 안 들어. 네가 좀 쌈박하게 바꿔봐. 달재는 붓을 휘날리며 저승의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싹 뜯어고쳤다. 꽉 막힌 삼도천 교통 체증 해결을 위한 '지옥행 급행열차 노선 신설', 이승에서 뇌물 받아먹는 사자들을 적발하기 위한 '저승사자 특별 감사제 도입', 착하게 살다 온 영혼들에게 혜택을 주는 '착한 영혼 마일리지 제도'까지! 달재의 혁신적인 기획안에 염라청 관리들이 기립 박수를 보냈다. 와! 박 선비님 최고! 진작에 이런 분이 왔어야 했는데! 염라대왕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파격 제안을 했다. 야, 너 그냥 이승 가지 말고 여기서 나랑 같이 일하자. 내가 지옥 공무원 1급 줄게. 연봉은 수명 100년 연장 어때?
9단계: 중간 전환점 (미드포인트)
Image Prompt: King Yeomra looking at Dal-jae's Life Book. His face turns serious and sad. Dal-jae looking desperate. Yeomra scratching his head.
[대본]
하지만 즐거운 시간도 잠시, 새벽닭이 울기 직전 문제가 생겼다. 염라대왕이 기분 좋게 달재의 수명 장부를 확인하다가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것이다. 어라? 이상하다? 얘 운명이... 이번 생에는 관운이 아예 없네? 평생 과거 시험만 보다가 낙방하고, 결국엔 굶어 죽을 팔자야. 쯧쯧, 아깝다 아까워. 달재는 그 말을 듣고 절망했다. 네? 제가 평생 백수로 살 팔자라고요? 대왕님, 억울합니다! 제가 저승 일도 이렇게 잘해드렸는데! 제발 운명 좀 바꿔주십시오! 염라대왕은 난처해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야, 팔자는 하늘이 정한 거라 나도 함부로 못 고쳐. 옥황상제님 결재 맡아야 한단 말이야. 아... 잠깐. 법을 어기지 않으면서 도와줄 꼼수가 하나 있긴 하지.
10단계: 위기 압박 (악재가 몰려옴)
Image Prompt: Underworld Inspectors barging in. They look scary. Yeomra hiding Dal-jae under his large robe. Tension. Inspectors sniffing around.
[대본]
그때, 문밖에서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들리더니 저승 감찰관들이 들이닥쳤다. 염라대왕님! 계십니까! 산 사람을 불법으로 데려와 부려먹었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저승법 제1조 위반입니다! 당장 그 인간을 내놓으십시오! 달재는 사색이 되어 숨을 곳을 찾았다. 염라대왕은 달재를 자신의 거대한 도포 자락 밑에 숨기며 다급하게 속삭였다. 야, 들키면 너는 바로 지옥행이고 나는 탄핵이야. 숨소리도 내지 마. 알았지? 감찰관들이 들이닥쳐 염라대왕의 방을 이 잡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킁킁, 분명히 어디서 산 놈 냄새가 나는데? 달재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여기서 잡히면 이승이고 뭐고 끝장이다.
11단계: 최악의 순간 (모든 게 끝난 듯)
Image Prompt: An inspector lifting the edge of Yeomra's robe. Dal-jae closing his eyes in fear. Yeomra acting sick, rolling on the floor. Inspectors leaving in confusion.
[대본]
눈치 빠른 감찰관 하나가 염라대왕의 의자 밑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바로 달재가 숨어있는 곳이었다. 감찰관이 손을 뻗어 도포 자락을 들추려 했다. 으악, 끝났구나! 달재가 눈을 질끈 감는 순간, 염라대왕이 갑자기 꾀병을 부리며 바닥을 뒹굴었다. 아이고 배야! 아까 먹은 제사 음식이 상했나 배가 끊어질 것 같다! 아이고 나 죽네! 의원이 필요해! 다들 나가라! 썩 꺼져! 내 방에서 당장 나가란 말이다! 염라대왕의 신들린 발연기에 감찰관들은 당황해서 허둥지둥 물러났다. 죄, 죄송합니다 대왕님! 의원을 불러오겠습니다! 달재는 간신히 위기를 넘겼지만, 이미 창밖은 푸르스름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해가 뜨기 직전이었다.
12단계: 영혼의 밤 (깊은 절망)
Image Prompt: Dal-jae begging to leave. Yeomra looking sympathetic. Yeomra writing something on Dal-jae's back with a glowing brush.
[대본]
시간이 없었다. 달재는 울상이 되어 빌었다. 대왕님, 저 이제 진짜 가야 합니다. 조금만 늦으면 시험장 문 닫힙니다. 제발 보내주세요. 염라대왕은 달재를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그래, 너 같은 인재를 썩히는 건 저승의 수치이자 이승의 손해지. 내가 선물 하나 주마. 염라대왕은 황금빛이 나는 붓을 들어 달재의 등짝에 무언가를 휘갈겨 썼다. 뜨거운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이건 '염라대왕 추천서'다. 이승의 썩어빠진 시험관 놈들 눈에는 안 보이지만, 네 기운을 바꿔줄 거다. 네 글에서 빛이 나게 해 줄 테니, 가서 다 쓸어버려라!
13단계: 3막 진입 (다시 일어섬)
Image Prompt: Dal-jae riding on the Grim Reaper's back, flying through the sky. Arriving at the exam site just as the doors are closing. Dal-jae sliding in. Writing furiously with confidence.
[대본]
달재는 저승사자의 등에 업혀 빛의 속도로 이승으로 돌아왔다. 눈을 떠보니 자신의 자취방이었고, 닭이 울고 있었다. 달재는 붓통을 챙겨 미친 듯이 달렸다. 시험장인 성균관 앞에는 이미 문이 닫히고 있었다. 안 돼! 달재는 닫히는 문틈으로 몸을 날려 간신히 안으로 굴러 들어갔다. 세이프! 헐떡거리는 숨을 고르며 자리에 앉은 달재는 붓을 잡았다. 붓을 잡는 느낌이 예전과 달랐다. 어젯밤 저승에서 수만 장의 서류를 처리하며 단련된 필력이 손끝에서 폭발했다. 이번 과거 시험 주제는 '부국강병'. 달재의 붓끝에서 막힘없이 명문장이 쏟아져 나왔다. 그의 글씨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백에 주변 선비들이 기에 눌려 붓을 떨어뜨릴 정도였다.
14단계: 결말 (클라이맥스 해결)
Image Prompt: Examiners looking at Dal-jae's paper. The paper glows with a golden aura. They look mesmerized. Dal-jae hugging his wife, crying with joy.
[대본]
시험관들이 채점을 하는데, 달재의 답안지에서 기이한 서광이 비쳤다. 염라대왕이 써준 추천서의 힘이었다. 뇌물을 받고 미리 합격자를 정해두었던 부패한 시험관들도, 달재의 글을 보자마자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이... 이건 사람이 쓴 글이 아니다. 신이 내린 문장이다! 이 자를 떨어뜨렸다가는 천벌을 받을 것 같아! 감히 불합격을 줄 수가 없어! 결국 만장일치로 박달재가 장원급제! 합격자 방에 '박달재' 이름 석 자가 대문짝만하게 붙자, 달재는 아내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여보, 나 붙었어! 드디어 붙었어! 이제 우리 고생 끝났어!
15단계: 마지막 장면 (파이널 이미지)
Image Prompt: Years later. Dal-jae as a high-ranking official (Secret Royal Inspector), punishing corrupt officials. A shadow of King Yeomra smiling behind him. Dal-jae winking at the sky.
[대본]
몇 년 후, 달재는 암행어사가 되어 탐관오리들을 벌벌 떨게 만드는 '저승사자' 같은 관리가 되었다. 그가 출두할 때마다 부정부패한 관리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쳤고, 백성들은 환호했다. 사람들은 달재의 등 뒤에서 검은 그림자가 흐뭇하게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수군거렸다. 달재가 낡은 붓을 어루만지며 파란 하늘을 보고 윙크를 날렸다. 대왕님, 저 잘하고 있죠? 나중에 죽으면 약속대로 지옥 공무원 1급 자리, 잊지 마십시오! 그때까지 이승 청소 깔끔하게 해놓겠습니다! 하하하! 달재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온 세상에 울려 퍼졌다.